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도, 어른도…이 곳은 행복할 수 밖에 없어요 [여행]

이민하 2026. 4. 24.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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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행복지수 9년 연속 1위 핀란드에 가다
아이들이 웃고 뛰어놀 수 있는 도서관
노키즈존 대신 배려와 포용의 공간으로
추위 속 '피와 살'인 순록과 함께하는 삶
하루의 끝, 사우나로 피로 씻어내며 힐링
핀란드 라플란드 이나리 시 이발로 마을에서 바라본 오로라 (사진=라플란드 노스 데스티네이션스)
[헬싱키·이발로(핀란드)=글·사진 이데일리 이민하 기자] 핀란드는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유명하다. UN이 발표하는 ‘2026 세계행복보고서’에 따르면 핀란드는 올해도 147개국 중 당당하게 1위에 이름을 올리며 9년 연속 정상을 지켰다. 같은 보고서에서 한국은 67위를 기록했다. ‘핀란드는 무엇이 특별할까?’, ‘한국과 무엇이 그렇게 다를까?’. 그 질문의 해답을 찾기 위해 13시간을 날아 핀란드를 찾았다.

토요일 아침 10시, ‘도시의 거실’이라고 불리는 핀란드 헬싱키 ‘오오디(Oodi) 중앙도서관’ 3층은 이미 사람들로 붐볐다. 특히 어린아이들이 유독 많았다. 신발을 벗고 뛰어다니는 아이들, 그림책을 소리 내어 읽는 아이들, 미끄럼틀을 타며 즐거워하는 아이들까지. 도시를 대표하는 건축물의 가장 전망 좋은 꼭대기 층을 핀란드는 아이들에게 기꺼이 내준 것이다.

핀란드 헬싱키 오오디 중앙도서관 3층의 유아공간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다 (사진=이민하 기자)
◇아이들의 소리가 소음이 아닌 나라

2018년 핀란드 독립 100주년을 기념해 문을 연 오오디 도서관. 헬싱키 시가 ‘시민에게 주는 생일선물’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총면적 1만 7000㎡의 이 건물은 목재 곡선이 물결처럼 흐르는 외관이 압권이다. 이름인 ‘오오디’는 핀란드어로 ‘찬가’를 뜻한다. 1층은 소통의 광장, 2층은 창의적인 작업 공간(메이커 스페이스), 그리고 3층은 헬싱키 도심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최고의 독서 공간이다.

일반적인 도서관이라면 정숙을 이유로 아이들을 하층부나 구석으로 보냈겠지만, 오오디는 정반대의 길을 택했다. 가장 아름다운 꼭대기 층에 유아 놀이 시설을 전면 배치하고 아이들의 소리를 도서관의 공기로 수용했다. 아이들이 웃고 뛰는 소리가 ‘불편한 소음’이 아니라 삶의 당연한 일부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3층 한 켠엔 유모차 전용 주차 구역이 있고 이유식을 데울 수 있는 전자레인지도 구비돼 있다.

핀란드 헬싱키 오오디 중앙도서관 3층의 유아공간 옆 유모차 주차 공간 (사진=이민하 기자)
‘노키즈존’이 보편화하고 운동회 소음 때문에 아이들이 사과하는 일이 뉴스가 되는 사회에서 온 이들에게 이 장면은 낯설 수밖에 없다. 일본의 정신과 전문의 구마시로 도루는 저서 <쾌적한 사회의 불쾌함>에서 도시가 소음, 느림, 서툶 같은 이질성을 지워버리고 ‘무해한 시민’만을 남기는 현상을 ‘사회적 표백’이라 정의했다. 그는 표백의 첫 번째 희생자로 아이들을 꼽으며, 노키즈존을 ‘통제 불가능한 존재를 곁에 두지 않겠다는 사회적 선언’이라고 진단했다. 오오디 도서관 3층은 그 반대편에 서 있다. 아이들의 소리를 삶에서 배제할 대상이 아닌 공간의 주인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핀란드 라플란드 이나리 시 이발로 마을에서 스노우모빌을 타고 있는 여행객들 (사진=라플란드 노스 데스티네이션스)
◇ 북쪽으로 2시간 30분, 핀란드인들의 휴가지로

오오디 도서관이 세심하게 설계된 도심 속 행복을 보여준다면 ‘이발로’(Ivalo)는 날 것 그대로의 자연 속 행복을 대변한다. 헬싱키에서 비행기를 타고 북쪽으로 2시간, 이발로 마을이 속한 라플란드 지역 이나리 시는 전체 면적의 70%가 보호 지역으로 지정된 순백의 땅이다. 이곳엔 시야를 가리는 고층 건물이 없다. 5층 이상의 건물을 찾아볼 수 없는 이곳에선 지평선 끝까지 뻗은 설원과 침묵을 지키는 울창한 숲이 시야를 가득 채운다. 인위적인 소음이 소거된 이 고요한 공간은 핀란드인들이 복잡한 일상을 뒤로하고 달려오는 가장 사랑받는 안식처다.

