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쇄기에 휴대폰 넣어라"… 10조 원대 담합 들통난 전분당 4사

이유지 2026. 4. 23.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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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분당'(전분+당류) 국내 시장을 90% 이상 장악하는 4개 업체가 8년 여에 걸친 무려 10조 원대 가격 담합으로 검찰에 덜미가 잡혔다.

전분당 부산물에선 점유율 1위 업체가 담합을 주도했다.

앞서 설탕 담합 수사가 이뤄지는 것을 본 전분당 업체 관계자들이 "우리처럼 훈련이 좀 됐어야 하는데, 훈련이 안 돼 있어서 자료가 싹 나와 버린 것 같다" "교육받았는데 실형 산 사람은 없고, 다 집행유예로 빠졌다고 하더라" 등 이야기를 나눈 녹취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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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사조CPK·CJ제일제당 무더기 기소
3사 대표 등 25명 재판에… 임원 1명 구속
업체별 '인상 가격·날짜' 치밀한 사전 협의
"파쇄기에 휴대폰 넣어라" 증거인멸 정황
8년간 가격 최대 73% 올려 소비자 부담
서울 시내 대형마트에 23일 전분당 제품인 올리고당 등이 진열되어 있다. 뉴시스

'전분당'(전분+당류) 국내 시장을 90% 이상 장악하는 4개 업체가 8년 여에 걸친 무려 10조 원대 가격 담합으로 검찰에 덜미가 잡혔다. 식료품 업계 담합 중 사상 최대 규모다. 전분당은 음식, 음료, 주류, 과자부터 가축용 사료까지 다양한 산업에 활용되는 일종의 '기초 원료'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부장 나희석)는 23일 대상·사조CPK·CJ제일제당 법인 3곳과 각사 대표이사 등 임직원 25명을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지난 16일 구속기소된 대상 사업본부장 김모씨를 제외하곤 모두 불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다. 삼양사도 담합에 가담했지만 수사에 적극 협조한 점을 감안, 기소 대상에서 제외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 4개사 담합은 2017년 7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이뤄졌으며 관련 매출액 기준으로 10조1,520억 원 규모에 달했다. 범행은 △전분당 가격 일반 담합(7조2,980억 원) △대형 실수요처(서울우유·한국야쿠르트·농심·오비맥주·하이트진로·포스코 등 6곳) 입찰 담합(1조160억 원) △부산물 가격 담합(1조8,380억 원) 등 세 갈래로 이뤄졌다.

수법은 치밀했다. 팀장급들이 회의실에 모여 물엿·과당·전분 등 품목별 가격 인상 목표치를 정하고 업체별로 제안 가격을 조금씩 다르게 정했다. 이 경우 담합이 드러나지 않으면서 각 제안가 평균치 수준으로 가격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담합 위장 목적으로 회사의 공문 발송 시기를 서로 엇갈리게도 했다. 전분당 부산물에선 점유율 1위 업체가 담합을 주도했다. 일부 업체가 높은 가격에 따른 재고를 우려하자, 해당 업체는 '못 팔면 우리가 사주겠다'며 담합을 계속 이끌어간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은 각 사가 내부 보고용으로 촬영한 칠판 사진도 확보했는데, 여기엔 목표가 및 업체별 액수와 날짜 등 담합 모의 내용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고 한다. 특정 업체가 합의를 어기고 속임수를 쓰는 '치팅'을 방지하고자, 한 사무실에 모여 서로 감시하고 약속대로 공문을 보내는 모습을 인증한 사진들도 주요 증거가 됐다.

나희석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장이 23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검에서 전분당 담합 관련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뉴스1

수사에 대비한 정황도 나왔다. 검찰이 확보한 통화 녹취에서 관계자들은 "나도 휴대폰을 바꿔야 하느냐" "○○본부장까지는 (수사가) 안 갈 것 같다" "파쇄기에다 휴대폰도 넣어 버려야지" 등 대화를 주고받는다. 검찰은 로펌 조력으로 자체 포렌식 후 자료 대부분을 삭제했다고 보는데, 점유율 1위 업체 전 대표 휴대폰에선 메시지 2만1,000여 개 중 460여 개만 복구가 가능했다.

앞서 설탕 담합 수사가 이뤄지는 것을 본 전분당 업체 관계자들이 "우리처럼 훈련이 좀 됐어야 하는데, 훈련이 안 돼 있어서 자료가 싹 나와 버린 것 같다" "교육받았는데 실형 산 사람은 없고, 다 집행유예로 빠졌다고 하더라" 등 이야기를 나눈 녹취도 있었다. 한 업체는 '담합방지가이드북'에 '사내 메신저, 휴대폰 메시지 대화가 담합의 핵심 증거가 될 수 있다'는 당부를 담기도 했다.

검찰은 앞서 대상 대표인 임모씨에게 두 차례, 사조CPK 대표 이모씨에게 한 차례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모두 기각됐다. "가담 소명이 부족하고(1차 기각), 방어권 보장이 필요하다(2차 기각)"(임씨), "증거가 충분히 수집돼 인멸 우려가 없다"(이씨)는 이유였다.

검찰은 이들 담합으로 전분은 최고 73.4%, 과당류는 최고 63.8%까지 가격이 올랐다고 설명했다. 반면 4개사 매출액은 담합 전 대비 연평균 24.5% 상승했다. 나 부장검사는 "통상 식품업계 영업이익률은 4, 5%에 불과하다"면서 "이들 업체는 담합으로 10% 이상 초과 달성하는 등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취했다"고 강조했다.

이유지 기자 mainta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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