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죠, 사랑, 미치겠어요!” MZ의 시풍이라면? 이 시인의 것 [.txt]
MZ 생애주기 ‘사랑’으로 되짚고 갈무리
4년새 시집 세권…이 시대 ‘20대의 지도’ 그려

2022년 등단한 한 시인의 기세가 두드러진다. 이듬해 첫 시집 ‘샤워젤과 소다수’를 문학동네에서 냈고, 이달 세번째 시집 ‘러브 온 더 락’을 창비에서 펴냈다. 두번째 시집(‘심장보다 단단한 토마토 한 알’)은 열림원이 개시한 시인선의 첫 권을 장식했다. 지난해 일이다. 두권의 산문집 이야기는 일단 빼자. ‘당돌한 서정주의’로 젊은 독자를 불러 모았던, 내년 등단 5주년에 만 서른을 앞둔 시인 고선경이다.
서로 다른 3종을 한데 두고 보니 또 하나의 내러티브로 엮인다. 불안한 청춘의 감각을 넉살과 자조로 펼쳐냈던 시인은, 좀 더 상실했고 침잠하되 “이 시 꼭 사서 간직해”라는 도발을 멈추지 않았으며, 바야흐로 숨가쁘게 통과하려는 생애 한 주기를 무릇 사랑의 이름으로 되짚고 갈무리해 간다. 이 시대 ‘20대의 지도’가 그려지는 것이다.
각 시집에 차례로 새긴 ‘시인의 말’로도 그 맥락이 잡힌다. 우연찮게 1년3개월 간격으로 쓰였다.
“너에게 향기로운 헛것을 보여주고 싶다.”(2023년 10월)
“아삭아삭할 겁니다. 겨울을 견뎌 본 심장이라서요.”(2025년 1월)
“진짜 사랑으로 바글거리는 것 같았다.”(2026년 4월)
하여, 엠제트 세대의 시풍이란 게 만들어지고 있다면 그 한 줄기는 고선경의 몫인 듯하다. 이번 시집 ‘러브 온 더 락’의 시구로 보자면 “시절을 어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는 바람과 “언젠가 너희는 남자 친구 책장에 내 책이 꽂혀 있기를 간절히 바라게 될 거라”는 바람 따라 고선경에게 시는 ‘감각의 패션’이다. 향과 색, 맛으로 풍성한 감각의 런웨이에서 사랑과 환희는 두말할 나위 없으니, 묻게 된다. 슬픔, 우울, 수치, 폭력과 상처, 분노, 질투, 충동, 방황, 이별조차 어떻게 각광을 받고, 빛을 띠는가.

“내일이 지구의 종말이라면 뭘 하고 싶어?” 질문으로 시작하는 시 ‘누덕누덕’에서 “이제는 종말도 시시해”라고 화자는 말한다.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차라리 “약간 죽고 싶은 마음”으로. 이른 권태와 조로가 세대 감각이랄까. 하지만 고선경의 시풍에서라면, 이는 상태로서 진단될망정 동태적으로 더 전개될 수는 없는 일 같다.
“끝났다는 건 다음으로 가야 한다는 거지 바보야//우리가 구사했던 사랑을 기억해?/ 붉은 풍등에 내 소원은 너라고 적었던 일” “우리는 우리를 무력하게 만드는 데 재능이 있어// 사랑을 곧잘 자랑으로 읽는 나와 자랑을 사랑으로 읽는 네가 동시에 무력할 수 있다는 게 좋아서// 나는 자랑해 자랑할 만한 사랑이 아닐지라도 자랑해본 적이 있다는 것에 대해// (…) 어떤 운명은 단지 오늘의 운세 같고 또 거대한 운석 같지 세계를 박살 내러 왔어요” “숱하게 부서져본 햇살 조각들이 넘실거리는 종말의 아침 풍경 속에서 우리는 약간 얼빠졌고 무력하다 이 사랑은 아주 시시한 반칙 같아”(‘누덕누덕’)
패배자를 양산하는 능력·경쟁 사회에서 무력함이 재능이 되고, 그것이야말로 이 세계를 ―시시하게라도― 흔드는 가능성이 된다. 시는 상실로 가득한 개인의 추락하지 않는 내면으로만 보아도 무리랄 게 없다. 실상 사회 체제를 포착하는 시어 하나가 이 시엔 없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패션’을 지배 조종하는 자본주의처럼, 시집의 막후 또한 엄연해 보인다.
