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힌 위기, 수단에 손길… 韓, 마음으로 연대하는 유일한 나라”

유엔세계식량계획(WFP)에 따르면 올해 전 세계 급성 식량 위기 인구는 3억1800만명으로 예상된다. 코로나 이전보다 두 배 늘었지만, WFP 운영 자금은 2024년 98억달러에서 2025년 64억달러로 줄었다. 많은 공여국이 지원을 줄이는 상황에도 한국은 WFP 5대 정부 공여국으로, 연간 약 2억달러를 지원한다. 최근 서울대에서 만난 라니아 다가시-카마라(52) WFP 사무차장보는 “6·25전쟁 후 20년간 도움을 받았던 한국이 이제는 세계를 도와주는 나라로 성장했다”며 “한국인들은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연대한다. 다른 공여국이 참고해야 할 최고의 모델”이라고 했다.
수단 출신인 그는 특히 고향 이야기에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수단 전체 인구의 45%인 2100만명이 급성 식량 불안에 처해 있지만 국제사회의 관심은 멀어지고 있다”며 “자금 부족으로 2년 전 지원 대상자를 대폭 줄여야 했을 때는 현장 직원들과 함께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수단 명문 하르툼대와 영국 옥스퍼드에서 건축학을 전공한 그가 WFP에 둥지를 튼 것도 고향의 아픔을 모른 척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중에도 한국의 지원은 끊기지 않았다고 한다. WFP가 매달 수단인 400만명에게 지원하는 식량과 현금의 재원이 한국에서 온다. 분쟁·재난 피해 가정에 긴급 식량·현금·영양 지원을 제공하기 위해 외교부에서 운영하는 ‘REACH 프로젝트’ 또한 2025년부터 미얀마·수단·시리아·팔레스타인 4국에 4500만달러를 집중 공여한다. 지난해 말 기준 이를 통해 140만명에게 식량 6300t이 전달됐다.
한국의 지원 방식은 정부에만 그치지 않는다. 현대차가 지원한 전기차 아이오닉5와 태양광 발전 시설은 케냐·시리아 등 구호 현장에서 해당 사무소 전력의 최대 80%를 충당하고, 연간 52만달러 이상의 운영비를 절감해 그 돈을 다시 식량 지원으로 돌린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지원하는 한국산 영양강화 쌀은 지난해 방글라데시에 201t이 처음 공급됐다. 일반 쌀과 겉모습은 같지만 비타민·미네랄이 강화돼, 익숙한 식단을 유지하면서도 영양을 보충할 수 있다. 다가시-카마라 사무차장보는 “정부와 민간이 결합된 한국의 지원 방식은 다른 공여국들이 배워야 할 모델”이라고 했다.
위기의 규모는 커지는데 지원은 줄고 있는 실정이다. 이란 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식량 위기 인구는 3억6300만명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그는 경고했다. 호르무즈 해협 병목 현상과 비료 시장 불안, 식량·연료 수입 의존국들의 연쇄 피해가 우려된다. 수단은 밀의 80%를, 미얀마는 정제유의 90%를 수입에 의존한다. 코로나, 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은 세 번째 대형 공급망 충격이 이미 한계까지 내몰린 인도주의 시스템을 가장 취약한 시점에 강타하고 있다는 의미다.
기후 위기도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아프리카의 뿔과 사헬 지대는 라니냐 현상으로 극심한 가뭄을 겪고 있고, 수단·말리·나이지리아에서는 홍수와 가뭄이 번갈아 덮친다. WFP는 재난이 오기 전 선제 대응에 무게를 두고 있다.
지난해 소말리아에서 홍수를 미리 예측하고 주민 대피를 지원한 결과 100만달러로 500만~1000만달러 규모의 사후 피해를 막았다. AI 기반 조기경보 시스템 ‘HungerMap Live’는 90개국 이상의 식량 상황을 거의 실시간으로 예측하고, 기후 재난을 최대 60일 전에 경보한다. AI 공급망 관리 도구는 2025년 한 해에만 1180만달러를 절감했고, 위성 피해 분석 도구는 재난 피해 평가 시간을 3주에서 48시간으로 줄였다. 그는 “기술은 우리가 더 잘 대응할 수 있는 방식을 바꾼다. 하지만 인도적 지원을 가능하게 하는 건 결국 정치적 의지”라고 했다.
공여국들이 인도주의 예산을 잇달아 삭감하고 있는 데 대해 다가시-카마라씨는 비관적인 전망을 내놨다. 그는 “유럽 각국이 국방과 안보에 초점을 맞추는 것처럼 많은 나라가 자국 상황을 우선으로 하고 있다. 앞으로 10년은 이런 분위기가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세계에는 이미 전 인류가 먹고도 남을 식량이 생산되고 있다. 풍요로운 세상에서 배고픔은 과거로 남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터뷰 끝에 그는 건축학도 시절의 언어로 꿈을 그렸다. “지금 제가 가장 짓고 싶은 건축물은 희망과 존엄, 관용으로 세운 배고픔 없는 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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