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차지한 AI, 조교도 인턴도 짐쌌다

연세대 첨단컴퓨팅학부 이종민 교수는 컴퓨터 공학 기초 강좌를 맡고 있다. 학부생 70명을 대상으로 알고리즘 설계와 컴퓨터 과학의 논리적 흐름을 가르치는 강좌다. 이 교수는 지난 학기까지는 과제를 채점한 뒤 학생들에게 상세히 설명까지 해주려면 조교 3명이 필요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교수는 이번 학기에는 조교를 1명으로 줄였다. 그는 “AI(인공지능) 덕분에 학생들 과제를 순식간에 처리할 수 있게 돼 조교 숫자를 줄였다”고 했다.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김중헌 교수는 작년부터 아예 ‘AI 조교’를 도입했다. 김 교수가 맡은 강좌는 수강생이 2200명이나 되는 온라인 필수 교양 강좌. 하지만 강의 내용을 학습한 AI 조교가 학생들의 질문에 24시간 실시간으로 대답해주면서 조교를 3분의 1로 줄였다고 한다. 김 교수는 “2000명이 넘는 강좌는 통상 30명가량 조교가 필요한데 지금은 11명이면 충분하다”고 했다.
대학에서 AI가 조교 업무를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전국 대학의 조교 인력 규모를 정확히 집계한 통계는 없지만, 주요 대학 현황을 종합하면 4년 전보다 조교 수는 3분의 1로 줄어들었다고 교수들은 말한다. 서울대 경제학부의 한 교수는 “아직 조교 정원을 줄이지는 않았지만 조교들이 하던 논문 자료 검색이나 정리 작업을 AI에 맡기고 있다”면서 “조교들도 업무를 AI에 의존하는 실정이라 교수들이 직접 AI를 활용하는 편이 낫다”고 했다.

AI 활용 확대로 인한 인력 구조 변화는 법조계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로펌은 그동안 1~10년 차 변호사를 ‘어쏘 변호사(Associate Lawyer)’라는 직함으로 고용해 서면 작성이나 판례·법리 조사 등 보조 업무를 맡겨왔다. 하지만 아무리 기민하고 박식한 어쏘 변호사라 해도, 500만건이 넘는 판례와 법령 등을 학습한 AI보다 단순 업무를 더 빠르게 처리하기는 쉽지 않다. 국내 법률AI 업체 로앤컴퍼니가 개발한 AI ‘슈퍼로이어’의 경우 작년 3월 변호사시험 150개 문항에서 111개 문항을 맞춰 평균 합격선(103개)을 넘었다. 그해 5월 시험에선 상위 5% 수준 성적을 기록하기도 했다.
국내 한 대형 로펌 소속 A 변호사는 “상위 10%의 어쏘 변호사를 제외하면 AI를 활용하는 게 업무 효율이 더 높다”며 “로펌 입장에서는 신입 변호사를 대거 채용할 유인이 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AI가 전문직 보조 업무를 속속 대체하면서 직무 경험을 쌓아야 할 청년층 일자리를 잠식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챗GPT 등 생성형 AI가 출시된 2022년 하반기부터 2025년 상반기까지 3년간 청년층(15~29세) 일자리 21만1000개가 줄었다. 이 가운데 AI의 영향이 큰 업종의 일자리가 20만8000개로 줄어든 청년층 일자리의 98.6%를 차지했다. 반면 같은 기간 50대 일자리는 이전의 고용 증가세를 유지하며 20만9000개 늘었다. 한국은행은 보고서에서 “AI가 경력이 적은 청년층이 주로 수행하는 정형화된 업무를 상대적으로 쉽게 대체했다”며 “지금처럼 입문 단계의 고용이 줄어들면 장기적으로는 기업의 인력 구조가 악화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법조계에서 주니어 변호사 채용을 줄이다 보니 경력이 있는 주니어 변호사를 뽑기도 쉽지 않다고 한다. 한 로펌 대표는 “이제 2~3년 차 경력 변호사를 구하려 해도 찾기가 쉽지 않다”며 “변호사 시험 합격 후에도 취업하지 못한 변호사가 늘어나면서 실무 경험을 통한 경력 쌓기가 어려워지고 있다”고 했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실업자 수는 102만9000명으로 실업자 4명 중 1명(26.4%)이 15~29세였다. 청년 취업자는 14분기 연속 감소했다. 리서치 회사 인턴 김모(24)씨는 “리서치 업계에서도 데이터 정리나 리서치 같은 업무는 AI가 더 잘한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정규직으로 전환될 수 있을지 불안하다”고 했다.
이런 현상은 전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미국 컨설팅 업체 챌린저 그레이 앤드 크리스마스에 따르면 작년 1~11월 미국 기업이 발표한 감원 규모는 117만명으로 1년 전(76만명)보다 54% 증가했다. 영국의 국립교육연구재단(NFER)이 작년 11월 공개한 보고서는 2035년까지 행정이나 비서 등 저숙련 직종에서 최대 300만개 일자리가 감소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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