집부터 불온하질 않은가. “빙하 냄새 철근 냄새 영안실 냄새”로 감각을 해치고, 저 혼자 난동한다. “왜 나는 다 이해할 것 같은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놀이의 규칙 같은 것/ 서울은 집값이 미쳤다잖아/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간다니까/ 우리가 이렇게 열렬한데”. 열렬한 우리가 “새하얀 이불 속에서 천사랑 뒹굴”망정 “질척한 침 소리가 점점 커지면서 방 안을 울”릴망정, 천장은 좁다, “평수가 가늠된다 이 집…… 보증금이 삼천”이라서.
“네온사인을 낭비하고 싶다”는 심사가 ―그러지 못해― 절실할수록 “종말은 시시”하고 “불은 지루하다”. “입속에서 녹 맛이 느껴진다”. 시 ‘12월 블루스’에선 그 사정이 애틋해진다.
“우리 즐거웠지 한 칸짜리 방 안에서 나무가 앙상한 거리에서 술집에서// 꼬박꼬박 미안해했다/ 마음을 주무르고 내팽개치고/ 아름다움에 관해서는 더이상 할 말이 없고// 지상은 시끄럽다/ 잘 들으려고 노력했는데// 우리는 왜 즐겁고 서로에게 미안한 걸까// 실은/ 이 모든 게 견딜 만했다는 게/ 가장 견딜 수 없는 진실이었지//…// 그래서 미워했다/ 내가 견뎌낸 것들”
고 시인은 1997년 경기 안양에서 태어나 전주에서 자랐다. 2022년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러브 온 더 락’은 여러 시에서 매우 구체적인 발단을 지닌다. 특히 학창 시절 일들로 기동하는데, 시집을 구성하는 1~4부 중 4부가 주로 그렇다. 금발로 탈색한 중학생 때, 복도에서 학교 선배에게 맞던 때, 책상에 엎드린 채 잠들고 꿈꾸던 때, 어떤 연인의 사랑을 목도했던 열일곱 때, “비 맞아본 적도 없으면서/ 젖은 운동화는 오랫동안 찌그러져 있었”던 그때 또 그때.
예의 고선경이 맞느냐고 물을 필요는 없다. “가장 견딜 수 없는 진실”의 고백이, 동시에 시적 화자에게 미래를 감지시킨다는 점에서 그렇다.
“학교만 가도 똑같은 교복이 얼마나 가지각색인지 알 수 있다”는, “선생님은 우리를 미래 없는 세대라고 일컬었지만/ 우리의 미래는 다르다고 매일 조금씩/ 꿈틀거린다고 선생님의 괴물과/ 나의 괴물과 너의 괴물은 궁극적으로/ 다르고 고유한 에너지”라는, 그 발견과 전망이 ‘회고’로 가능한 셈이다.
‘러브 온 더 락’은 “칵테일 같은 연애”와 “잠겨가는 얼음의 최후” 두가지로 형상화한다. “수치심보다 정교한 나의 사랑”으로 계속되는 시인의 회고는 시제로부터 자유롭다.
“내가 여기에 있으면 너는 거기에 있어/ 내가 사랑한다고 말하면 너도 그렇다고 답해// 물보라는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지만/ 나는 버티는 법을 배우고 있는 것 같아” “진짜 촌스럽게/ 좋았지?// 너는 사랑을 가르쳐주지 않지만/ 나는 사랑에 실패하지 않지”
지난해 산문집 ‘29.9세’의 글귀와도 닿는다. “어쩌면 여든 살 먹고도 아니, 죽고 난 뒤에도 사랑받고 싶어 할지 모른다. (…) 실은 원하기도 전에 이미 사랑하고 있어.” 사랑에 20대를 다 건 고선경이라는 20대 마지막 시집의 전경이겠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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