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통해 삶을 묻다] 우주정류장에 선 삶의 방황과 사유

하영란 기자 2026. 4. 22.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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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인 시인의 시 '젊은 날'
이동·이별 인간 감정 내면 탐색
머무름 흐름 존재 의미 성찰
신이인 시인

가끔은 정신줄을 놓고 허공에 소리도 질러보고, 꿈같은 환상의 영역을 거닐고 싶다. 하지만 이성과 체면 때문에 쉽지 않다. 만취할 때만 가능한 행동이다. 만취는, 좋게 말하면 도약 전의 상태다.

만취하고 정유장 표지판을 끌어안은 기억이라고는 없는 사람과 그런 기억이 있는 사람의 마음의 넓이는 누가 더 넓을까 궁금하다. 다른 사람의 실수를 품는 마음의 넓이가 훨씬 더 넓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시적화자는 정류장의 풍경을 '멋진 곳이다 사람이 사워부스 물줄기처럼 흐르는/ 이론적으로/ 머무르지 않는'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거기 어떻게든 머물러보고자/ 나도 표지판이 됐다'고 한다. 수많은 사람이 지나가는 곳에 머물고자 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유목민처럼 떠돌며 살고 있다. 정주형 주거도 많지만, 투자 개념으로 이동하고, 전셋값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원하지 않아도 돈에 맞는 곳으로 이동하고, 학교를 찾아 이동하고, 직장을 따라 이동한다.

공간과 사람과 아쉬운 이별을 하는 자는 그래도 행복한 느낌의 소유자다. 행복한 사람이라고 감히 그렇게 한마디로 말하지 못하겠다. 정서적으로는 그래도 살아있는 사람이 아닐까.

모든 공간을, 관계를 돈으로 환산하는 사람은 알지 못한다. 그 사람들에게 과연 석별은 있을까.

물처럼 흘러가는 곳에 머물고자 하는 마음은 상처를 남긴다. 흘러가는 곳에는 같이 흘러가야 덜 상처받는다. 상처를 남기지 않고, 받지 않는 삶이 과연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흐를 때는 같이 흘러가야 한다. 흐르지 않고 한곳에 머물고자 하는 마음은 만취 때만 가능한 것일까? 우주정류장은 우리 삶의 공간에서 어떤 공간일까?

시적 화자에게 '젊은 날'은 '우주정류장'에 선 것처럼 꿈과 상상의 공간이 아닐까. 불가능을 꿈꾸는 곳, 도래하지 않은 것을 기다리는 곳이 아닐까. 우리는 정주와 이주를 꿈꾸며 상상과 몽환 사이를 오가는 우주정류장에 서 있지 않을까.

당신은 우주정류장에 서 있는가. 버스정류장에 서 있는가.

젊은 날 -우주정류장

 만취하고 나서 저지른 첫 번째 실수는 정류장 표지판을 끌어안은 것이었다 그것은 안색을 바꾸지 않았고 날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어쩌면 상처라는 걸 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상처만 받고 지나가기엔
 멋진 곳이다 사람이 사워부스 물줄기처럼 흐르는
 이론적으로
 머누르지 않는

 거기 어떻게든 머물러보고자
 나도 표지판이 됐다
 표지판이 두 개인 정류장은
 기형이고 괴담이고 전쟁터니까
 우리는 어떻게 해도 함께할 수 없었겠지만

 석별은 내게
 더 큰 정류장을 차려놓고 복수하듯 붙박이라고
 사람과 짐승과 기계와 유령과 눈에 보이고 보이지 않는 숱한 것들을 아주 잠깐씩만 끌어안고 보내라고
 그런 게 삶이고 사랑이고 재미라고 가르쳐주었다

 -신이인 시집 「나 외계인이 될지도 몰라」(2025, 문학동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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