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일의 좋은 정부 만들기]기획예산처의 역사, 그리고 앞으로의 기대

우여곡절 끝에 기획예산처가 출범한 지 100일이 지났고, 초대 장관이 임명된 지는 한 달이 지났다. 기존 기획재정부가 둘로 쪼개지면서 재정경제부와 함께 탄생한 조직이다. 기획예산처라는 이름이 보여주듯 국가 발전 전략 기획과 예산 편성을 맡는다. 기획예산처 업무 중 기획은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다. 이에 비해 재정·경제 정책을 총괄하는 재정경제부 업무는 대체로 현안에 대응하는 것이다.
현안 대응과 미래 준비를 한 부처에 둘지, 분리할지는 행정조직 분야에서 오래된 논쟁 중 하나이다. 둘이 한 부처 내에 있으면 현안 대응에 치우치기 마련이다. 당장 급한 일부터 처리하다 보면, 앞날을 예측하고 대비하는 데 많은 시간을 쏟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한편, 기획이 실행력을 지니려면 예산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래서 미래 준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기획과 재정·경제 현안 대응은 분리하고, 예산은 기획과 함께 두는 게 좋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지금까지 정부조직 편제를 보면, 기획·예산과 재정·경제 현안 대응을 두 부처로 나눈 적도 있고 한 부처에 몰아준 때도 있다. 분리의 논리는 이해하겠는데, 통합의 이유는 무엇일까. 하나는 ‘기획’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다. 기획은 영어로 planning인데, 이는 계획으로도 번역된다. 국가 발전을 위한 계획 수립에는 여러 분야가 포함되지만, 대표는 경제이다. 그런데 경제계획 혹은 계획경제는 사회주의 체제의 본질적 속성이다. 정부가 경제를 계획하고 실행하는 건 자본주의 시장경제 원칙에 맞지 않는다. 또 하나는 예산 편성과 국고 관리는 한 부처가 맡는 게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통합과 분리 반복해온 기획과 재정
우리 제헌헌법에는 의외로 사회주의적인 요소가 꽤 들어 있다. 20세기 초반의 독일, 바이마르공화국 헌법을 많이 참고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경제를 전적으로 시장에 맡기는 대신 상당 부분 정부 개입을 허용했다. 한편 일제강점기 후반은 전시 경제체제로서 계획 (혹은 통제) 경제에 익숙했다. 이래저래 신생 대한민국의 발전 전략을 수립하는 기획을 중시할 수밖에 없었다. 그에 따라 기획과 예산을 전담하는 기획처라는 대규모 조직을 만들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동시에 공포된 정부조직법은 기획처의 업무를 ‘재정·경제·금융·산업·자재와 물가에 관한 종합 계획 수립과 예산 편성’이라고 규정했다. 기획처는 6·25전쟁 후 예산 업무를 재무부로 이관하고, 명칭도 부흥부로 변경하면서 ‘산업경제의 부흥에 관한 종합적 계획과 그 실시의 관리·조정’에 집중했다.
기획·예산 전담 부처 전성기는 개발연대 시절이다. 고도성장의 문을 연 박정희 정부는 경제기획원을 만들어서 수차례에 걸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이끌었다. 당시 정부조직법은 경제기획원 업무를 ‘국민경제의 종합적 개발계획 수립과 발전, 예산 편성과 집행, 국내외 가용자원 동원, 투자 및 기술 발전 계획의 종합적 조정’이라고 명시했다. 시장경제 체제로 보기 힘든 막강한 권한이다.
30년 넘게 맹위를 떨친 경제기획원은 김영삼 정부에서 재무부와 합쳐져 재정경제원이 되었다. ‘기획’이란 단어가 빠진 것에서 알 수 있듯, 기획 기능은 대폭 축소됐다. 개발연대의 정부 주도 성장 대신 시장의 자율성을 중시하겠다는 뜻이었다. 혹자는 정부 기획 기능이 축소된 채 시장 주도 개방경제로 성급히 이행한 것이 외환위기의 한 원인이었다고 말한다.
통합에 따른 기획 기능 약화가 외환위기에 얼마나 책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김대중 정부는 재정경제원을 기획예산처와 재정경제부로 분리했다. 단, 당시 기획예산처 업무는 개발연대의 경제기획원과는 판이했다. 당시 정부조직법은 이를 ‘예산 정책, 예산 편성 및 집행 관리와 재정·행정 개혁’으로 명시했다. 경제구조가 성숙해 더 이상 개발연대의 경제계획은 맞지 않게 된 데다, 당시는 외환위기 직후로서 경제·사회 각 분야에서 개혁을 추진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기획예산처는 성과 중심 행정, 공공기관 개혁, 재정제도 혁신 등 다양한 개혁을 이뤄냈다.
업무간 분절화 극복해야 성과 높여
효율을 강조했던 이명박 정부는 기획예산처와 재정경제부를 다시 합쳐 기획재정부를 만들었다. 단, 과거 재정경제원에 대한 비판을 의식해, 기획이라는 명칭은 살렸다. 17년간 존속한 기획재정부는 이재명 정부에서 다시 기획예산처와 재정경제부로 분리됐다. 이번에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와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를까? 정부조직법은 현 기획예산처 업무로 ‘중장기 국가 발전 전략 및 재정 정책 수립, 예산·편성·집행, 성과관리, 국가채무’를 명시하고 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기획 업무가 행·재정 개혁에 치중했다면, 이재명 정부에서는 중장기 전략 수립, 성과관리, 국가채무 관리에 방점을 두고 있다.
현재 기획예산처는 모든 정부 부처 사업 예산을 평가해 비효율적 사업, 느슨한 경비 쳐내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조만간 지방교육재정교부금, 기초연금 등 굵직한 지출 구조조정도 시행할 예정이다. 또한 ‘2045 미래 비전’도 발표할 것이라고 한다. 재원 조달 방안 미비로 비판받은 노무현 정부 때의 ‘비전 2030’을 반면교사 삼아 재원 조달 방안도 고민하겠다고 한다.
이들은 법이 정한 기획예산처 미션에 부합하는 것으로 긍정적이다. 다만, 여기에 한 가지 추가할 것을 당부한다. 바로 ‘분절화 극복’이다. 정부 정책은 상호 영향을 미치는 복수의 하위 업무들로 구성돼 있다. 업무 간 활발히 소통하고 계속 조정해나가야 효과적인 정책 목표 달성이 가능하다. 대한민국 공무원은 열심히 일한다. 하지만 분절된 체계에서 자기 업무에만 몰두하다 보니 소통 및 조정은 신경 쓰지 못한다. 그래서 각자는 성실히 일하지만, 전체로서의 성과는 미흡한 경우가 부지기수다.
성과관리 역시 법이 규정한 기획예산처 업무이다. 성과관리에는 지출 절감도 필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성과 자체를 높이는 것이다. 나는 행정의 분절화 극복이 정책 성과 향상에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는 새로 출범한 기획예산처의 핵심 업무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기획예산처 파이팅!

김태일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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