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論:이두(吏讀)로 바로잡은 미찌(미추홀)의 역사
김영덕(서강대 명예교수)
<삼국사기> 기록을 보면 ‘미추홀’이라는 나라는 비류(沸流)가 인천에 세웠는데 땅이 물지고 소금져 곧 없어졌다고 한다. 그런데 <위지(魏志)> 한전(韓傳) 진왕(辰王) 대목의 한 낱말 ‘혹가或加’가 우리말 ‘꼬까’의 옛말 이두(吏讀) 표기임을 앎으로써 ‘미찌’ 역사는 되살아났고, 미찌나라(미추홀)는 장장 363년이나 존속했던 동이(東夷) 강국이었던 것이다.
이야기는 2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두를 알게 된 나는 1968년 일본 역사 학계가 발칵 뒤집힌 이나리야마(稻荷山) 고분에서 나온 고분 쇠칼에 새긴 115자의 한자글을 풀이하면서, 이 칼의 명문(銘文)에 보이는 확가다기로(獲加多支鹵)가 ‘유랴꾸 천황’이라는 정론에 의심을 품기 시작하였다.

마침 당시에 이두를 배우기 시작한 나는 이 명문을 이두로 살핀 결과 놀랍게도 ‘확가다기로’에서 ‘확가’는 우리말 ‘꼬까’라는 옛말의 이두 표기이며, 최상 내지 최고를 뜻하며, ‘확가다기로’는 최고이자 머리 되시는 ‘개로대왕’을 뜻함을 알게 된 것이다. 결론은 이 칼의 명문이 동경 북쪽에서 서기 471년에 백제 후왕이 사이타마현 일대를 거느리고 있었고, 그 영주는 개로대왕의 후왕이었다는 사실을 밝혀 주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너무나 기가 막힌 역사적 사실이었고, 일본 고대사 모두를 이두로 다시 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몇 해 지난 뒤 나는 일본의 가장 오래되었다는 오오미와 신사(大神神社)를 다녀오면서 그곳 신사 뒷산에 세 분 신령의 이름에 또 한 번 놀라게 되었다.
‘무찌’라는 신령, 오오모노(大物)라는 신령, 그리고 스무꾸나히꼬나 신령을 모시고 있는데, 첫 신령은 ‘소노가미’, 끝 신령은 ‘가라 신령’이라고도 부른단다. 그런데 ‘미찌’는 미추홀과 관련이 있어 보이고, 오오모노의 한자 표기인 대물(大物)은 이두 풀이로 ‘다무로’이며, ‘미찌(미추홀)’ 이주민들이 즐겨 살던 지명이 아닌가?
또 앞의 두 신령은 ‘소노가미’라고도 부르고, 셋째 신령은 ‘가라신령’이라고 한단다. 알고 보니 ‘소’나 ‘수’는 고구려나 백제말로 신령을 뜻하는 말이다.
<일본서기>에 의하면 천손이 내려온 곳이 ‘소시모리’라는데, 역시 이 말에도 ‘소’가 나오며 신령이 ‘소’라고 하면 백제나 고구려의 신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궁금해졌다.
그 유래를 찾아 <위지 한전(魏志 韓傳>을 보게 되었다. 이 글에서 ‘천군(天君=덴그리)’, ‘소도(蘇塗)’라는 말을 배웠고, 덴그리는 ‘무당’을, 소도는 신의 땅 성역임을 이두로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진왕 대목을 읽게 되었고, 그 글에서 ‘혹가’는 최고를 뜻했고, ‘렴(廉)’은 ‘니미/임금’을 뜻함을 알게 된 것이다. 사실 이두는 우리말을 한자의 뜻과 소리를 이용해 적는 개념이고, 이 이두는 현대 중국어에서 코카콜라를 ‘可口可樂’이라고 적는 것과 같은 것이다.
다만 3세기 우리말에는 모음은 ‘아,이,우,에,오’에만 그쳤고, 파열음과, ㅋ, ㅌ, ㅍ, ㅎ는 없었다. 그리고 ‘오’와 ‘고’는 가리지 않았다.
이제 <위지 한전> 진왕 대목을 알아보자.
辰王治月(目)支國. 臣智 或加優呼, 臣雲 遣支報, 安邪 踧支, 憤臣離兒 不例, 拘邪 秦支, 廉之號.
이두 풀이 : 진왕은 다스리는 바 목지국 왕은 꼬까 우호, 신운국 왕은 견지보, 아야왕은 축지, 분신리아왕은 불례, 구야왕은 진지이다. 신지란 ‘니마/왕’은 호칭이다.
