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청렴은 도덕이 아니라 설계다

얼마 전 규정상 문제는 없었지만 결정 과정이 충분히 설명되지 않아 구성원들 사이에 불신이 생긴 상황을 목격한 적이 있다. 담당자는 원칙에 따라 업무를 처리했다고 말했지만 주변 사람은 그 결정이 공정했는지 쉽게 납득하지 못했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규정의 유무가 아니라 과정의 투명성에 있었다. 이 경험은 나에게 한가지 질문을 남겼다. 우리는 과연 청렴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많은 나라 가운데 덴마크는 세계에서 가장 청렴한 국가 중 하나로 평가받아왔다. 흔히 우리는 그 이유를 국민성이나 문화에서 찾으려 하지만 덴마크의 사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청렴은 개인의 도덕성에서 비롯된 결과라기보다 제도와 운영방식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 사회가 특별히 더 선해서가 아니라 부정이 발생하기 어렵도록 시스템이 설계돼 있기 때문이다.
덴마크 행정의 특징 중 하나는 결정 과정이 기록으로 남고 그 기록이 설명 가능하다는 점이다. 중요한 사안일수록 누가 어떤 기준으로 판단했는지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이는 책임을 강화하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구성원 간 신뢰를 유지하기 위한 기반이 되기도 한다. 신뢰는 반복 가능한 절차와 예측 가능한 기준 속에서 서서히 형성되기 때문이다.
우리 행정 역시 지난 수십년 동안 많은 발전을 이뤄왔다. 제도는 정교해졌고, 감사와 감독 장치도 강화됐다. 그러나 여전히 현장에서는 '규정상 문제는 없다'는 설명이 충분한 설득력을 갖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경험하게 된다. 이는 규정이 부족해서라기보다 과정이 충분히 공유되지 않았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다시 말해, 청렴의 문제는 단순히 위법 부를 판단하는 차원을 넘어 이해와 납득의 수준에서 다뤄져야 한다는 뜻이다.
청렴한 행정은 문제가 전혀 발생하지 않는 조직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문제가 생겼을 때 그 원인을 투명하게 드러내고,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구조를 개선할 수 있는 조직을 의미한다. 덴마크가 보여주는 중요한 교훈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은 부정을 완전히 없애려 하기보다, 부정이 생기기 어렵고 숨기기 어려운 환경을 만드는 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특히 주목할 점은 재량과 책임의 균형이다. 행정 현장에서는 어느 정도의 재량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재량이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책임의 형태로 연결돼야한다. 누가 어떤 판단을 했는지가 명확히 기록되고 설명될 수 있을 때, 그 재량은 조직의 유연성을 높이는 자산이 된다. 반대로 책임이 불분명한 재량은 작은 의심도 큰 불신으로 확대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청렴을 개인의 양심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누구라도 같은 기준으로 판단하고 같은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일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제도는 이미 상당한 수준에 도달해 있다. 앞으로 필요한 것은 그 제도를 일관되게 적용하고, 그 과정을 시민과 구성원에게 충분히 보여주는 일이다.
청렴은 특별한 사람의 덕목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 실수하지 않도록 돕는 환경에서 자란다. 덴마크의 경험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도 바로 그것일 것이다. 청렴은 도덕이 아니라 설계이며 신뢰는 의지가 아니라 반복 가능한 절차에서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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