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한장] 국민이 맡긴 ‘빈자리’

의사봉 소리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비어 있음’이었다.
지난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 인사청문회. 국가 경제의 방향을 책임질 중앙은행 수장을 검증하는 자리답게 의원들의 질문은 날카로웠고, 후보자의 답변은 신중했다. 전문성과 도덕성, 정책 철학까지 하나하나 검증하는 긴장감이 회의장을 채웠다.
그런데 사진기자의 시선은 질문하는 의원보다, 답하는 후보자보다 먼저 두 개의 명패에 멈췄다.
‘정성호’, ‘안규백’
이름은 분명 그 자리에 있었지만, 사람은 없었다.
두 사람은 현재 각각 법무부 장관과 국방부 장관으로 행정부에 들어가 있다. 여전히 국회의원 신분을 유지한 채 국무위원으로 일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국회의 상임위원회 자리에는 명패만 남고, 의자는 비어 있었다.
사진 속 빈 의자는 단순한 결석이 아니다. 그것은 한국 정치가 오랫동안 당연하게 여겨온 ‘겸직’의 풍경이다.

대한민국은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지만, 국회의원이 장관을 겸직하는 것을 헌법으로 허용한다. 정치적 원활함과 국정 동력을 이유로 우리는 이 풍경을 오래도록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왔다. 하지만 ‘효율’이라는 이름 아래 ‘견제’라는 민주주의의 원리는 잠시 자리를 비운다.
미국은 엄격하다. 권력 분립의 원형에 따라 의원이 입각하려면 의원직을 내려놓아야 한다. 반면 의원내각제인 영국이나 일본은 의원이 장관을 맡는 것이 책임 정치의 구현이다. 한국은 이 둘 사이의 회색 지대에 서 있다. 대통령제를 택했지만 운영 방식은 때때로 의원내각제의 습관을 닮아 있다.
문제는 익숙함이 질문을 지워버릴 때다. 감시해야 할 자가 감시받는 자의 옷을 입었을 때, 그 경계는 흐릿해진다.
국회의원은 국민을 대신해 정부를 감시하고 견제해야 하는 사람이다. 동시에 장관은 정부 정책을 집행하고 방어해야 하는 자리다. 감시자와 피감시자가 한 사람 안에 공존할 때, 견제는 얼마나 날카로울 수 있을까.

인사청문회장은 바로 그 질문을 던지는 공간이다. 누군가를 검증하는 자리에서, 정작 검증해야 할 제도는 너무 오래 당연한 것으로 남아 있었다.
그래서 이날 가장 많은 이야기를 한 것은 어쩌면 사람이 아니라 빈자리였는지도 모른다.
회의는 계속됐고, 질문도 이어졌다. 하지만 이름만 남은 두 개의 좌석은 조용히 묻고 있었다.
국민이 맡긴 자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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