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데헌’ 속 저 그림 뭘까? 세계인이 주목한 ‘일월오봉도’…왕의 곁에서 권위 상징[붓 끝의 美학]
④ ‘일월오봉도’

좌우 대칭 정중앙은 왕의 자리
푸른 산·붉은 소나무 대비 강렬
뒤편에 그려진 ‘해반도도’ 이채
화려한 복숭아, 선계 풍경 연출
최근 국립중앙박물관 서화실을 찾는 관람객들의 발길이 유독 오래 머무는 그림이 있다. 해와 달, 다섯 개의 봉우리 등이 그려진 ‘일월오봉도(日月五峯圖)’다. 1만원권 지폐 속 세종대왕의 배경으로 익숙한 이 그림은 작년 한 해 전 세계를 휩쓴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 등장해 세계인의 주목을 받았다. 최근 미국 스미스소니언 국립아시아미술관에서 열린 ‘고 이건희 기증품 순회전’에서도 현지 관람객들이 영화 속 장면을 떠올리며 깊은 관심을 보였다. 이는 우리 전통 문화유산이 세계인에게 어떻게 각인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우리가 이 그림을 마주하며 느끼는 첫인상은 단연 강렬함이다. 현실에서는 결코 공존할 수 없는 해와 달이 동시에 떠 있고, 다섯 개의 봉우리와 물결, 쏟아지는 폭포가 좌우대칭으로 질서정연하게 배치되어 있다. 진한 광물성 안료(물감)를 사용해 그려진 이 그림은 자연을 있는 그대로 재현했다기보다 정교하게 계산된 문양의 조합에 가깝다. 그러기에 여느 일반적인 산수화와는 다른 독보적이고 강렬한 시각적 인상을 남기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조형미가 단순히 감상만을 위한 목적이 아니라는 점이다. 좌우가 완벽하게 대칭되는 그림 정중앙에 주인공이 앉음으로써 보는 이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권위를 극대화하는 시각적 효과를 얻는다. 이 신성한 상징의 주인공은 왕이었다. 일월오봉도는 왕의 통치 공간은 물론 사후에 시신을 모시는 빈전(殯殿)이나 3년상을 치르는 혼전(魂殿), 그리고 왕의 초상화인 어진을 모신 진전(眞殿)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왕의 곁을 지켰다. 물론 왕비나 왕자 등도 의례나 상황에 따라 사용했기에 엄밀히 ‘어좌전용’은 아니었으나, 어좌에 반드시 설치되어야 하는 ‘어좌용’ 그림은 분명했다.
이번 전시에서 공개된 일월오봉도(위 사진) 역시 이러한 맥락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이 작품은 19세기 창경궁 함인정(涵仁亭) 어좌에 설치되었던 그림이다.
함인정은 본래 국왕의 일상 집무 공간인 문정전의 후전(後殿)이었으나, 문정전이 혼전으로 자주 쓰이게 되면서 문정전을 대신해 왕이 실질적인 업무를 보는 공간으로 기능했다. 이곳 어좌에 일월오봉도를 설치함으로써 왕의 권위를 시각적으로 완성한 것이다.
작품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른 일월오봉도와 마찬가지로 붉은 해와 흰 달 아래 다섯 봉우리가 우뚝 솟아 있고, 산의 굴곡마다 금니(金泥)가 화려하게 덧칠되어 있다. 특히 산맥은 극도로 평면화되고 추상화되는 경향을 보이는 19세기 말 작품들에 비해 비교적 자연스럽게 표현되었다. 양편의 붉은 소나무들은 푸른색 산과 선명한 색채 대비를 이룬다. 꼼꼼한 붓질과 채색은 당시 화원들의 숙련된 기량을 가감 없이 보여주어 현전하는 수십점의 일월오봉도 중에서도 단연 백미로 꼽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 작품의 가치는 일월오봉도 뒤편에 그려진 그림에서도 찾을 수 있다. 그림 뒷면에는 ‘해반도도(海蟠桃圖·아래)’가 그려져 있는데, 이는 다른 일월오봉도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이례적인 구성이다. 그림 속 복숭아는 3000년마다 한 번 열린다는 신선 세계의 과일로, 영원한 삶을 염원하는 불로장생의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다. 바다를 향해 역동적으로 꺾인 나뭇가지와 탐스러운 열매는 일월오봉도의 장엄함과는 다른 화려함을 선사하며, 어좌 뒤편의 복도 쪽에서도 신비로운 선계(仙界)의 풍경을 연출하는 역할을 했다.
이처럼 왕의 공간을 신성한 장소로 변모시킨 일월오봉도는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우리만의 고유한 도상이다. 해와 달, 다섯 봉우리 등이 하나의 고정된 기호를 이루며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모습은 오직 조선의 궁궐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풍경이다. 이웃 나라 학자들이 이 그림에 유독 깊은 호기심을 보이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독창성에 있다. 비록 우리가 아직 일월오봉도의 복잡한 도상 원리를 완벽히 밝혀내지 못했지만, 작품에서 뿜어나오는 강렬함은 수백년의 세월을 건너 우리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명세라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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