이 글에서 놀라운 사실을 알수 있다. 변한의 두 나라 구야와 가야, 그리고 마한의 두 나라 신운과 분신리아로 이루어진 연합의 대왕이 ‘미찌/미찌홀’의 우호대왕이라는 것이다.
목지(目支miuk-tsi)는 미추(彌鄒mie tsio)와 이두 풀이가 같은 ‘미찌’이다. 그리고 ‘호呼’와 ‘고古’는 3세기 소리가 ‘ko’이며 같다. 곧 우호왕은 백제 왕이 아닌 미찌 나라(미추홀)의 임금이었던 것이다. 미찌 나라는 3세기 초 진왕을 임금으로 추대하여 마한과 변한을 거느리는 대왕이었던 것이다. 당시에 백제는 한낱 작은 나라에 불과하였다.
<한전>에 대방군 설치(204) 직후에 ‘드디어 왜와 한이 (복)속했다’고 적고있다.
곧 서기 204년 직후에 히미꼬 여왕의 야마또 나라와 진왕의 미찌 나라를 맹주로 하는 마한과 변한 여러 나라의 연방국이 세워졌음을 시사한다.
아마도 진왕(辰王)이 생긴 것은 서기 209년에서 211년 세 해 동안 있었던 ‘포상팔국(浦上八國)‘ 난리가 있었던 직후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이 연방국을 본떠서 북규슈에 있던 미찌 이주민들은 선주민을 구슬려 마한의 히미 나라에 ‘덴그리’ 곧 무당을 모셔가서 여왕으로 ‘야마또’라는 30개국의 연방국을 세웠을 것으로 본다.
그런가 하면 서기 233년 무렵에는 히미꼬 여왕이 진왕에게 사신을 보낸 것을 <삼국사기> 기록으로 알 수가 있다. <위지 한전>에는 서기 246년에 미찌의 진왕이 군졸을 데리고 기리영(埼離營)으로 쳐들어가 대방 태수가 전사했으며 낙랑, 대방, 연합국의 역공으로 ‘한(韓)이 멸했다’라는 글이 나오며, 이 당시에 미찌 고이왕이 전사했음을 알 수가 있다.
그러나 <삼국사기>는 서기 246년 대목에서 위군과 낙랑이 동예를 토벌하러 나라를 비운 사이에 그 변민을 납치해왔다가 낙랑의 항의로 이들을 돌려보냈다고 적고 있다. 이 글은 가필(假筆)이었던 것이다.
서기 246년에 전사한 고이왕을 이어서 책계왕이 즉위하면서 왕도를 인천에서 위례성 곧 풍납토성으로 천도한 사실을 두고 <삼국사기>는 고구려의 침공이 두려워 사성(莎城)과 아차성을 수리하였고 왕실도 손봤다고 한다. 당시까지도 고구려와 미찌는 교전할 사이가 아니었던 것이다. 사실은 낙랑의 보복에 대비했던 것이다.
이어서 <삼국사기>는 고이왕이 서기 286년에 돌아왔다지만 이것 또한 그릇된 기사이다. 분서왕을 거쳐 계왕에 이르기까지 이들 성은 우씨였고, 미찌나라는 서기 346년에 백제 근초고왕이 미찌를 멸망시킬 때까지 존속했던 것이다.
백제 왕실과 공손 왕실은 사돈 사이였고 따라서 공손 정권을 무너뜨린 위나라와 미찌나라는 외교 관계가 전혀 없었고, 진나라가 위를 무찌른 다음에 진나라와는 여덟 번이나 교역을 한 것을 진서(晉書)는 전해 준다.
맺는 글
이와 같은 문헌 근거를 볼 때 ‘미찌/미추홀’ 나라는 서기전 18년에 선 이래 서기 346년까지 존속했고, 3세기 초 이후에는 마한과 변한 68개국을 아우르는 마한과 변한의 여러 나라로 구성된 연방군의 대왕 나라로서 동이(東夷) 강국이었다.
저자 소개

김영덕 교수는 1930년 서울 출생으로 1961년 UC Berkeley (이론물리) 박사학위 수여받은 후 1963-1996년 서강대학교 물리학과 교수를 역임하였다. 1994년 한국 전통 조경학회장을 역임하였고 2001-1005년 왕립 아시아 한국지부회장을 지냈다. 2000년 경부터 이두로 한일고대사 연구를 하고 있다.
저서로는 <세 나라 이야기> <미치/미추홀 이야기> <일본을 낳은 백제 다무로> <백제와 다무로였던 왜나라들> <왜나라와 백제> <구다라 또 다무로> (일본어) <이두로 본 백제 역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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