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와 전란으로부터 간송의 신념이 지킨 작품을 보라

작품들을 되사는 것 자체가 살을 에는 아픔이었다.
1938년 서울 성북동에 문화유산의 보고 보화각(간송미술관)을 설립한 대수장가 간송 전형필(1906~1962)은 한국전쟁 직후 기막힌 상황을 맞닥뜨린다. 일제강점기 일본에 유출될 처지였던 옛 서화·도자기들을 거액을 주고 지켜냈던 그는 1945년 해방 뒤 수집을 중단하고 인수한 보성학교 운영과 소장품 보존 관리에 주력하려 했다. 하지만 5년 뒤 터진 전란은 간송 컬렉션을 허물어뜨렸다. 훈민정음, 개츠비 컬렉션 등 1급 유물, 겸재 정선,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등의 걸작들은 몸소 지닌 채 부산으로 피난했지만, 전후 서울의 미술관에 돌아와보니 수장고가 텅텅 비어 있었다. 난리통에 털어간 것이다. 상당수가 청계천 등지의 가게를 떠돌고 있었고, 불쏘시개 등으로 쓰인 유물도 적지 않았다. 간송은 눈물을 머금고 경매에 다시 나가 원래 자신의 소유였다 흩어진 컬렉션들을 되사들이기 시작한다.

간송미술문화재단(이사장 전영우)과 간송미술관(관장 전인건)이 지난 15일부터 간송미술관에서 봄 기획전시로 열고 있는 ‘문화보국 文化保國: 신념으로 지켜낸 우리의 얼’은 뼈저린 사연이 깃든 간송의 재수집 컬렉션들을 일부 보여준다. 지난 수년간 미술관 연구진이 1950년대 한국 고미술 거래를 주도했던 대한고미술협회 도록과 간송가의 관련 수집 자료를 대조 분석했다. 50~60점의 소장품을 간송이 당시 경매를 통해 구매했다는 실증 자료를 찾아 그 내역을 공개했다.
1층 들머리 오른쪽 진열장에 도드라지게 눈에 들어오는 작품이 구한말 조선 정부의 외교관 강진희가 1888년 미국 현지의 증기열차 주행 장면을 전통 남종화풍으로 그린 ‘화차분별도’다. 주미조선공사관이 미국 워싱턴에 개설될 당시 파견된 지식인 관료가 미국 기계문명을 견문한 기록이란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크다. 이 그림은 당시 워싱턴에서 강진희와 교류했던 청나라 공사관 참찬관 팽광예의 그림과 함께 묶은 2인 화첩 ‘미사묵연’의 일부다. 화첩은 원래 간송의 수집을 자문했던 당대 최고 감식가 위창 오세창(1864~1953)이 친일파였던 민영휘의 사위 이유익으로부터 건네받았던 것으로, 1938년 보화각이 생기기 전 간송에게 양도했다. 그러다 한국전쟁 때 수장고 밖에 흘러나와 떠도는 신세가 됐으나, 간송이 1956년 대한고미술협회 경매에서 4만1천환이라는 거액에 사들여 다시 수중에 넣은 사실이 최근 조사로 밝혀졌다. 화첩 옆에는 젊은 선비 넷이 야외에서 시 짓고 그림 그리는 모임을 하는 정경을 담은 이용림의 1864년 작 ‘서당아집도’도 나왔는데, 역시 4만환을 주고 1956년 협회 경매에서 되사들인 것이다. 미술관 연구진은 이외에도 위창이 1934년 써준 ‘북단산장’(北壇山莊) 전서 편액 글씨도 전쟁 때 유출됐다가 간송이 되찾은 영수증 기록까지 찾아냈으나 실물은 아직 나오지 않아 수소문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를 통해 간송이 한국전쟁 이후에도 전통유산을 지킨 수호자였음을 절감하게 된다.

간송의 탄신 120주년을 맞아 차린 이번 전시의 또 다른 축은 일제강점기 이 땅의 고미술품들이 일본에 팔려나가던 통로였던 경성미술구락부와 간송의 거래에 얽힌 비화들이다. 1922년 일본인 골동상들이 설립한 경성미술구락부는 조선 최대 미술품 거래처로, 해방 전까지 260여회의 경매가 열렸다. 낙찰 총액은 1935년 12만5000엔에서 1941년 37만5000엔으로 급증했는데, 이 과정에서 무수한 고미술 유산이 유출돼 지금껏 돌아오지 않고 있다. 조선인은 극소수만 참여했던 구락부 경매에 전형필이 일본 대리인을 내세워 사들인 서화와 도자들을 이번 전시에서 한자리에 모았다. 1930년 구락부 경매에서 처음 낙찰받은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석파묵란첩’과 1936년 일본 고미술업체 야마나카상회와 응찰 경쟁 끝에 구락부 사상 최고가 1만4580원(당시 기와집 15채 값)을 불러 입수한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국보), 1930년대 고미술 시장의 선호 품목이었던 짐승 모양 잔과 연적 등 백자 컬렉션, 추사 김정희의 명작 글씨 등이 나왔다. 칼칼하고 호방한 17세기 조선 중기 절파화풍의 대가 김명국의 신선 그림 ‘비급전관’, 심사정의 그림과 강세황의 감상평이 함께 들어간 18세기 ‘표현연화첩’ 등이 1930~40년대 일본 고위 관료의 소유물이었고, 추사의 걸작 글씨 ‘사야’와 ‘침계’는 조선왕실의 마지막 내시 이병직과 의학박사 박창훈의 애장품이었다가 간송의 손에 들어갔다는 경성구락부 매입회 낙찰 기록은 처음 세상에 알려지는 것들이다. 이 땅의 예술 유산들이 마구 유출되는 역사적 위기 상황에서 수장가 간송이 어떻게 대처하며 문화보국을 실천했는지를 당대 아카이브를 검증해 풀어낸 전시회라고 할 수 있겠다.


미술관 건물 바로 옆에는 1935년 경매에서 입수해 간송가 거처인 북단장 들머리의 수문장이 됐던 돌호랑이 한쌍을 옮겨다 전시해놓았다. 지난 1월 이재명 대통령의 방중 당시 중국 정부와 기증각서를 체결한 입구의 17세기 명대 석사자상 두쌍이 올 하반기 중 반환되면 그 자리에 이 석호 한쌍이 들어서게 된다고 재단 쪽은 알렸다. 전영우 재단 이사장은 전시도록 서문에 이렇게 썼다. “미술관에 전하는 작품에는 남긴 이의 정신과 그 정신을 지켜낸 이의 신념이 함께 담겨있다. 선친 간송께서 끝내 말씀하지 않으셨던 것이 무엇인지, 작품들 앞에 잠시 발걸음 멈추고 그 물음을 고요히 품어주시기를 청한다.” 6월14일까지.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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