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의병 130주년-역사가 된 무명] 5. 류홍석 의병장과 고병정가사
강화도 조약 반대 상소 운동 외세 반발
춘천의병 봉기 이소응과 1896년 합세
‘고병정가사’ 211수 지어 사기 드높여
한일신협약 계기 후기 의병 일제 저항
윤희순 의병장 등 류홍석 일가 힘보태
1910년 만주 망명 독립운동 잇다 별세
외당 증손자 류연익 전 광복회도지부장
강원대 박물관에 사료 4000여점 전달
독립운동사 재조명·얼 선양 사업 헌신
“왜놈들은 금수와 동류로다” 가사로 일깨운 의병의 혼

“슬프고 슬프도다 통한함도 통분하다
각도열읍병정들아 네 내말을 들어보라
사람의 귀한 것이 인륜 밖에 또 있는가
임금에게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함이
천지의 상경이요 고금의 통한 의라
옛적사람 말도말고 우리나라 고가대족
조상의서 충효하며 강상을 붓잡으사
수명죽백 하오시고 유명천추하오시니
자손이 음덕입어 대대로 세록하다
억피완충 왜놈들은 금수와 동류로다”
-고병정가사(告兵丁歌辭) 中
■ 외당(畏堂) 류홍석(柳弘錫)

그러던 중 1895년 8월 20일 명성황후가 일제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을미사변이 벌어졌고, 같은 해 11월 15일에는 단발령이 공포되며 조선의 근간이 되는 전통적인 가치관이 흔들리자 위정척사의 사상이 고조됐다. 이에 1896년 1월 춘천의병을 일으킨 이소응과 함께 가평과 청평 일대에서 의병에 참가했다. 그러나 의병은 관군과 일본군에 비해 세력이 밀렸다. 결국 의병 활동이 실패하게 되자, 류인석의 제천의진에 합세해 그의 막하에서 군무를 주재했다.
이 시기 의병들이 관군의 회유책으로 인해 이탈하는 등 의병의 사기가 크게 떨어지자 ‘고병정가사’ 211수를 지어 의병의 마음을 진작시키는 데 힘썼다.

■ 초기의병에 이어 후기의병까지
1907년 일제가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을 강요해 한국의 내정권을 장악하자 전국적으로 정미의병이 일어났다.
이때 고향에서 후학 양성에 힘쓰던 류홍석 의병장 역시 진위대 해산 직후인 8월부터 집안 어른 류중악(柳重岳) 등과 의병을 다시 일으킬 것을 모의했다. 류홍석은 가정리 황골에서 류영석(柳寧錫)·류제곤(柳濟坤)·박선명(朴善明)·박화지(朴華芝)등과 더불어 격문을 발표하고 후기의병을 일으켰다.
그는 고종황제가 일제에 의해 강제 퇴위 돼 유폐된 일에 대해 “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문인 사우들을 중심으로 의병 600여 명을 모았다. 의병은 춘천 진병산(陣兵山), 가평 주길리(珠吉里) 등지에서 일본군과 치열한 혈전을 벌였다.
이때 류홍석의 일가는 의병 활동에 모두 힘을 보탰다. 류중악은 의병의 군자금과 탄약, 군량이 부족하자 농사짓던 소를 내놨고, 류홍석의 며느리이자 여성 의병장으로 후세에 널리 알려진 윤희순(尹熙順) 역시 가정리의 고흥 류씨 집안 사람들 및 마을 주민들과 합심해 의병을 지원했다.
그러나 모두가 힘을 모아 일제에 저항했음에도 불구하고 춘천의병은 관군에 비해 장비가 열악했다. 전문적인 훈련을 받지 못한 민간인들이었기 때문에 관군과 일본군에 대항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류홍석의 춘천의병은 가평 부근 주길리전투에서 패하며 기세가 크게 꺾였다. 이때 류영석이 전사하자 의병들은 동요했다.
이에 류홍석은 잔여 의병을 김노수(金魯洙) 의병장에게 맡기고, 홍천에서 재기한 박장호 의병부대에 들어가 항일투쟁을 이어갔다.
그러나 피로가 겹치며 발에 종창이 생겼다. 이 때문에 부득이 제천 장담리로 몸을 옮겨 재기를 노렸으나 이미 전국적으로 의병 세력이 크게 약화한 상태였다. 끝내 1910년 8월 29일 나라가 일제에 넘어가는 경술국치가 벌어지자 만주 지린성(吉林省) 환런현(桓仁縣)으로 망명해 독립운동을 이어갔다.
이후 1913년 12월 21일 73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공적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80년 건국포장)을 추서했다.

■ 고병정가사(告兵丁歌辭)
외당 류홍석이 직접 지은 의병가인 고병정가사는 그가 의병으로 활약하며 여러 차례의 전투를 치르는 가운데 1896년 2월 관군의 회유책에 마음이 동해 군을 이탈하려는 의병이 늘어나자 짓게 됐다. 고병정가사에는 의병부대를 격려하고 이들의 사기를 높이는 내용이 담겨있다. 그의 글 덕분인지 이후 의병은 춘천, 안동, 천안 등지에서 전과를 거둘 수 있었다.
현재 고병정가사 진본은 강원대학교 박물관이 소장 중이며, 박물관 2층에 마련된 의병사료전시관에서 관람할 수 있다.
지금의 의병사료전시관은 지난 2003년 9월 22일 개관한 것으로, 전시관 내에는 외당 류홍석을 비롯해 의암 류인석 의병장, 윤희순 의병장 등 춘천과 강원도를 중심으로 일제에 저항해 의병 활동을 전개한 여러 인물의 전시품이 보관 중이다.
전시관을 채운 사료는 류홍석 의병장의 증손자이자 윤희순 의병장의 손자인 故 류연익 전 광복회도지부장이 강원대 박물관에 기증한 것들로, 그는 생전 4000여 점에 달하는 사료를 전달했다.
중국 랴오닝성(遼寧省)에서 태어난 류연익 전 지부장은 8살이 되던 해부터 독립운동에 투신하는 등 생전 ‘국내 항일운동의 산증인’으로 평가받아 왔다.
특히 그는 1983년부터 2012년까지 30여 년간 의암선생 얼 선양 사업을 비롯한 춘천의병 등 독립운동사 재조명에 크게 이바지했다.


또 강원도애국선열추모탑, 의암 유인석 어록비, 윤희순 여사 가사비, 한서 남궁억 추모비, 중국 ‘의암기비’, 중국 윤희순 항일기념비 등 국내외에 추모탑·기념비를 건립했다. 이밖에 윤희순 의사의 유해를 중국에서 이장해 왔고 의암 선생 벼루와 유물 10점을 중국에서 구입해 의암기념관에 기증했다.
특히 의암 선생이 중국 망명 때 활동하던 항일유적지를 발굴해 연구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또 가정리 유적지 성역화 사업을 위해 정부에 방문, 건의해 예산확보에 기여했다. 이같은 공훈으로 고인은 1986년 한국보훈대상과 사회정화선행상, 1991, 1995년 대통령 표창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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