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민주 이란’ 정권교체 호소한 마지막 왕자…“4만명 죽음, 언론이 들어달라”

한기호 2026. 4. 23.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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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라비, 獨서 회견 “이란인 非인간화 방치 안돼”
“수백만명 봉기, 수만 목숨 잃어” 1월시위 부각
“냉혈하게 처형된 시위대 시신 덤프트럭 수거”
“최근 2주 19명 정치범 처형, 20명 사형 앞둬”
38세 간호사·23세 청년·17세 수영선수 조명
“살인기계 체제 다른얼굴뿐, 합리·실용 없어”
“‘자유 이란’ 선택이 기회” 봉기 보호지원 호소

1979년 이란 이슬람혁명으로 왕조가 축출돼 망명 투쟁을 벌여온 ‘마지막 샤(국왕)의 아들’ 레자 팔라비 전 왕세자가 독일에서 세계 외신을 향해 “이란 사람들이 비인간화(사람이 아닌 추상적 존재로 취급)되도록 내버려두지 말아달라”며 신정(神政)정권의 1월 반정부시위 민간인 수만명 학살 의혹과 탄압을 조명해달라고 호소했다.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 최고지도자 친위 군사조직) 주축의 정권과 당국자들과는 ‘지속가능한 평화’를 이룰 수 없으며 국제사회가 단절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자유롭고, 세속적이며, 민주적인 이란”으로 정권교체 및 과도정부 구상도 내놓으며 “한 세대(30년)에 한번 올까 말까 한, 10년간 1조달러가 넘는 경제적 기회”라고도 했다.

팔라비 전 왕세자는 23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 연방의원들을 만난 뒤 연방 기자회견장에서 외신과 만나 “‘자유 언론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아는 전문가로서의 여러분’께, 그들(이란 시민)의 이야기를 전해달라고 요청드린다. 독일에선 (유대인 학살 등으로) 비인간화가 얼마나 위험한지 너무나 잘 아실 거”며 이같이 말했다.

미국에 망명해 이란 신정체제 종식을 주장해온 레자 팔라비 전 이란 왕세자가 23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의 연방 기자회견장에서 열린 기자회견 중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EPA=연합뉴스]


기조연설에서 그는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정권 간 전쟁 외에 “너무 많은 이들에게 간과돼온 전쟁”이 있다며 “47년째 계속된 전쟁에서 정권은 이제 막 4만 명의 민간인을 학살했고, 이 전쟁엔 어떤 휴전도 존재하지 않는다. 수년간 탄압 끝에, 지난 1월 (8~9일) 수백만명 이란인들이 봉기했다. 수만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화두를 던졌다.

이어 “그들은 핵 합의를 위해 죽지 않았다. 지금 체제를 조금 손질하는 정도의 변화나 개혁을 위해 죽은 것도 아니다. 그들은 ‘자유’를 위해, 자신의 나라를 되찾기 위해 죽었다. 국제 언론은 이른바 ‘외교·휴전·협상·합의’의 최신 국면만 얘기하지만 현장에서 벌어지는 사실은 외면한다”며 “세상이 보지 못하는 잔학행위”들을 상기시켰다.

그러면서 “정권이 인터넷 접속을 차단하고, 목격자들의 입을 막았다. 정권의 요원들은 병원에서 부상당한 시위대를 사냥하듯 추적해 냉혈하게 처형했다. 시신들은 덤프트럭으로 수거됐다. 가족들은 이름도 표시되지 않은 시신 주머니들이 줄지어 놓인 곳을 뒤지며,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야 했다”고 시위 유혈탄압 등 참상을 전했다.

팔라비는 “정당성이 죽는 순간 권력은 무너지기 시작한다. 메르츠 독일 총리가 말했듯 ‘어느 정권이 오직 자국민에 대한 순수한 폭력과 공포에 의존해야만 권력을 유지할 수 있다면 그 정권은 이미 끝난 것’이다”며 “변화는 이미 오고 있다. 서방 민주주의 공동체가 그저 지켜보는 동안, 얼마나 많은 이란인이 더 목숨을 잃게 될 것인가”라고 지적했다.

그는 “‘4만명’이란 숫자는 너무 커서 너무 추상적이다”며 희생자들의 사연을 소개하기도 했다. 일례로 “살레하 아크바리는 1월 봉기 당시 38세 간호사였다. 그녀와 남편 아흐마드 호다이는 집 문을 부상당한 시위대에게 열어줬다”며 “많은 이들이 (정권의 색출로) 병원 가기를 두려워했다. 그들은 부상자들을 치료했고, 숨겨줬고, 목숨을 살렸다”고 했다.

이어 “며칠 뒤 정권의 요원들이 집에 들이닥쳤다”며 “요원들은 그녀의 심장을 향해, 남편과 어린 자녀가 지켜보는 앞에서 가까운 거리에서 총을 쐈다”고 했다. 또 “그 요원들은 그녀의 시신을 수습한 뒤 시신을 능욕·강간해 그 끔찍한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 남겼다. 심리적 고문을 가하려 그 사진들을 (남편)아흐마드에게 보냈다”고 실태를 전했다.

이밖에 1월 시위 희생자로 “아랴 알리도스트는 23살이고 부동산 업계에서 일하는 것을 꿈꾸고 있었다”, “삼 압샤리는 아직 17살도 되지 않은 나이에 수영 챔피언이었다”고 소개했다. 두사람 각각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동행했다고도 했다. 아울러 “불과 2주 동안 19명이 정치범 처형됐다”, “20명의 정치범이 사형을 선고받고 집행을 기다리고 있다”고 알렸다.

