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인의 심야 일지] 사소한 기술이 누군가에게 神이 되는 순간

일을 오래 하다 보면 자신 있는 기술이 하나쯤 생기기 마련이다. 응급실이 일터인 나에겐 코에 들어간 이물(異物)을 빼주는 기술이 있다. 내 고객은 대략 두 살부터 여섯 살 사이의 다양한 물건을 코에 넣은 아이들이다. 가장 많이 집어넣는 것은 콩이다. 마른 콩도 양념된 콩도 넣을 수 있다. 그 외 작은 구슬, 블록, 반짝이, 점토 등이 발견된다. 세상 가장 귀여운 고객들이 가장 귀여운 것을 꺼내기 위해 나를 찾아오는 것이다.
막상 이물을 꺼내는 일은 간단하다. 일단 아이를 눕혀서 이물을 찾아본다. 아이들은 비강이 좁아서 걸리는 곳이 정해져 있다. 조명을 비추고 콧구멍을 들어 각도를 적당히 맞추면 이물의 머리를 확인할 수 있다. 내 비장의 무기는 끝이 동그랗게 말린 얇은 철사다. 철사를 쥐고 비강 윗벽으로 타고 들어가 이물을 아래쪽으로 건다. 약간의 압력을 느끼면 단호하게 당겨서 꺼내주면 된다. 아이가 불편할 수 있으므로 순간적으로 철사를 넣어 빠른 시간에 빼내는 것이 포인트다. 가족들의 탄성과 함께 끈적한 이물이 모습을 드러내면 거즈에 싸서 기념으로 건네준다. 고객이 개운한 얼굴로 배꼽 인사를 하고 떠나면 내 일도 끝난다.
설명이 길었지만 철사로 물건을 꺼내는 간단한 기술이다. 의술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하다. 고객의 물건을 돌려주는 일일 뿐더러, 특별히 의학을 공부해서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냥 오랫동안 하다 보니까 노하우가 생긴 것이다. 생사가 갈리는 응급실에서 콧구멍의 반짝이를 빼내는 일은 어찌 보면 사소하다. 그럼에도 나는 이 기술에 약간의 자부심이 있다.
혼잡한 휴일 밤, 근무가 열두 시간을 넘어가고 있을 때였다. 이물을 넣은 아이의 보호자에게서 전화가 왔고 즉시 수용하기로 했다. 귀여운 고객을 만날 생각에 힘이 났기 때문이다. 한 시간 뒤 네 살 아이가 도착했다. 다른 환자들로 정신이 없는 동안 동료들이 이물을 꺼내다가 실패해서, 내가 나섰다. 과연 아이가 넣은 구슬은 평소보다 깊은 위치에 있었다. 하지만 내겐 20년 가까운 노하우가 있었다. 곧 커다란 구슬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에도 가족의 탄성이 들렸고, 아이와 함께 보호자도 배꼽 인사를 했다. 나는 별것 아닌 일로 과한 감사를 받는다고 생각하며 답례해 드렸다. 근무 시간 중 딱 5분을 할애한 일이었다.
다음 날 출근하자 고객의 소리가 도착해 있었다. 보통은 항의나 민원이다. 긴장된 마음으로 메시지를 열었는데, 어제 보호자가 보낸 감사 편지였다. 병원에 오기 전까지의 당혹스러운 사연과 고마움을 전하고 있었다. 나는 편지를 읽다가 자세를 고쳐 앉아야 했다. 휴일 밤에 아이가 코에 이물을 넣었고, 집에서 가까운 응급실에 갔지만 전문의가 없다며 거절당했으며, 구급 상황실에 연락해 늦게까지 문을 여는 서울의 이비인후과를 찾았지만 제거에 실패했고, 다른 대학 병원에 전화를 돌리면서 거절당하던 차에, 우리 병원에서 무조건 수용해서 5분 만에 제거한 것이었다. 그 편지는 이렇게 끝났다. 선생님은 그날 우리 가족의 신이었습니다.
몰랐던 사연이었다. 놀랍고 부끄러웠다. 내가 한 일은 5분을 들여 구슬을 빼낸 것뿐이었다. 하지만 내 업에 더 진지해질 필요가 있다는 것은 분명했다. 매일 100명 가까운 환자를 만나다 보면 질병과 이물만 보일 뿐 모두가 사연을 품고 온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사소한 기술로도 가끔 누군가에게 신이 될 수 있다는 사실도. 응급실 문턱을 넘은 환자에게 사소한 일은 없다. 너무 당연해서 평생 기억해야만 하는 사실을 한 보호자가 일깨워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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