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침대에 누운 채 지갑 연다…미디어아트도 ‘사는 작품’ 될까

유승목 2026. 4. 23.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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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아트 전문 아트페어 '루프 플러스'
23일부터 나흘 간 그랜드조선 부산에서
국제 미디어아트 페스티벌 '루프 랩' 연계
그랜드조선 부산 호텔에서 열린 '루프 플러스' 아트페어에 마련된 아티비스트 부스에 그레그 이토의 작품이 상영되고 있다. 루프 플러스 제공

부산 해운대 그랜드조선 부산 호텔 1331호 객실은 23일부터 나흘간 서울 삼청동의 백아트 전시장으로 탈바꿈한다. 객실 내부에는 커다란 미디어아트 작품이 관람객을 맞는다. 추미림 작가의 러닝타임 6분짜리 단채널 비디오 ‘픽셀 아틀라스’다.

작가가 나고 자란 경기 성남시 분당구를 시작으로 미술을 공부한 프랑스 파리를 거쳐 일터로 삼고 있는 서울까지 위성으로 포착한 도시 이미지를 픽셀 단위로 분해해 재배열한 작품이다. 도시를 가변적인 데이터의 장으로 바꾼 미디어아트라 가능한 조형적 실험이라 눈길을 끈다.

건너편 1323호에선 커다란 심장박동 사운드가 들려온다. 더 써드(THE THIRD) 갤러리가 마련한 객실 부스인데, 유르겐 스탁의 ‘에로전-DMZ’이 걸렸다. 경계지역인 비무장지대(DMZ)를 찍은 이미지를 모래에 인화해 소리의 진동으로 점차 붕괴하는 모습을 담아냈다. 사진부터 설치, 퍼포먼스, 사운드를 미디어아트로 한 데 아우른 셈이다.

이뿐 아니다. 호텔 13층 26개 객실에 국내외 갤러리들이 부스를 꾸려 미디어 아트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작품들은 객실 통창에 펼쳐진 해운대 바다와 백사장과 동화되는가 하면, 암실처럼 빛을 차단한 채 영상과 사운드에 몰입하게 만든다. 관람객은 침대에 눕거나 소파에 앉아 작품을 감상하다가 갤러리 관계자에 가격을 묻기도 한다. 미디어 아트 전문 아트페어 ‘루프 플러스(LOOP+)’의 풍경이다.

그랜드조선 부산 호텔에서 열린 '루프 플러스' 아트페어에 마련된 백아트 부스에 추미림의 작품이 상영되고 있다. 루프 플러스 제공

미디어아트도 살 수 있나요

루프 플러스는 부산에서 6월까지 펼쳐지는 국제 미디어아트 페스티벌 ‘루프 랩 부산’과 연계한 아트페어다. 지난해 ‘루프 랩 부산 아트페어’로 처음 열렸다가, 올해 루프 플러스로 이름을 바꿨다. 에스더 쉬퍼, 갤러리 징크, 탕 컨템포러리 아트 등 국내외에서 잘 알려진 갤러리들과 광주미디어아트플랫폼, 저스피스재단 등이 참여했다.

루프 플러스라는 아트페어 자체는 특별할 것은 없다. 전쟁 등 지정학적 불안과 고유가·고물가 등 경제적 위기 영향으로 미술시장 불황이 지속되는 가운데에서도 시장에서 ‘과잉’이라 부를 만큼 국내에서 많은 아트페어가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의 ‘미술시장실태조사’에 따르면 2024년에만 108개의 아트페어가 열렸다. 전국 단위로 사나흘에 한 번꼴로 아트페어가 열리는 셈이다. 더군다나 특급호텔 객실을 빌려 부스를 꾸미는 ‘호텔 아트페어’도 미술계에선 익숙한 포맷이다.

루프 플러스가 눈길을 끄는 게 있다면 미디어아트를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이다. 회화, 조각과 달리 미디어아트는 시장성이 낮다는 이유로 컬렉팅(수집) 측면에선 주목받지 못해왔다. 회화의 경우 단 한 점만 존재하고 손에 잡히는 실물인 반면, 미디어아트는 복제 가능성과 설치 환경에 따라 작품의 형태가 달라지는 특성 탓에 거래 기준이 모호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지난해 처음 개최된 루프 랩 부산과 함께 첫선을 보인 루프 플러스를 두고 일각에서 ‘올해는 열리지 못할 것’이라는 의심을 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김영은 루프 플러스 대표는 “미디어 아트는 비엔날레나 특정 전시를 통해 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특히 아시아에선 유통 구조가 아직 명확하게 자리 잡지 않은 상황”이라며 “루프 플러스를 방문하는 관람객 중에서도 ‘미디어 아트를 개인이 소장할 수 있는지’를 묻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랜드조선 부산 호텔에서 열린 '루프 플러스' 아트페어에 마련된 마이어리거울프 부스에 클레멘스 폰 베데마이어의 작품이 상영되고 있다. 루프 플러스 제공

NFT 위기인데…거래 접근성 낮아질까

루프 플러스는 일단 미디어아트가 ‘거래할 수 있는 자산’이라는 인식을 심는다는 계획이다. 루프 플러스에 따르면 지난해 페어에서 파리 유명 미술기관인 피노컬렉션은 물론 개인 컬렉터들도 작품을 구매했다. 미디어아트 장르에 대한 수용성이 높아지는 추세인 데다, 가격 장벽도 낮은 편이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올해 페어에선 1000만~4000만원대 작품이 주를 이루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장 방식도 다양해지고 있다. 추미림 작가는 “작품을 구매하면 직접 키트를 만들어 컬렉터에게 전달한다”면서 “액자처럼 실물로 작품을 만드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다만 미디어아트가 시장에서 대중성을 얻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디지털 미술의 ‘가치 보증수표’처럼 여겨졌던 NFT(대체불가능토큰)의 기능이 휴지 조각만도 못한 신세가 되는 등 시장 신뢰를 잃은 타격이 크다. 올해 루프 플러스에 국내 갤러리의 참여가 저조한 것도 아트페어 참가를 위해 들여야 할 비용 대비 실익이 부족하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루프 플러스 역시 사업적으로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부산시립미술관이 주축이 된 루프 랩 부산과 연계된 행사지만 별 다른 공공 지원은 없기 때문이다. 갤러리 한 부스당 수 백만원 수준의 부스비와 기업 후원 파트너십으로 페어를 꾸리고 있다. 루프 플러스는 유료 멤버십을 대상으로 정기적으로 작품 감상과 소장이 가능한 ‘구독형 컬렉팅’ 모델 등을 구상 중이다.

김 대표는 “루프 플러스는 작가 중심의 시장 확장을 중요하게 보고 있다”며 “올해는 신세계프라퍼티와 협력해 그랜드조선 호텔 외부 미디어 파사드에 페어에 나온 작품을 상영해 관객과 만나게 할 예정”이라고 했다.

부산=유승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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