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다 [말글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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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마다 '사람 일, 한치 앞도 모른다'는 말이 튀어나온다.
'아는 게 병'이라는 말과 '알아야 면장을 한다'는 말이 함께 쓰이는 걸 보면 알아야 할 것과 몰라도 될 것을 분간하는 일이 중요한 숙제임이 분명하다.
더 흥미로운 것은 '모르다'가 감정을 극대화하는 표현으로 쓰일 때다.
어쩌면 우리는, 모른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에 세계를 더 넓게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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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마다 ‘사람 일, 한치 앞도 모른다’는 말이 튀어나온다. 답답해서 하는 소리이기도 하고, 그러니 너무 연연해하며 살지 말자는 달관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나는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훨씬 많아 수시로 ‘이것도 모르다니’ 하며 머리를 쥐어박는다. ‘아는 게 병’이라는 말과 ‘알아야 면장을 한다’는 말이 함께 쓰이는 걸 보면 알아야 할 것과 몰라도 될 것을 분간하는 일이 중요한 숙제임이 분명하다.
뭘 모른다는 것은 단순히 앎의 결핍이 아니라, 오히려 생각할 여지를 남기는 방식이다. 예컨대 ‘친구여,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바로 지금 여긴지도 몰라’라는 말에 쓰인 ‘모르다’는 단순한 무지가 아니라 가능성을 닫지 않는 태도다. 내가 ‘모른다’며 판단을 유보하니 듣는 사람도 그 일을 함께 생각할 수 있는 틈이 생긴다.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바로 지금 여기야’라고 단정 짓는 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더 흥미로운 것은 ‘모르다’가 감정을 극대화하는 표현으로 쓰일 때다. ‘그의 부고를 듣고 얼마나 슬펐는지 모른다’ 혹은 ‘너의 합격 소식에 우리가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라는 말을 보자. 슬프고 기쁜 주체는 분명 나 자신인데, 정작 나는 그 감정의 크기를 가늠할 수 없단다. 무지하다는 뜻이 아니다. 내 안에 차오른 슬픔과 기쁨의 깊이가 언어로 측량할 수 없을 만큼 크고 깊다는 선언이다. 수치나 언어로 담아낼 수 없을 때, 역설적으로 우리의 감정은 인식의 경계를 뚫고 무한대로 확장된다.
인간은 ‘모른다’는 여백 위에서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짐작하고, 타인의 슬픔에 깊이 공감한다. 어쩌면 우리는, 모른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에 세계를 더 넓게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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