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언 일가 재산 환수 추적…검찰 ‘압류 선언’과 ‘지난 12년’

"범죄수익을 숨겨놓고 국가가 제대로 몰수·추징을 못 하면 큰 문제다"
지난해 12월, 대통령 업무보고를 마친 정성호 법무부 장관의 말이다. 정 장관은 '범죄수익 환수'를 핵심 과제로 꼽으며 전담 부서 확대 개편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
'죄를 지어도 돈만 지키면 된다'는 인식을 뿌리 뽑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범죄수익 환수를 강조하는 법무부가 정작 말하지 않고 있는 대목이 있다. 바로 세월호 참사 관련 범죄수익 환수 결과다.

12년 전, 세월호 참사 당시 검찰은 대대적인 브리핑을 통해 고 유병언 전 회장 일가의 '차명 재산'을 끝까지 추적해 환수하겠다고 공언했다.
12년이 지나는 동안 검찰이 내건 '대국민 약속'은 얼마나 지켜졌을까.
■ 9억에서 200억 된 '강남 자곡동 알짜 부지'…결국 '유병언 측근' 손으로

서울 강남구 자곡동의 한 임야. KTX 수서역 인근 도로와 맞닿은 '알짜' 부지로, 면적만 1만 4,000여 ㎡에 이른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직후, 검찰은 이 땅을 유 전 회장의 차명 재산으로 지목했다. 법원으로부터 곧장 추징 보전 명령받아 동결 조치도 재빨리 마쳤다.
하지만 지난달 3일, 법원은 12년 만에 이 땅의 재산 동결을 해제했다. 땅 명의자들이 '내 재산'이라며 국가를 상대로 내건 소송에서 법무부가 패소했기 때문이다.
패소의 핵심 이유는 '증거 불충분'. 검찰 수사 기록과 진술을 바탕으로 법무부는 유 전 회장의 차명 재산을 입증하려 했지만, 법원은 물증이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KBS 취재 결과, 유 전 회장 '금고지기' 역할로 의심받았던 김혜경 전 한국제약 대표의 가족들이 2003년, 이 땅을 9억 원에 사들였고, 지난 2024년 명의를 모두 김 씨에게 넘겼다.
현재 이 땅 시세는 약 200억 원으로 2003년 구매액 9억 원과의 차익은 190억 원대로 추정된다.
전문가들은 '끝까지 환수하겠다'던 검찰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했다며 비판의 날을 세웠다.
정지웅/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시민입법위원장·변호사
"증거 부족으로 패소했으면, 증거를 더 보강해야지, 돈의 흐름을 좀 더 살펴봐야지, 이렇게 생각하는 게 일반 국민 상식 아니겠어요? 그런 걸 안 한 걸로 보인다는 거죠."
■ '압류 선언' 뒤 '12년 소송 기록' 봤더니…조용히 진행된 '추징보전 해제'

KBS 취재진은 유 전 회장 일가의 차명 재산 소송 기록 등 핵심 문서 50여 건을 단독 입수해 전문가와 함께 분석했다.
검찰은 2014년부터 2022년까지 모두 7차례에 걸쳐 유병언 일가의 재산으로 의심된다며 국내외 자산을 전방위로 압류했다. 12년 전, 국가가 공언한 '철저한 환수'의 시작이었다.

