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2026 스카이런’…123층 555m “걸어서 하늘을 오르다”

이문수 기자 2026. 4. 2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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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층 건물 ‘롯데월드타워’ 계단 올라
한달 전부터 체력 관리하며 철저히 준비
‘30층마다 8분대 주파’ 전략 세워 출발
20층까지 가뿐…60층대 최대 위기 와
90층 지나니 정상 오른 듯 쾌감에 흥분
경쟁 아닌 ‘자신과의 싸움’ 되뇌며 완주
19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에서 열린 ‘2026 롯데월드타워 스카이런’에서 참가자들이 출발선을 떠나고 있다. 박종혁 기자 hyeok@nongmin.com

‘우리나라에서 키가 가장 큰 건물에 오른다. 엘리베이터 없이!’

수직마라톤이라는 것이 있다. 보통 마라톤은 평지를 달리지만 수직마라톤은 높은 건물을 오르는 것을 말한다. 19일 한국에서 가장 높다는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에서 수직마라톤 대회 ‘2026 롯데월드타워 스카이런(SKY RUN)’이 열렸다.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치랴. 운동 좋아하는 기자가 직접 555m, 123층 높이를 자랑하는 마천루 정복에 나섰다.

올라야 사는 남자
“부장님!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건물, 롯데월드타워에서 수직마라톤을 한답니다.” “오! 문화부에서 체험기로 다뤄보자. 직접 뛰어볼래?” “아니요!”

수직마라톤대회 도전은 MZ세대(1980∼2000년대 초반 출생 세대) 후배 기자의 단호한 거절에서 출발했다. 마천루 정상을 두고 펼쳐지는 이색 경기라 행사 단신으로 싣기는 아까웠다. 선수가 없다? 그럼 감독이라도 경기에 나가야지!

준비는 3월부터 했다. 평소 미세먼지 농도가 낮은 날엔 3∼5㎞ 뛰기를, 농도가 짙은 날엔 30층 높이 아파트 계단 오르기를 해왔는데 중순부턴 운동 강도에 박차를 가했다. 꾸준히 아파트를 두번씩 오르다 이달 9일엔 4회(30층×4회=120층)까지 늘렸다. 롯데월드타워 층수를 고려한 일종의 최종 평가전이었다.

‘나는 오른다. 고로 존재한다.’

편집계획이 이미 올라가 있고 사내 소문까지 났으니 식언할 수도 없게 됐다. 어떻게든 정상에 올라 체험 과정을 글로 녹여내야 한다. 졸지에 ‘올라야 사는 남자’가 돼버렸다. 만시지탄이라!

폐쇄적인 공간이 공포스러웠다
‘완주할 것, 중간에 쉬지 말 것.’ 목표를 겸손하게 잡았다. 첫 출전인 데다 건물 내부 환경도 잘 알지 못해서였다. 그래도 자신감은 충만했다. 평가전도 잘 마무리했고 무릎을 포함한 전반적인 몸상태도 괜찮았다.

19일 오후 3시 드디어 출발선에 다다랐다. 많은 사람의 응원을 받으며 건물 로비를 지나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초반은 산뜻했다. ‘30층마다 8분대 주파’ 전략을 짰다. 20층까지는 전략대로 속도를 유지했다.

경기에 참가한 이문수 기자가 계단을 오르고 있다. 박종혁 기자 hyeok@nongmin.com

그런데 웬걸? 그 이후부턴 다리에 힘이 풀렸다. 기자가 사는 아파트와는 달리 외부가 전혀 보이지 않는 폐쇄적인 공간에서 반복적인 굴절계단을 걸으려니 답답하고 신경마저 곤두섰다.

60층대에서 최대 위기가 찾아왔다. 그만 오르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다. 어쩌랴 이미 루비콘강을 건너버린 것을…돌아갈 수도 없는 딱 중간 층이다.

다시 호흡을 가다듬고 두 허벅지가 벌겋게 될 때까지 손바닥으로 여러차례 세게 내리쳤다. 움직이라는 명령이었다. 반환점을 돈 시점에서 전략을 다소 수정했다. 손잡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해 추동력을 얻고, 지그재그로 걸으며 힘을 아껴보기로 했다.

완주자에게 주어지는 선물, 서울의 조감
‘러너스 하이’에 진입한 이문수 기자. 박종혁 기자 hyeok@nongmin.com
90층대에 올라서면서 반전의 계기를 마련했다. 정상이 손에 잡힐 듯했고 이른바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뇌에서 통증을 억제하는 엔도르핀을 분비해 고통이 사라지고 쾌감이 생기는 현상)’에 진입한 것 같았다.

심장이 마구 요동치고 숨이 깔딱 넘어가려는 순간 드디어 ‘123’이라는 구원의 숫자가 시야에 들어왔다. “단 한가지 약속은 틀림없이 끝이 있다는 걸, 끝난 뒤에 지겨울 만큼 오랫동안 쉴 수 있다는 것.” 여성 그룹 SES의 노래 ‘달리기’의 한 소절이 귓가에 맴도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자신도 믿기 어려운 완주다. ‘문명의 이기’를 전혀 이용하지 않고 오롯이 두발로만 123층에 닿았다는 것이 정녕 사실이더냐?

완주자에게 주어지는 것은 메달과 기념품만이 아니다. 500m가 넘는 높이에서 내려다보이는 ‘서울의 조감’이 홍진의 시름을 잊게 하고 마음을 풍요롭게 한다.

이제 기록을 확인할 차례다. 37분59초가 나왔다. 전체 2253명 중 936등, 남자 1457명 중 694등을 했다. 우승한 사람이 16분8초라니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는 말을 실감한다. 남성 1등은 일본 국적의 료지 와타나베가, 여성 1등은 같은 국적 유코 타테이시가 차지했다.

이색 참가자도 눈길을 끈다. 부모 손을 잡고 현장을 찾은 최연소 4살 유아도 완주 의지를 불태웠고, 최고령 83세 어르신은 노익장을 과시했다. 단체 참가한 소방관은 두꺼운 소방복과 무거운 공기통을 들고 고독한 레이스를 펼쳤다.

이문수 기자가 완주 후 기록판 앞에서 메달을 들어 보이고 있다. 박종혁 기자 hyeok@nongmin.com

경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우뚝 솟은 은색 고층 빌딩을 잠시 응시했다. ‘올라갈 때가 있다면 내려와야 할 때도 있다. 중간에 탐욕을 부리면 목표에 다다를 수 없다. 타인과의 경쟁보다 나 자신과의 싸움에 집중하라.’

오늘만큼은 롯데월드타워가 철근과 콘크리트 덩어리로 보이지 않았다. 인생에 필요한 잠언을 차분하게 일러주는 거대한 철인(哲人)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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