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회장을 ‘이회장’이라 부를 수 있는 삼성전자 직원, 있나요?

한국 목욕탕에서 “사장님”이라고 부르면 절반쯤은 뒤를 돌아본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퇴임한 지 오래된 장관이나 전직 국회의원을 영원히 ‘장관님’이나 ‘의원님’으로 부르거나, 상대를 직급 중 가장 높은 것으로 불러주는 ‘올려치기’도 관행이다. 한국 사회에서 호칭은 서열을 의미하고,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와 성취를 확인받는 절차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중국 비즈니스 현장의 호칭은 놀랄 만큼 유연하고 실용적이다. 가장 흔한 말이 ‘라오스(老师)’다. 본래 스승을 뜻하지만 지금은 전문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붙는 범용 존칭이다. 대학 교수는 물론이고 실무 전문가를 부를 때도 자연스럽게 사용된다. ‘내가 박사인데 왜 선생님이냐’는 식의 신경전은 보기 어렵다. 우리가 ‘회장님’이라 높여 부르는 기업 오너 역시 중국에서는 총경리(CEO)나 관리자를 폭넓게 가리키는 ‘총(总)’을 붙여 간결하게 부르는 경우가 많다. 이씨 성을 가진 회장님은 ‘이총(李总)’으로 부르는 식이다. 한국에선 자기 회사 CEO를 “이회장”이라고 부를 수 있는 직원이 과연 있을까?
이런 유연함이 가능한 이유는 중국이 한국보다 더 평등해서가 아니다. 역설적이게도 이미 시스템이 개인의 위치를 충분히 규정하고 있고 누가 실세인지 확실한데 굳이 호칭을 고민하며 불필요한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한국 기업들은 한때 경직성을 깨기 위해 영어 별명이나 ‘님’ 호칭을 도입했다. 하지만 실험은 오래가지 못했다. ‘님’으로 부르면서도 말투와 의사결정은 여전히 서열을 따라 움직였고, 모호해진 위계는 오히려 ‘누가 더 높으냐’를 따지는 피로감으로 돌아왔다. 결국 많은 조직이 다시 직급 호칭으로 회귀하거나, 겉으로는 ‘책임’ 같은 수평적 호칭을 쓰면서도 속으로는 여전히 의전과 위계에 집착하는 기묘한 이중 구조를 택했다.
공자는 ‘말은 전달되면 그만(辭達而已矣)’이라고 했다. 메시지보다 호칭이 신경쓰이는 사회에서는 형식을 깨는 창의력이 발휘되기 어렵다. 실용성은 거창한 제도가 아니라 상대를 부르는 방식 하나를 가볍게 만드는 데서 시작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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