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석현 기계연 원장 "기계에 AI 결합 안하면 韓 제조업 암울"

"우리가 개발한 기계에 인공지능(AI), 디지털 기술을 입히지 않으면 한국 제조업, 기계공업의 미래가 암울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가성비로는 한국보다 잘하는 곳이 전세계에 많이 생겼습니다. 하이엔드(high-end), 커스터마이즈(customize)된 기계가 필요합니다."
9일 서울에서 만난 류석현 한국기계연구원장은 기계 분야의 AI 전환을 강조하며 "기계에 잘 맞는 AI를 개발해야 한다는 생각을 전환해 AI에 잘 맞는 기계를 개발해야 한다"고 밝혔다. AI가 할 수 있는 일이 점점 많아지기 때문에 AI를 중심에 놔야 한다는 설명이다.
류 원장은 "세계적으로 AI 소프트웨어를 하는 곳은 많지만 하드웨어를 만드는 곳은 많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개발된 AI 소프트웨어를 기계연의 휴머노이드 카이로스 대신 중국의 유니트리에 심으면 모든 데이터가 유니트리에 쌓인다"며 "이게 무서운 일"이라고 강조했다. 앞으로 소프트웨어 구동에 유리한 기계를 제공하는 데서 경쟁력이 확보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기계연은 올해 창립 50주년을 맞아 5대 브랜드 사업을 추진한다. 류 원장은 "국민체감 성과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며 "연구성과를 국민께 직접 전달하고 소통하며 성과 확산에 관한 연구자들의 인식을 개선하는 등 다양한 목적이 담긴 사업"이라고 설명했다.
류 원장은 "앞서 기계연이 국가 산업에 상당한 기여를 한 부분이 있지만 사람들이 잘 모른다"며 AI시대 코스피 견인의 주역인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예시로 들었다. 반도체 패키징 공정 장비인 TC 본더는 HBM 제조의 핵심 장비로 꼽힌다. 기계연이 개발한 본더 원천기술은 국내 기업인 한미반도체 기술이전을 통해 2018년 HBM용 TC 본더로 상용화됐다.

기계연은 유망 기술 후보를 16개 뽑은 뒤 최종 5개를 추려 브랜드로 출시했다. 휴머노이드 로봇 기술인 카이로스(KAIROS), 무인화 기반 첨단제조장비 솔루션 마눅스(MANUX), 열에너지 전환 무탄소 기술 케이히트업(KHEATUP), 공기 청정 기술 에어파이브(Air Five), 가상공학플랫폼 킴사이버랩(KIMM Cyber Labs)이다.
류 원장은 "기술 이름으로 설명하면 국민들이 이해하기 힘들다"며 "브랜드 경영을 표상한 출연연은 최초"라고 밝혔다. 이어 "현재 선정된 5개는 야구로 치면 1군"이라며 "시대의 흐름에 따라 부상하는 분야와 교체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류 원장은 연구과제중심제도(PBS) 폐지 이후 전략연구사업 추진에 자신감을 보였다.
PBS는 출연연 연구자가 정부 등 외부 연구개발(R&D) 과제를 수주해 인건비, 연구비 등 비용을 충당하도록 하는 제도다. 연구자들이 '생계형 R&D'를 하도록 만들어 도전적인 연구활동을 저해한다는 비판이 제기되며 PBS는 단계별 폐지 절차에 들어섰다. 정부는 출연연을 국가 임무 중심의 연구기관으로 재편하겠다는 방침이다.
전략연구사업은 탄소중립, 차세대 에너지 등 정부에서 수립한 국가전략기술 분야에 해당하는 연구사업을 말한다. 기계연의 8대 전략육성 분야와 12대 국가전략분야 비중을 합치면 2025년 기준 연구개발 재원 95% 이상, 가용인력 90% 이상이 배치됐다.
기계연이 지난해 선정해 올해부터 추진되는 전략연구사업은 설계 엔지니어링 AI 에이전트 개발, 극저온 구현 기술, 폐플라스틱 자원화 문제 등 4개다.
