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빙·웨이브 합병, '규모의 벽' 넘어야 산다 [엔터코노미]

이해정 기자 2026. 4. 24.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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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OTT 시장에서 '규모의 한계'가 다시 한번 확인됐다. 티빙이 성장 둔화와 현금 압박이라는 이중 부담에 직면하면서, 웨이브와의 합병 필요성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개별 플랫폼이 각자 생존을 모색하던 국면에서, 이제는 버티기보다 '합치기'가 현실적인 해법이라는 인식이 확산하는 분위기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CJ ENM(035760)의 OTT 자회사 티빙의 지난해 매출은 4060억원으로 전년 대비 6.8% 감소했다. 한 해 전 KBO 리그 뉴미디어 독점 중계권 효과로 30% 이상 급등했던 성장세가 꺾인 것이다. 외형 성장의 '탄력'이 약해진 반면 수익성 개선 속도는 여전히 더디다. 영업손실은 전년 대비 소폭 줄었지만 수백억 원대 적자가 이어지고 있으며, 최근 수년간 누적된 손실 규모 역시 적지 않다.

현금 흐름도 빠르게 악화되고 있다. 콘텐츠 확보를 위한 선투자 구조 탓에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크게 줄었고, 유동비율(유동자산을 유동부채로 나눈 비율)도 45%대로 떨어져 단기채무 지급 능력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실제로 티빙은 최근 단기차입을 통해 유동성을 보강하는 등 현금 방어에 나선 상태다. 지난해에 비해 콘텐츠 투자 비용이 줄어든 것 역시, 더 이상 막대한 지출로 플랫폼을 확장하는 기존의 방식에 한계가 있다는 걸 보여준다.

이 같은 흐름은 티빙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내 OTT 전반이 동일한 구조적 한계에 직면해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미 수십조 원 단위의 콘텐츠 투자를 집행하는 넷플릭스, 디즈니+ 등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이들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좋은 콘텐츠를 만드는 것을 넘어, 지속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자본 규모와 이를 뒷받침할 가입자 기반이 필수적이다. 현재와 같은 분산 구조로는 국내 사업자들이 이 격차를 따라잡기 어렵다.

이 지점에서 티빙과 웨이브의 합병 논의는 구조적 해법으로 부상한다. 두 플랫폼은 지상파와 케이블 콘텐츠를 기반으로 유사한 이용자층을 확보하고 있으며, 서비스 방향성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도 별개로 운영되면서 콘텐츠 투자, 마케팅, 플랫폼 개발 등에서 중복 비용이 누적돼 왔다. 결과적으로 두 플랫폼이 '더 작은 경쟁력'으로 남는 비효율이 반복된 셈이다.

합병이 현실화될 경우 기대 효과는 명확하다. 우선 콘텐츠 투자 측면에서 선택과 집중이 가능해진다. 동일 장르, 유사 타깃 콘텐츠에 대한 중복 투자를 줄이고, 그 재원을 대형 프로젝트에 재배치할 수 있다. 여기에 통합 가입자 기반이 더해지면 광고 단가와 구독 매출 모두에서 레버리지가 발생한다. 플랫폼 규모가 커질수록 데이터 축적과 추천 알고리즘 고도화도 가능해져 서비스 경쟁력 역시 자연스럽게 강화된다.

그럼에도 합병이 지연돼 온 이유는 분명하다. 스튜디오지니를 통해 티빙 지분을 13.5% 보유한 2대 주주 KT가 지분율 하락, IPTV 가입자 감소 등을 우려해 합병에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박윤영 신임 대표가 공식 선임됐고, 정부 역시 '토종 OTT 통합'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기류 변화 가능성에 관심이 쏠린다. 시장에서는 더 이상 시간을 끌 경우 글로벌 사업자와의 격차가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벌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며, KT의 대승적 결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제공=티빙

다만 티빙을 단순히 '위기의 플랫폼'으로만 보는 시각은 절반의 해석에 가깝다. 티빙은 여전히 CJ ENM 콘텐츠의 핵심 유통 창구이자, 국내 OTT 가운데서도 예능, 드라마, 스포츠를 아우르는 균형 잡힌 포트폴리오를 갖춘 사업자다.

KBO 중계 이용자 수는 2024년 이후 매년 최고치를 경신하며 올해는 전년 대비 약 30% 급증했고, '환승연애'와 '유미의 세포들' 등 대표 IP 역시 팬덤을 기반으로 흥행을 이어가는 모습이다. 박지훈이 출연하는 '취사병 전설이 되다' 등 신규 라인업도 확대되고 있다.

결국 티빙의 문제는 콘텐츠 경쟁력이 아니라 지속 가능성이다. 지금까지는 특정 콘텐츠를 계기로 가입자가 급증하는 '스파이크형 성장'이 반복됐다면, 앞으로는 이를 안정적인 수익 구조로 전환하는 단계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전환의 전제 조건이 바로 규모다.

결론적으로 티빙은 '혼자서도 의미 있는 플레이어'지만, 합쳐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시장에 서 있다. 합병은 단순한 몸집 불리기가 아니라, 분산된 자원을 하나로 모아 글로벌 경쟁에 대응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단순히 티빙이라는 회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내 OTT 산업의 미래와 직결된 사안이기도 하다. 넷플릭스로 대표되는 글로벌 기업들이 빠르게 몸집을 키워가는 가운데, K-OTT는 각자도생 속 쇠퇴를 택할지, 통합을 통해 반전의 계기를 마련할지 기로에 서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개별 플랫폼의 추가 실험이 아니라, 이미 검증된 해법을 빠르게 실행에 옮기는 일이다.

이해정 머니투데이방송 MTN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