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삶]너무 현실적인 사람들

양다솔 작가 2026. 4. 22.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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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비영리단체의 상근자 채용에 지원했다. 평일 오전에만 근무하는 조건이어서 작가 일을 병행하며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였다. 면접을 보면서 알게 된 것은 급여는 최저시급이고 오전만 근무하긴 하지만 사실상 하루 종일 해야 할 핵심 업무들을 오전에 집중적으로 끝내는 데 가깝다는 것이었다. 업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기재되어 있지 않은 점에 관해 묻자, 면접관은 방대한 업무 설명(하나부터 열까지 하는 거죠)과 함께 지원자가 자신의 창의력과 상상력으로 업무 영역을 넓혀나가길 원한다고 했다. 나는 면접에서 나오자마자 월 급여를 계산해보았다. 80만원이 안 됐다. 이곳이 비영리단체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우선 내 삶에 비영리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 급여로 어떻게 업무에 대한 상상력을 요구하는 것인지 놀라웠지만, 그보다 놀라운 것은 이 자리에 지원자가 매우 많다는 사실이었다.

정부가 운영하는 문학 상주작가 지원사업이 면접 과정에서의 부적절한 심사 논란과 작가 대상 갑질 의혹이 불거졌다. 문학 상주작가 제도는 작가가 도서관과 문학관 등에 일정 기간 머물며 창작하고, 주민과 함께 문학 프로그램도 운영하도록 지원하는 사업이다. 한 도서관에서는 면접 과정에서 작가의 활동 장르와 상관없이 “디지털 드로잉 수업이 가능하냐”는 질문을 공통으로 던져 논란이 됐다. 문제는 내가 바로 그 면접장에 있었다는 것이다. 한 사람을 뽑는 자리에 스물다섯 명이 지원했는데 도서관은 어떤 서류 검토도 없이 그 스물다섯 명을 모두 면접에 불렀다(당연히 면접비는 없다). 한 번에 네 명씩 면접을 진행했고 팽팽한 긴장감 속에 자연히 서로 경쟁적인 답변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적게는 5년에서 길게는 20년까지 자신의 장르에서 성실히 경력을 쌓아온 작가들이었다. 그때 ‘디지털 드로잉이 가능하냐’는 질문을 받았고 하나같이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시인과 소설가들이 “디지털 드로잉은 경험이 없어 조금 어렵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그때 내가 답했다. “할 수 있습니다. 좋아합니다. 뭐든 하겠습니다.” 내 전공은 수필이고 디지털 드로잉 같은 건 한번 취미로 해본 게 다였다. 다음날 나는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문학 상주작가는 7개월 계약직으로 주 40시간 근무하며 급여는 240만원이다. 이는 서울에서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는 기준으로 책정된 서울 생활임금에도 못 미친다. 7개월간 40회차의 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하는데 이는 매주 3회 이상 강연을 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는 열악한 조건으로 정평이 난 대학 시간강사의 기준으로도 상한선이다. 이렇게 많은 문화 프로그램을 책임지고 기획 운영하는 데 주는 급여라고는 믿을 수 없다. 도서관 입맛에 맞는 강연을 주 3회씩 준비하고 운영하는 데는 엄청난 노력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한마디로 이 정도 업무 강도로 집필을 병행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 도서관에 문의 전화를 했을 때 담당자는 이렇게 말했다. “그거 동아리 관리해주시는 거잖아요.”

예술가를 비롯한 경제적 취약층을 위한 지원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현금 살포’라는 비난과 함께 빠지지 않고 보이는 여론이 있다. ‘예술가들 현실감각 키우게 해야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놀고먹게 하네.’ 우리의 현실감각은 얼마여야 할까. 단 한 명을 뽑는 문학 상주작가 사업에 평균 30명이 넘는 작가들이 지원했다. 예술가로 활동하면서 예술활동 증명에 탈락하는 사례만도 수두룩하다. 예술가만 그럴까. 어디나 일을 구하려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간절하기에 웬만한 부당함은 삼키고 넘길 준비가 되어 있다. 모두가 어렵고 간절하기에 일자리는 마음 놓고 나빠진다. 나부터 그렇다. 이렇게 말했지만 나는 어디든 붙여주는 곳에서 군말 없이 일할 것이다. 필요하다면 작가라는 직업도 내려놓을 것이다.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양다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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