핀란드 라플란드 이나리 시 이발로 마을에서 만난 순록 (사진=이민하 기자)
강력한 엔진 소리를 내뿜는 스노모빌을 타고 끝없는 설원을 가로질러 설산 꼭대기의 순록 농장에 닿았다. 가이드 안씨(Anssi)는 “라플란드에만 약 20만 마리의 순록이 자유롭게 산다”며 “이곳 사람들에게 순록은 단순한 가축을 넘어 삶을 지탱하는 ‘피와 살’같은 존재”라고 설명했다. 라플란드인들에겐 대대로 순록의 소유권을 물려받는 독특한 전통이 있다. 순록은 눈 쌓인 들판을 제멋대로 거니는 듯 보이지만 각각의 귀에는 소유 가문을 나타내는 표식이 새겨져 있다.

이들에게 순록은 혹독한 북극의 추위를 견디게 해주는 고기이자 의복이며, 문명과 떨어진 설원을 건너게 해주는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 현대화된 오늘날에도 이 가치관은 변하지 않았다. 급격한 기후 변화와 개발 논리 속에서도 순록과 함께하는 삶의 방식을 고수하는 것은 라플란드인에게 자존심을 지키는 일이다. 안씨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순록 수프와 거친 빵을 내오며 담담히 덧붙였다. “순록을 잉태시키고, 키우고, 그로부터 생명을 얻는 일은 우리에게 단순한 관습이 아닙니다. 이 거친 땅에서 우리가 인간으로서 존재해 온 방식, 그 자체입니다.”

핀란드 라플란드 이나리 시 이발로 마을 ‘와일더니스 호텔 유우투아’(Wilderness Hotel Juutua)의 사우나에서 바라본 유우투아 강 (사진=이민하 기자)
◇옷과 함께 직함도 문밖에 놔두세요

저녁 무렵 숲의 고요함이 내려앉은 ‘와일더니스 호텔 유우투아’의 강변 사우나로 향했다. 핀란드 전체 인구는 약 550만 명. 전국에 설치된 사우나의 수는 무려 330만 개에 달한다. 모든 가정이 자택에 사우나를 갖추고 있고 여름 별장에도 빠지지 않으니 사실상 1인당 하나꼴로 사우나를 보유한 셈이다.

핀란드인들에게 사우나는 단순히 몸을 씻는 목욕 시설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사우나는 핀란드인의 생애 주기에서 가장 신성하고 청결한 공간으로 여겨져 왔다. 병원이 흔치 않던 시절 핀란드 여성들은 따뜻하고 소독된 환경인 사우나에서 새로운 생명을 맞이했다. 반대로 삶의 여정이 끝났을 때 고인의 몸을 마지막으로 정갈하게 씻기는 곳 역시 사우나였다. 이처럼 탄생의 울음소리와 죽음의 침묵이 교차해 온 사우나는 핀란드인들에게 있어 삶의 시작과 끝이 공존하는 영적인 성소와도 같다. 오늘날에도 주 1회 이상 사우나를 찾는 핀란드인들에게 이곳은 하루의 피로를 씻어내고 내면을 정화하는 명상의 장소로 기능하고 있다.

오늘 날의사우나는 ‘평등’의 상징이기도 하다. 이 안에서는 사회적 지위와 재산, 직함이 옷과 함께 문밖에 남겨진다. 군부대 사우나에서 장군과 병사가 나란히 앉아 수평적인 대화를 나누는 풍경은 핀란드에선 당연한 일이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마르티 아흐티사리 전 대통령이 ‘사우나 외교’를 통해 갈등을 중재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핀란드 행복 연구 권위자인 철학자 프랭크 마르텔라는 행복을 ‘목표’가 아닌 ‘결과’라고 했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꾸리고 신뢰할 수 있는 관계 속에서 의미 있는 일을 할 때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상태라는 것이다. 도서관의 명당을 아이들에게 내주는 배려, 전통을 지키는 긍지, 계급을 벗어던진 평등의 사우나까지. 핀란드는 행복하기 위해 억지로 노력하는 나라가 아니었다.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사회 시스템을 오랜 시간 구축해 온 결과였다. 그저 살아가다 보니 어느새 ‘행복할 수밖에 없는’ 나라가 된 것이다.

열기를 식히기 위해 사우나 문을 열고 눈밭으로 몸을 던졌다. 살을 에듯 차가운 눈이 닿는 순간 비명 같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핀란드가 선물한 ‘자연스러운 행복’에 취해 그곳에서 한참 동안 깔깔거리며 웃었다.

여행 수첩

▶가는 길= 헬싱키까지는 인천에서 직항 기준 약 11~13시간, 핀에어가 주7일 정기 노선을 운항한다. 이발로는 헬싱키에서 국내선으로 약 2시간 30분 소요된다.

▶숙소 정보= 유우투아 강변 옆에 위치한 ‘와일더니스 호텔 유우투아’(Wilderness Hotel Juutua)는 강변 사우나 공간 ‘코스키 사우나’와 현지 식재료를 맛볼 수 있는 레스토랑 ‘아나르’를 갖추고 있다.

▶액티비티 정보= 이발로 여행 정보는 광역 관광 DMO ‘라플란드 노스 데스티네이션스’(Lapland North Destinations)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숙소·액티비티·음식점 등 약 100개 회원사 정보를 제공한다. 스노모빌 탑승, 순록 농장 방문은 ‘라포니아 투어스’(Lapponia Tours)를 통해 예약할 수 있다.

이민하 (minha12@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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