'러시아 시장' 중국 독차지? 여전히 한국산 원합니다
'불안한 중동'... 북극항로 부상
"중국 잠식? 소비재 한국 선호도 높아"

"(홍해를 거쳐 유럽으로 가는 뱃길보다 거리가 짧은) 북극항로는 단순히 물류비만 아끼는 게 아닙니다. 에너지와 자원을 연결하는 새로운 공급망 축으로 봐야 합니다."
23일 서울 강남구 트레이드타워 51층. 한국무역협회가 사단법인 한러대화와 공동 주최한 '러시아 시장 동향 세미나(2026 글로벌 유망시장 세미나)'에 참석한 기업인 150여 명이 이성우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선임연구위원의 발표에 귀를 쫑긋 세웠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가 경제제재를 받고 있고, 빙하 등 자연적 제약도 있어 북극항로가 아직 활발하지는 않지만, 미국·이란 전쟁 이후 중동 항로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확대돼 북극항로가 다시 주목받아서다. 그는 "북극권에는 주요 에너지·자원 인프라가 밀집해 북극항로는 단순 공급 통로를 넘어 자원 공급망과 직결된다"고 말하자 참석자들은 중요한 정보를 놓칠까, 열심히 받아 적었다.
무역협회가 기업인 대상 러시아 진출 세미나를 5년 5개월여 만에 개최했다. 코로나19 때인 2020년 11월 '러시아 등 신북방지역 비즈니스 및 마케팅 성공전략 세미나' 이후 처음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후 열릴 러시아 시장을 준비하는 한편, 호르무즈해협 봉쇄 등 중동 정세 불안을 계기로 물류와 자원 대체지로서 대비하는 의미도 컸다.
이런 대외환경 변화는 위기이자 기회다. 이상준 국민대 교수는 "북극항로는 러시아가 지속적으로 발전 의지를 강하게 표출해온 곳"이라며 "우리나라는 조선·해운뿐 아니라 에너지, 인프라, ICT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창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한국과 서방 주요 기업들이 철수하거나 사업을 중단한 사이 중국 기업들이 시장을 잠식했다. 그럼에도 러시아인들은 삼성·LG·현대차 등 국내 기업을 그리워한다. 박종호 한러비즈니스협의회 대표는 "러시아는 여전히 높은 구매력을 가진 시장이고, 한국 제품 선호도도 높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러시아 진출한 용감한 중소기업... 비중 2배로

전문가들은 화장품과 의료기기 등 제재 대상이 아닌 소비재 품목에 주목할 것을 당부했다. 이날 발표에 따르면 러시아 시장에서 한국 소비재 매출은 최근 2년(2024·2025) 모두 전년 대비 증가했다.
대기업보다 제재 대응이 상대적으로 유연한 중소기업 거래도 확대했다. 대러 수출에서 중소기업 비중은 2021년 27.6%에서 2024년 59.4%로 급증해 제재 환경 속에서 수출 구조가 재편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박 대표는 "제재로 인해 대기업은 손발이 묶이고 미국 눈치를 많이 볼 수밖에 없는 반면 오히려 용감한 중소기업은 무역을 시작하며 시장을 선도해나갈 수 있는 기회"라고 평가했다.
박지원 한국수출입은행 선임연구위원은 "제재 완화 이후에는 한국 소비재뿐 아니라 중화학 공업, 인프라 재건, 에너지 기기, 산업용 부품 등 전통적으로 강점을 가진 분야에서 폭발적인 기회가 열릴 것"이라며 "지금부터 씨를 뿌리듯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예현 기자 hy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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