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증금은 돈 아니라 집” 법 한계를 넘은 피해자들…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 통과

직장인 강다영씨(30)는 지난해 1월14일을 잊지 못한다. 신년 계획을 세운 날이었다. 새해 도전하고 싶은 취미, 공부하고 싶은 분야, 여행하고 싶은 곳. 친구들과 종일 떠들었다. 저녁 8시쯤 집주인에게서 날아온 한 통의 문자메시지를 확인하기 전까지만 해도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하루였다.
“파산을 신청했습니다. 보증금 반환이 어렵습니다.”
문자를 읽자마자 ‘전세사기’를 직감했다. 그해 8월 전세 만료가 되면 더 넓은 집으로 이사하려던 계획은 순식간에 어그러졌다. 1억원의 보증금, 평범한 일상, 미래에 대한 계획, 사회에 대한 신뢰까지 강씨의 삶에서 그날로 사라졌다. 지난 21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강씨는 “그날 이후 시간이 멈춘 것 같다”고 말했다.
피해자들이 바꾼 전세사기특별법, ‘최소보장’을 만들다
전세사기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23일 통과했다. 2023년 5월 특별법 제정 이후 약 3년 만에 피해자 다수가 적용받을 수 있는 실질적 피해 구제 장치가 처음 마련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개정안 핵심은 ‘최소보장제’ 도입이다. 피해자가 경·공매 차익과 보증금 반환채권 회수액 등을 합해 돌려받은 금액이 임차보증금의 3분의 1에 미치지 못하면 부족분을 재정으로 지원키로 했다. 신탁사기 등 무권계약 피해자에게는 복잡한 경·공매 절차에 앞서 최소보장금 일부를 먼저 지급한 뒤 사후 정산하는 ‘선지급·후정산’ 제도도 담겼다. 피해주택 매입 절차 개선과 지자체 관리 권한 강화 방안도 포함됐다.
그간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피해주택을 매입해 임대하거나 경·공매 차익을 돌려주는 방식으로 지원을 했지만 절차가 느리고 사각지대가 많아 피해자들의 실질적인 구제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한계를 뛰어넘어 법 개정까지 이끌어낸 것은 전국의 전세사기 피해자들이다. ‘혼자 울던’ 이들은 각자의 방에서 나와 서로를 찾았고, 거리로 함께 나섰다. 국회와 정부를 끊임없이 두드렸다. 집과 일상을 되찾기 위해 활동가가 되기도 했다.
‘동작구 아트하우스 전세사기 피해대책위원회’ 위원장으로 거듭난 강씨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혼자였으면 버티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절망 속에서 그나마 걸어 나온 기분”이라고 말했다.
정부 안전망 믿고 계약한 전세, 사회적 재난인 이유

“돌려받지 못한 보증금은 총 1억원이에요. 그 중 8000만원은 중소기업취업청년(중기청) 전세대출을 통해 우리은행에서 빌렸어요. 2000만원은 직장생활로 모은 사실상 전 재산이었습니다. 지금도 피해주택에 살며 연장한 전세대출 이자를 매달 갚고 있습니다.”
강씨가 서울 동작구 사당동 신축 ‘빌라’에 전세로 들어온 것은 이미 전세사기가 횡행하던 2023년 8월이었다. 전세사기가 걱정됐지만, 월세는 너무 비쌌고 공공임대는 빈집이 없었다. 예방에 최선을 다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널리 쓰이는 전세사기 피해방지 어플을 사용해 집을 ‘스캔’했고 ‘안전’ 판정을 받았다. 자격증이 있는 공인중개사를 통해 거래했고, 정부 보증으로 은행 심사를 거쳐 대출까지 받았다.
강씨는 “유튜브에서 전세사기 피하려면 꼭 넣어야 하는 특약 조항 같은 걸 찾아서 공인중개사에게 직접 요구하기도 했다”면서 “특히 까다롭다는 중기청 대출 심사도 통과해서 어느 정도 검증된 집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빌라에는 약 9억3600만원의 근저당과 선순위 보증금 약 18억원이 물려있었지만, 중개보조인은 ‘건물 시세가 30~34억원 수준이라 안전하다’는 말로 안심시켰다. 신축 빌라의 시세를 알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강씨는 그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정작 집주인의 파산 이후 드러난 빌라의 감정평가액은 18억원에 불과했다. 기존 빚이 집값을 훨씬 웃도는 수준이었다. 파산에 따른 경공매가 진행된다 하더라도 후순위 세입자들이 받을 수 있는 돈은 거의 없었다.
‘전세 계약은 사적 거래인데 왜 지원해줘야 하느냐’는 지원 반대 목소리가 나올 때마다 강씨는 답답했다.
그는 “정부가 만들어 놓은 제도권과 안전망 안에서 거래했는데, 왜 세입자가 대규모 사기에 대한 피해를 다 지고가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전세대출이 실행될 때 건물의 위험성이나 권리관계에 대한 심사, 사후 모니터링이 제대로 이뤄졌다면 청년 피해도 이렇게 커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보증금의 절반이라도 회수할 수 있도록 지원해달라는 목소리를 낸 이유”라고 강조했다.