미국에 망명해 이란 신정체제 종식을 주장해온 레자 팔라비 전 이란 왕세자가 23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의 연방 기자회견장에서 기자회견하고 있다.[EPA=연합뉴스]


팔라비는 ‘자유 세계’를 향해 “이 학살을 침묵 속에 지켜볼 것인가”라며 탄압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전해달라고 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최근 만난 그는 “젤렌스키는 ‘잔혹 행위가 생존으로 보상될 때 모든 폭력배에게 하나의 신호가 보내진다’고 경고했다. ‘충분히 많은 사람을 죽이면 권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신호”라고도 밝혔다.

팔라비는 현 이란 정권의 대미협상 담당자들을 ‘온건파’ 내지 ‘합리적’이라고 평가해선 안 된다며 “갈리바프(이란 국회의장)와 아라그치(외무장관)는 실용주의자가 아니다. 그들은 ‘개혁파’도 아니다. 커튼 뒤에 숨은 IRGC의 살인자들 또한 마찬가지”라며 “그들은 살레하의 심장을 쏜 그 동일한 (살인)기계, 동일한 체제의 다른 얼굴들”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런데도 여러분들(서방언론)은 그들을 ‘실용주의자’라 부른다. 이란 국민을 처형하는 게 어떻게 실용적인가. 정권이 여러분과 세계를 향해 가하는 협박을 어떻게 ‘실용적’이라 부를 수 있나”라며 “이 정권이 살아남도록 내버려둔다면 또 다른 충돌을 피할 수 없다. 이 체제가 비록 ‘완화된 버전’이라고 해도 남아있는 한 ‘안정’은 결코 오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란 국민이 원하는 것은 깨끗한 단절”이라며 “그들은 ‘손에 피를 묻힌 괴물들이 어느날 갑자기 평화를 가져올 외교관으로 변신했다’는 그 불편한 환상과 맞바꿔 자신의 자유를 내놓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특히 “(희생된) 4만명은 기자회견을 열 수 없다. 살레하는 ‘기록’을 바로잡을 수 없지만, 여러분은 할 수 있다. 유럽은 아직 그걸 하지 않았다”고 했다.

미국 망명 중인 이란 마지막 샤(국왕)의 아들이자 신정정권 붕괴를 촉구해온 레자 팔라비 전 왕세자를 지지하는 시위대가 23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의 라이히스타크 건물 인근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팔라비는 “지금 유럽이 맞닥뜨린 선택은 ‘전쟁과 평화’ 사이의 선택이 아니다. 우리 모두를 위협하고 있으나 이미 쇠락하고 있는 정권과, 안정 파트너가 될 수 있는 자유 이란 사이의 선택”이라며 “유럽 각국 정부는 이 정권을 달래는 정책을 당장 멈춰야 한다. 정권 대사를 추방하고 IRGC 중심의 권력구조를 유지하는 어떤 합의도 인정하지 마시라”고 촉구했다.

그는 “이데올로기를 국민의 삶보다 앞세우고, 평화가 아닌 테러를 수출해온 그것이 진짜 이란이 아니다. 제가 구상하는 과도정부는 첫날부터 다음과 같이 약속하겠다”며 “이란의 핵 야망을 즉각적·영구적으로 종식시킬 것이다. 모든 형태의 테러지원을 중단할 것이다. 모든 인질을 석방하고 모든 정치범을 풀어줄 것이다. 국제사회와 관계를 정상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동 관계를 두고도 “레바논·예멘·이라크·시리아를 황폐화시킨 대리전들을 끝내고, 지역 경제통합 파트너가 될 것이다. 이란의 에너지 잠재력이 다시 세계 시장과 연결되면 유럽 소비자, 페르시아만(걸프) 이웃 국가들, 이란 국민 모두에게 이익”이라고 했다. 다만 “이 모든 건 이 정권이 완전히 사라지고, 이란 국민의 혁명이 승리할 때만 가능해진다”며 이란 자유화 지지를 호소했다.

팔라비는 뒤이은 문답에선 네덜란드 공영방송 기자의 ‘미군이 개입했지만 정권교체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는 질문에 “정권의 깡패들이 거리에서 사람(저항 국민)들을 향해 ‘조준사격’을 하지 못하도록, 최소한의 방어막을 제공할 수 있는 ‘지속적인 캠페인’이 필요하다. 그런 ‘최소한의 보호’가 있어야 이 싸움에서 겨우 동등한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답했다.

그는 “‘보호’란, 사람들이 ‘정권이 물러나고 있다’고 느끼며 전진하기 시작했을 때 갑자기 다시 정권의 무자비한 반격에 직면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며 국제사회와 언론의 적극적인 관심을 촉구했다. 특히 “지금 정권 내부는 사실상 붕괴가 진행 중”이라며 “국민을 탄압하란 명령에 따르길 거부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있다. 일하러 나오지 않는 이들도 있다”고 했다.

특히 “그 결과 정권은 (1월 시위 진압 때) ‘이란 밖에서’ 5000명 이상 용병을 끌어와야 했다. 그들은 이란 시민조차 아니다.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레바논에서 온 자들이다. 거리에서 국민을 때리고 쏘는 ‘더러운 일’을 시키기 위해서”라며 “어느 순간 정권은 자원과 수단을 소진할 것이다. 용병들에게 줄 돈도 떨어질 거다. 그때가 바로 이란 국민에게 다시 기회”라면서 “더 많은 목숨을 구하려면, 사람들을 ‘학살당하러’ 거리로 나가도록 손놓고 있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한기호 기자 hkh89@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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