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식인행위, 법보다 무거운 침묵의 금기

최윤필 2026. 4. 23.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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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3년 11월, 20여 명의 남성이 서부 금광을 찾아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를 출발했다.

이듬해 1월 콜로라도 몬트로즈 인근에 도착해 겨울을 나려던 일행 중 6명은 만류를 뿌리치고 혹독한 겨울 산악지대를 향해 아이젠 등 동계 장비도 없이 단 2주분 식량만 휴대한 채 이동을 강행했다.

당시나 지금이나 식인행위 자체를 형법에 명시한 국가는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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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3 앨프리드 패커
archives.colorado.gov/

1873년 11월, 20여 명의 남성이 서부 금광을 찾아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를 출발했다. 이듬해 1월 콜로라도 몬트로즈 인근에 도착해 겨울을 나려던 일행 중 6명은 만류를 뿌리치고 혹독한 겨울 산악지대를 향해 아이젠 등 동계 장비도 없이 단 2주분 식량만 휴대한 채 이동을 강행했다. 10대 소년을 포함한 그들을 이끈 길잡이가 앨프리드 패커(Alfred Packer, 1842.1.21~1907.4.23)였다.

2개월여 뒤인 74년 4월 16일, 패커 혼자 산맥 너머 한 원주민 정착지에 도착했다. 그는 멀쩡했고, 심지어 살이 쪄 있었다는 증언도 있었다. 집요한 추궁을 받던 그는 눈보라에 일행을 놓쳐 혼자 이동했다거나 동료들이 자신을 버리고 갔다는 등 여러 차례 엇갈린 진술 끝에 식인 사실을 자백했다. 동료들이 동사하거나 굶어 죽어 어쩔 수 없이 시신을 먹었다고도 했고, 일행 중 한 사람이 광기에 사로잡혀 일행들을 살해했고 자신마저 죽이려 해서 자위 목적으로 그를 총으로 쐈다고도 했다. 그해 8월 시신들이 발견됐다. 시신들에는 총상 흔적과 도끼 자국이 있었고, 일부 부위가 칼로 도려내진 흔적도 뚜렷했다.

살인 혐의로 체포된 그는 탈옥 후 약 9년간 도피 생활을 하다 83년 다시 체포돼 사형 선고를 받았지만, 재판 절차 문제로 86년 ‘과실 치사’ 혐의로 다시 재판을 받아 40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18년 복역 후 1901년 가석방됐다. 재판 내내 그는 생존을 위한 식인 행위와 자위 목적의 살인(1건)은 인정했지만 식인 목적 살인은 한사코 부인했다. 다수는 그를 ‘콜로라도 식인마’라 부르지만, 일부는 그를 불굴의 개척자라 평가한다.

당시나 지금이나 식인행위 자체를 형법에 명시한 국가는 거의 없다. ‘사체 손궤-영득죄’로도 처벌이 가능하기 때문이지만, 식인 행위를 명문화하는 것 자체가 문명의 자기부정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침묵의 금기가 법보다 무거운 예 중 하나일 것이다.

최윤필 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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