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석유 내쫓는다는 장밋빛 전망… '플라스틱 쓰나미' 역설 놓친다
전쟁 계기 재생e·탈플라스틱 가속화 전망
석유기업, 연료 대신 저가 플라스틱 만들며
석유 기반 플라스틱 소비 늘어날 가능성도
재생원료 사용 확대를 위한 규제 강화해야
편집자주
그러잖아도 심각했던 쓰레기 문제가 코로나19 이후 더욱 본격화하고 있습니다. 쓰레기 문제는 생태계 파괴뿐 아니라 주민 간, 지역 간, 나라 간 싸움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쓰레기 박사'의 눈으로 쓰레기 문제의 핵심과 해법을 짚어보려 합니다. '그건 쓰레기가 아니라고요' '지금 우리 곁의 쓰레기'의 저자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이 '한국일보'에 4주 단위로 목요일 연재합니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의 전쟁으로 인한 석유‧나프타 공급망 충격을 계기로, 재생에너지 전환과 탈(脫)플라스틱 사회 전환이 빨라질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해외 수입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화석연료 기반 에너지‧물질소비 체계가 얼마나 불안정한지 온 국민이 몸으로 체감하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경험이 곧바로 전환의 확실한 동력으로 이어질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오히려 큰 틀에서 보면,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 석유 기반 플라스틱 소비를 늘리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 산유국과 석유기업이 연료용 석유 수요 감소를 상쇄하기 위해 플라스틱 원료용 석유 소비를 확대하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생에너지 전환이 오히려 석유를 플라스틱 원료로 전환하는 흐름을 가속화시키는 '에너지 전환의 역설'은 이미 진행 중이다. 석유에 생존을 의존하고 있는 국가 및 기업들의 '석유 살리기 의지'를 결코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이 사태가 지나면, 중동에서 저가의 플라스틱 원료가 쏟아져 들어오는 정반대 형태의 '중동 쇼크'에 대비해야 한다.
시장조사기관과 업계 자료를 종합해 보면, 2030년까지는 플라스틱 원료 생산시설의 용량이 수요량을 초과하는 공급 과잉 상태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플라스틱의 핵심 원료인 에틸렌 생산시설 용량은 2024년 기준 연간 2억 4,000만 톤 수준으로 추정되는데, 중국과 중동 등을 중심으로 2030년까지 4,500만 톤 규모의 추가 설비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한국·일본 등지의 경쟁력이 약한 설비 폐쇄를 감안하더라도, 2030년까지 4,000만~6,000만 톤 수준의 구조적 공급 과잉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2020년대 이후 중동 지역에서 건설 중인 신규 설비는 대부분 원유에서 직접 에틸렌 등의 석유화학 제품을 생산하는 COTC(Crude Oil to Chemicals) 유형이다. 원유에서 나프타를 생산한 뒤 석유화학 제품을 생산하는 기존 공정과 비교하면, 석유화학 제품 생산 비율이 더 높고 가격도 최소 30% 이상 저렴한 것으로 평가된다.
COTC 중심의 설비 용량 과잉 구조는 향후 상당 기간 저가 플라스틱 원료 공급 공세가 지속될 것임을 의미한다. 석유로 만든 신재(新材)의 가격이 낮아지면 재생원료와 바이오 대체재(종이 제품·바이오플라스틱 등)의 가격 경쟁력은 그만큼 떨어진다. 신재 가격이 낮아질수록 재생원료 등의 사용을 확대하기 위한 의무 사용 비율 설정 등의 규제에 대한 기업의 반발도 커지게 된다. 에너지 부문에서 화석연료를 퇴출하더라도, 줄어든 석유 소비량이 플라스틱 원료로 전환되는 비중이 커지면 화석연료 기인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에도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에너지 전환만으로 화석연료 유발 탄소 배출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안이한 기대는 버려야 한다. 재생에너지 전환이 가속화되는 만큼, 앞으로 석유가 플라스틱 원료로 몰려오는 흐름을 차단하기 위한 감량·재사용 정책과 재생원료 사용 확대를 위한 규제도 동시에 강화돼야 한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지난해 '탈플라스틱 종합대책(안)'을 발표하고, 올해 상반기 중 최종안을 확정할 계획이다. 그렇지만 앞으로 밀려올 '구조적 플라스틱 쓰나미'에 대응하기에는 현행 대책은 여전히 매우 미흡하다. 행정 부담을 줄이려는 무난한 규제 수준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보다 과감하고 공격적인 정책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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