집계해보니 모두 1,073억 2,636만 원. 서울 강남 상가와 임야, 경기 안성 아파트, 프랑스 마을 등 부동산부터 현금 16억 3,000만 원, 수표 1억 350만 원, 주식까지 망라됐다.
하지만 실상은 참담했다. 차명 재산 명의자들은 참사 직후부터 '내 땅, 내 건물'이라며 줄소송을 냈고, 검찰 수사 기록에만 의존했던 법무부는 번번이 무너졌다. 패소 이유는 '증거 부족'. 수사 단계에서 차명 재산임을 입증할 핵심 고리를 찾지 못한 것이다.
KBS가 확인한 지난 12년 동안 벌어진 차명 재산 소송 18건 가운데 법무부가 이긴 건 단 2건. 판결문 곳곳에는 검찰의 입증 책임을 탓하는 듯한 뼈아픈 지적들이 고스란히 담겼다.
"피고는 계약명의신탁 약정 체결 경위나 매도인의 선의 여부에 대해 구체적 증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
- 인천지법 판결문 中
급기야 검찰은 최근 경기 안성시 아파트 220여 채에 대한 추징보전을 취소해달라고 법원에 청구했다. 제3자이의 소송에서 이긴 명의자들이 민원을 넣자, 검찰이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12년 전 유씨 일가 재산이라며 대대적으로 압류했던 자산들을 이제는 명의자 요구에 따라 풀어주는 실정이다.
요란했던 '압류 선언'과 달리 조용히 이어지는 '압류 해제' 과정은 베일에 가려져 있다.
정지웅/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시민입법위원장·변호사
"(검찰이) 추징 보전한다고 기자회견은 요란하게 했습니다만, 이렇게 패소 판결이 도미노처럼 이어지고 있는 것을 국민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점은 검찰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 "전두환의 신발 한 짝"…"방치된 세월호 참사"

국가 의지는 전담 조직 유무에서 갈린다. 검찰은 2013년 서울중앙지검에 '전두환 일가 특별환수팀'을 만들었다. 검사와 수사관은 물론 자산관리 공사, 국세청 인력까지 투입된 매머드급 TF였다.
이들은 "신발 한 짝이라도 찾겠다"며 10년 넘게 집요한 추적을 이어갔고, 전체 추징금 60%에 이르는 1,282억 원을 국고로 환수했다.

반면, 세월호 참사 관련 범죄 수익 환수의 경우 천억 원 넘는 재산을 차명으로 지목하며 대대적 압류에 나섰지만, 그게 전부였다. 전두환 TF처럼 자금 흐름을 끝까지 파헤치고 소송에 대응할 전문 조직은 없었다.
결국 유죄 확정판결이 나기도 전에 '증거 부족'으로 압류 재산이 풀리는 실정이다. 참사 수습 등에 투입된 국가 예산은 약 5,500억 원이다.
하지만 12년이 지난 지금까지 유 전 회장 일가로부터 국가가 받아낸 금액은 4억 원 남짓으로 알려졌고, '요란했던 환수 선언'을 생각하면 사실상 '0원'에 가깝다.
박근혜 정부에서 시작해 문재인, 윤석열, 그리고 지금 이재명 정부에 이르기까지. 정권이 세 번이나 바뀌는 동안 '세월호 범죄수익 환수' 약속은 표류했다.
사고 직후 여론에 떠밀려 일단 묶고 본 '동결기'를 지나, 이제는 증거 부족을 이유로 후속 대책 없이 빗장을 풀어주는 '해제기'에 접어든 모양새다.
■ "책임을 묻지 못한 또 하나의 결과"

범죄수익 환수는 단순히 국고를 채우는 것이 아니다. 안전 관리를 방기해 수많은 희생을 초래한 이들에게, 응당한 대가를 치르게 하는 '사회적 책임'의 실현이다.
하지만 12년이 흐른 지금, 최소한의 책임 추궁마저 어렵게 됐다. 국가의 환수 약속은 시간이 지나며 망각 속에서 빈껍데기만 남았다.
김선우/4.16연대 사무처장
"선례를 남기는 게 되게 중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제대로 안전 관리를 하지 않았고 그래서 수많은 생명이 다쳤구나. 사법적 책임뿐만 아니라 돈으로라도 내가 그 책임을 물어야 하는구나."
"이건 피해자와 시민에게는 참사에 대한 책임을 묻지 못한 또 하나의 결과로 남을 것 같아요."
취재진은 유병언 전 회장 일가의 국·내외 자산을 추적하고 관련 소송 기록을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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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윤 기자 (dobby@kbs.co.kr)
이형관 기자 (parol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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