함께 만든 ‘최소보장’, 아직은 머나먼 진짜 회복
집주인의 문자를 받은 다음날, 강씨는 부랴부랴 주민센터와 구청을 찾았지만 돌아온 것은 얇은 안내 책자뿐이었다. 현 상황과 피해규모, 회복방법 등을 알 길이 없었다. 막막했다.
결국 피해자들은 스스로 서로를 찾았다. 누군가 빌라 입구에 대자보를 붙였고, 오픈채팅방이 만들어졌다. 같은 건물 세입자들이 하나둘 들어왔다. 그러다 자신들 빌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임대인 가족 소유의 인근 다른 건물까지 연결돼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그렇게 꾸려진 것이 ‘동작구아트하우스 전세사기피해대책위원회’다.
현재 50여명이 활동하며, 위원장인 강씨 외의 핵심 운영진은 5명 안팎이다. 회사원, 간호사, 공인중개사 등 평범한 시민들이 대부분이었다. 각자 잘하는 걸 했다. 누군가는 등기부등본을 분석했고, 누군가는 엑셀 정리를 도맡았으며, 또 누군가는 언론 인터뷰에 나섰다. 법원 앞에 나가 기자회견도 열고, 국회의원들을 찾아가 특별법 개정을 촉구했다. 해본 적 없는 일이었지만, 살기 위해선 별다른 수가 없었다.
그렇게 얻어낸 최소보장제. 당초 요구했던 2분의 1 수준이 아닌 3분의 1 안으로 개정됐다. 아쉬움은 남았다.
강씨가 이번 개정을 통해 회수할 수 있는 돈은 약 3000만원 정도다. 그는 “최우선변제금조차 건지지 못한 분들은 다시 살아갈 수 있는 출발선이 생겼다”면서도 “보증금은 그냥 돈이 아니라 집과 같은 것인데, 30% 수준의 지원으로는 잃어버린 삶을 온전히 되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특히 아트하우스 피해자들은 임대인 파산 시 임차인 보증금 채권을 보호해달라는 안을 강하게 요구해왔는데 일부만 반영돼 아쉬움도 짙다고 했다. 개정안에는 임대인이 파산하더라도 전세사기 피해자의 보증금 중 우선변제권이 인정되는 범위는 파산으로 책임이 면제되지 않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강씨는 “요즘 신축 빌라 전세사기는 건물을 지을 때부터 은행 근저당을 풀로 잡아놓고 세입자 보증금을 받은 뒤 파산하는 구조가 많다”며 “이미 선순위 근저당이 설정돼 있으면 우선변제권 범위만으로는 회복되는 금액이 크지 않다”고 말했다.
강씨의 일상은 아직 회복되지 않았다. 개정안이 통과돼 한 발짝 나아갈 수 있지만, 그의 일상은 아직도 멈춰서 있다. 집주인 파산 절차와 경매, 형사 고소는 현재 진행형이다. 다음 주에도 경찰 조사에 출석할 예정이다.
이날 강씨는 인터뷰를 마치면서 한마디만 더하고 싶다고 했다. 특별법 일몰 이후의 대책이었다.
“지금은 안전해 보이는 집들도 시간이 지나면 언제든지 전세사기 문제가 터질 수 있습니다. 저와 비슷한 피해자가 앞으로도 나올 텐데 특별법이 사라지면 그분들은 다시 방법이 없어집니다.”
김지혜 기자 kim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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