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아의 선물]발 매트와 액상 프림

그 아이를 처음 만난 건 2003년이었다. 새내기였던 아이는 강의가 끝나면 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는 주로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는지, 자기 문장에 문제는 없는지, 매번 소설에 대한 고민을 털어놨다. 마흔이 코앞이었는데도 그때의 나는 누군가와 가까워지는 법을 알지 못했고, 그래서 다가오는 사람들이 불편했다. 친한 사람에게 먼저 전화해서 안부를 물어본 적도 없었다. 나중에야 깨달았다. 빨갱이의 딸이라는 주홍글씨 때문에 어린 나이부터 나를 드러내지 않는 법을 익혔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채 제대로 된 관계를 맺을 수는 없는 법이라 관계에 서툰 사람으로 성장했다는 것을. 어떤 상처가 남긴 흔적은 이렇게나 뿌리 깊어 삶 전체를 뒤흔들고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다. 마흔의 나는 그런 결핍이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으므로 당연히 오만했다.
아이는 내가 계속 거리를 두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이건 그때의 내 생각일 뿐이다. 나중에 보니 아이는 다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제 딴에는 최선을 다해 조심했으리라) 다가왔다. 경계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가까워졌고, 때로 아이는 집 근처로 찾아오기도 했다. 시장 갈 때를 제외하면 집 밖에 잘 나다니지 않던 터라 나는 십 년 가까이 살았으면서도 동네의 식당이나 카페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휴대전화 검색도 되지 않던 시절, 아이는 친구의 친구에게라도 물어 우리 동네의 맛있다는 식당이며 카페를 알아왔다. 처음 가는 곳을 지도도 없이 아이는 척척 찾아갔다. 아마도 나를 만나기 전에 미리 가본 것 같았다. 나를 찾아올 때마다 아이는 뭔가를 들고 왔다. 각종 화장품, 자잘한 소품들. 정확한 품목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이렇게나 무심한 사람이다. 확실히 기억나는 선물은 발 매트다. 대체 이런 걸 왜 선물로 주는 건지 의아했고, 그래서 기억하는 모양이다. 나중에 들었다. 함께 걷던 중 내가 아 맞다, 발 매트 사야 되는데, 라고 두어 번 말을 했단다. 바빠서 못 사는 줄 알고 아이는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 발 매트를 사다준 것이다. 바빠서 못 산 건 아니었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물건 사는 걸 귀찮아한다. 특히 인테리어용 소품은 절대 사지 않는다. 발 매트가 낡아서 새 걸 사는 게 좋았을 테지만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니 그냥저냥 지났을 게 분명하다. 아이의 다양한 선물을 받을 때마다 나는 고마워하기는커녕 나는 의아해서 물었다.
도대체 이런 걸 왜 선물하는 거야?
세상에. 마흔 무렵 내가 한 말에 환갑 지난 내가 다 낯이 뜨거웠다. 아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라면 그런 말을 듣고 다시는 선물 같은 거 해주지 않을 것 같아서. 아니 그런 말을 한 사람을 다시는 보지 않을 것 같아서. 그런 말을 듣고 괜찮았냐고 물었더니 아이는 하하 웃었다.
그러게요. 그런 시절이 있었네요.
그러게요, 라는 한마디에 얼마나 많은 함의가 숨어 있을까. 그때 아이는 고작 스물, 스물하나였다. 아이는 나보다 더 세상에, 사람에 서툴렀을 것이다. 예쁜 소품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당연히 몰랐을 테지. 제 딴에는 내가 생각나서 집어 들었을 그 많은 선물을 나는 고마워하기는커녕 이런 걸 왜 주니? 라는 차가운 말과 함께 냉담하게 받았다. 받지 않느니만 못하게. 그 무렵 아이는 많지 않았을 용돈의 상당한 양을 내게 썼다. 하고 싶은 것도 많았을 나이에. 그 돈이, 선물을 고르느라 썼을 그 시간이 나를 향한 아이의 마음이었다.
몇 달 전 아이가 다녀갔다. 일본 여행을 다녀오면서 아이는 나를 위해 많은 것을 사왔다. 이제는 내 취향을 잘 알아서 두부나 미역이 든 즉석 미소 수프와 사케. 그리고 액상 커피 프림. 프림을 보자마자 알았다. 구례 내려온 직후 한 제자가 돌체 구스토 커피 머신을 선물했다. 여기서는 커피 캡슐도, 액상 프림도 구하기 어려워 아이에게 몇 번 부탁한 적이 있었다. 그 기계를 쓰지 않은 지 오래다. 아이도 안다. 하지만 여행지에서 우연히 발견한 액상 프림을 보며 나를 떠올렸을 것이다. 아이가 가고 난 뒤 원두를 내려 오랜만에 액상 프림을 넣어 마셨다. 그래, 내가 이 맛을 좋아했었지. 지나간 것은 잊기 쉽다. 제 취향조차도. 그래도 잊지 않으련다. 발 매트를 사던 아이의 마음을, 그 마음조차 받을 줄 몰랐던 나의 어리석음을.

정지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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