조직도 임무지향적으로 개편이 완료돼 연구개발 과제와 정합성이 높다는 설명이다. 류 원장은 "모든 것을 뒷받침하는 게 조직 문화"라며 취임 직후 '열유체 연구실', '소음진동 연구실' 등 지난 40년 이상 이어진 기능 중심의 조직을 '가스터빈 연구실', '히트펌프 연구실'처럼 임무와 제품 중심 조직으로 바꿨다고 설명했다.
두산중공업(현 두산에너빌리티) 최고기술경영자(CTO)와 고문 등을 역임한 류 원장은 "취임 후 산업계와 연구계 경험을 모두 살리려고 노력했다"며 "연구는 산업 혁신으로 연결될 때 의미가 생긴다"고 밝혔다.
류 원장은 올해 12월 3년 임기를 마친다. 그는 "디지털전환(DX) 가속화, 대표 브랜드 출시 등 취임 이후 추진한 사업들이 큰 꼭지별로 7부 능선까지 왔다"며 "잘 마무리해서 지속 가능한 형태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다음은 류 원장과의 일문일답.
Q. 기계연 5대 브랜드를 좀더 자세히 설명한다면.
"휴머노이드가 앞으로 게임 체인저가 될 텐데 이미 보스톤 다이내믹스, 유니트리 등 많은 네임드가 있다. 카이로스라는 브랜드를 통해 휴머노이드에 대한 국민들의 이해를 높이고 싶다. 마눅스는 밖에서 잘 보이지 않는 반도체나 이차전지, 디스플레이 등 첨단 제조 장비 원천기술 브랜드라고 보면 된다.
산업 현장에서는 열에너지도 전기에너지 못지않게 중요하다. 공정 폐열 같은 것을 사용 가능한 열로 바꾸는 게 히트펌프 기술인데 기계연이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과 인력을 보유하고 있다. 히트펌프 자체가 브랜드기 때문에 K히트펌프업 이라고 이름붙였다.
공기질 개선은 국민들이 가장 체감할 수 있는 분야로 꼽힌다. 기계연은 지하철, 백화점 등 다중이용시설 공기 청정 기술을 수년간 개발해 왔다. 에어파이브라는 이름은 세계보건기구(WHO)에서 권고한 청정 공기 연평균 기준인 세제곱미터(㎥)당 초미세먼지 5마이크로그램(㎍, 1㎍은 100만분의 1g)에서 따 왔다.
부품·시스템 설계나 엔지니어링 단계에서 가상 소프트웨어가 많이 쓰이는데 90% 이상이 외산이다. 기계연 내에서만 1년 구독료가 10억원이다. 킴사이버랩은 현재 외산 소프트웨어가 장악한 디지털 엔지니어링 솔루션과 호환 가능한 국산 기술로 현재 산업계 전파 속도가 매우 빠르다."
Q. 인력 문제는 어떻게 접근하고 있나.
"채용 공고도 전보다 다양한 곳에 올리고 있고 박사과정생, 학생연구원 채용도 확대했다. 출연연이 예전에는 연구 임무만 있었다면 지금은 이제 인력 육성의 의무도 있다고 생각한다. 학생을 뽑을 때 활용에만 집중하지 말고 육성에도 신경써야 한다고 강조한다. 학생들의 관심도를 반영해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와 연계해서 로봇 플래그십 전공도 만들었다."
Q. 임기 중 특별히 중점을 둔 사안이 있다면.
"산업과의 연결고리가 중요하다. 국내 모든 연구기관이 우수하고 뛰어나지만 연구 역량을 산업 혁신으로 연결해야 한다. 연구실 문턱을 넘지 못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연결고리를 만드는 게 제도와 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
취임 이후 로봇 분야를 많이 키웠다. 본부로 돼 있던 조직을 AI로봇연구소로 격상했다. 로봇은 크게 휴머노이드, 비정형 로봇, 바이오 로봇 3개로 구분하고 있다. 비정형로봇은 산불, 홍수, 원자력발전소 사고 등 재난 현장에서 활약할 수 있는 로봇을 말한다. 바이오로봇은 자율 실험 시스템 구현에 초점을 맞췄다."
[이병구 기자 2bottle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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