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밥상, 그 마지막을 생각해본 적 있나요? [이혜원의 미디어 속 한식]

과거 작품을 함께하며 가까이 지내던 PD가 어느 날 전화를 걸어왔다. "실장님, 실장님과 가슴 따뜻한 집밥 이야기 영화를 꼭 하고 싶어요." 그렇게 건네받은 대본을 읽으며, 몇 년 전 내 곁을 떠나신 어머니가 떠올라 한참을 울었다.
영화 <넘버원>은 "당신이 엄마의 집밥을 먹을 수 있는 횟수는 앞으로 얼마나 남았습니까?"라는 질문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는 영화 이야기다. 그 묵직한 질문에 답하는 마음으로 차렸던 영화 속 밥상 이야기를 해 보려 한다.

엄마의 집밥은 우리에게 집이자 휴식처가 아닐까. 고된 하루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마주하는 따뜻한 밥상은 그 자체로 위로이자 안식이다. 영화 <넘버원>은 흥행 면에서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모든 배우와 스태프가 한마음으로 따뜻하게 촬영할 수 있었던, 내게는 보물 같은 작품이었다.
부산의 냄새를 담은 엄마 밥상
영화의 배경은 부산이다. 김태용 감독의 고향이기도 한 이 지역의 냄새를 진하게 담고 싶었다. 부산식 소고기 뭇국, 콩잎김치, 부산 어묵, 동네 통닭집까지, 음식 하나하나에 부산의 정서가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도록 공을 들였다.
극 중 려원(공승연 분)이 콩잎김치를 처음 맛보는 장면, 레시피를 보며 직접 만드는 장면, 그리고 하민(최우식 분)이 입맛이 없을 때 엄마(장혜진)표 콩잎김치 하나로 밥을 먹는 장면은 이 음식이 영화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잘 보여준다.
나의 어머니도 부산 분이셨고, 오랫동안 요리를 해왔음에도 콩잎김치를 제대로 접할 기회가 없었다. 대본을 보고 바로 삭힌 콩잎을 구해봤는데, 처음 맡아보는 그 퀴퀴한 냄새에 '이걸 어떻게 먹는 거지' 하는 마음이 들었다. 부산의 요리 전문가들에게 일일이 물어 가며 양념을 만들어 버무려봤는데, 세상에. 먹기 어렵다고 생각했던 그 콩잎이 맞는지 싶을 만큼 맛이 있어 밥을 두 공기는 비웠다.
촬영장에서도 삭힌 콩잎의 낯선 냄새에 다들 코를 찌푸리던 스태프들이, 양념에 버무려 김치로 완성되자 너도나도 손을 뻗었다. 모두가 콩잎김치의 매력에 흠뻑 빠져버린 순간이었다.

엄마와 아들을 이어준 부산식 소고기 뭇국
영화에서 엄마와 아들의 관계를 따뜻하게 이어주는 음식이 바로 부산식 소고기 뭇국이다. 숭덩숭덩 썬 소고기를 고춧가루, 참기름, 국간장으로 양념해 살짝 태우듯 볶다가 무와 대파를 넣고 물을 부어 푹 끓인 뒤, 마지막에 콩나물 한 움큼을 더해 완성하는 이 국은 만들 때마다 구수한 냄새가 세트장 안을 가득 채워 스태프들의 코를 즐겁게 했다.
나의 어머니도 내가 감기에 걸렸을 때나, 찬바람이 부는 날이면 자주 끓여주시던 음식이었다. 영화 속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궂은 날에도, 기쁜 날에도,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에도 엄마는 하민 곁에 언제나 소고기 뭇국을 끓여뒀다. 촬영 내내 수도 없이 끓였건만 늘 맛있었고, 촬영이 끝난 뒤에도 한동안 생각이 나서 집에서 자주 만들어 먹은 음식이다.

엄마의 정성 어린 밥상
영화 <넘버원>은 엄마의 밥상이 이야기의 중심인 만큼 밥상을 정말 많이 차렸다. 밑반찬 두세 가지만 오른 소박한 밥상부터, 생일상처럼 정성껏 힘을 준 풍성한 밥상까지. 엄마의 마음으로 한 상 한 상을 꾸리면서, 언제나 밥상을 차려주시던 어머니의 젊은 시절이 자꾸 떠올랐다. 그 귀한 밥상을 때로는 졸리다고, 배부르다고, 약속이 있다고 외면했던 날들이 새삼 마음에 걸렸다. 영화 속 하민도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감정이입이 깊었던 장면들이 많았다.
배우들이 요리를 직접 해야 하는 장면이 적지 않았다. 엄마 역의 장혜진 배우는 실제 부산 출신인 데다 요리 솜씨도 뛰어나 현장에서 척척 호흡을 맞출 수 있었다. 려원 역의 공승연은 요리사인 아버지의 내공을 이어받은 덕인지, 연기력뿐 아니라 요리 실력도 수준급이어서 현장에서 큰 힘이 되었다. 하민 역의 최우식은 요리를 잘 못하는 캐릭터였지만, 우리가 만드는 음식에 늘 관심을 갖고 묻고, 맛있게 먹어주어 내내 흐뭇했다.

부모님의 시간은 유한하다
영화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1년에 부모님 많이 봐야 설, 추석 두 번. 길게 잡아봐야 20년이면 딱 40번밖에 못 본다는 거 아니냐." 우리는 가족이 늘 곁에 있을 거라 생각한다. 언제든 연락이 닿고, 언제나 내 자리에 있어줄 것 같다고 믿는다. 하지만 부모님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은 생각보다 훨씬 유한하다.
한국인에게 밥은 단순한 끼니 그 이상이다. '사람은 밥심으로 산다', '밥이 보약이다'라는 옛말처럼, "밥 먹었니?", "시간 될 때 밥이나 먹자"는 인사처럼, 밥은 생존을 넘어 사랑과 정이 오가는 언어다. '앞으로 엄마의 밥을 먹을 수 있는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라는 질문을 뒤집어 본다. 내가 부모님께 직접 밥을 해드릴 수 있는 날은 또 얼마나 남아 있을까. 이 글을 보는 여러분도 한번쯤 헤아려 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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