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오늘]변한 듯 변하지 않은 여성 캐릭터

김선영 대중문화평론가 2026. 4. 22.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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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의 입헌군주제를 배경으로 삼은 국내 최초의 드라마는 2006년 방영된 MBC <궁>이다. 박소희 작가의 동명만화를 영상화한 이 작품은 낯선 소재와 장르를 향한 우려에도,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성취했다. <궁>의 성공 이후 속편 격인 <궁s>(MBC·2007)를 비롯해 <더킹 투하츠>(MBC·2012), <황후의 품격>(SBS·2018), <더킹: 영원의 군주>(SBS·2020) 등 여러 편의 입헌군주제 배경 드라마가 등장했지만, 이 장르의 대표작은 변함없이 <궁>으로 기억될 정도로 그 첫 기억은 강렬하다.

이런 가운데 지난 10일 방영을 시작한 또 한 편의 입헌군주제 소재 드라마가 있다. <21세기 대군부인>은, 이 장르의 역사를 처음 쓴 MBC가 극본공모전을 통해 발굴한 오리지널 스토리라는 점에서 <궁>의 영광을 재현할 만한 작품으로 일찌감치 주목받아왔다. 드라마는 방영 4회 만에 시청률 두 자릿수를 돌파하며 높은 화제성을 기록 중이지만, 평가는 엇갈린다. <궁> 방영 20년 뒤의 작품인 데다 제목에서부터 ‘21세기’를 내건 만큼 진화한 스토리를 기대한 이들이 많기에 실망스럽다는 반응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다만 방영 초기라는 점을 감안해 평가를 잠시 미루면, 흥미로운 관전포인트가 눈에 띈다. <궁>과 <21세기 대군부인> 사이의 방영 시차로 확인할 수 있는, K드라마의 달라진 지형도가 그것이다. 몇년 사이 글로벌 주류 문화로 부상한 K드라마는 캐스팅, 캐릭터, 서사, 형식 여러 면에서 변화한 흥행 전략을 선보이고 있다. 대표적 예로, 주역 전원을 신인급 배우로 파격 기용한 <궁>과 ‘글로벌 앰배서더’ 급의 배우를 앞세운 <21세기 대군부인>은 캐스팅 전략부터가 다르다. 24부작인 <궁>의 방영 회차 절반에 해당하는 12부작 <21세기 대군부인>의 서사 전략도 마찬가지로 차이를 보인다. 후자는 입헌군주제에 관한 역사적 배경 설명과 인물관계 묘사를 간소화하고 남녀주인공의 갈등과 로맨스에 집중한다.

가장 극적인 변화는 여성 캐릭터에서 찾아볼 수 있다. <궁>의 주인공 신채경(윤은혜)은 디자이너를 꿈꾸는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다. 조부 세대의 약속과 파산 직전의 집안 사정으로 인해 정략결혼을 수락한 채경은 ‘신데렐라’이자 ‘효녀 심청’으로 불린다. 이영미 대중예술평론가는 ‘시대와 여배우’라는 글에서 <궁> <포도밭 그 사나이>에서 인기를 끈 “윤은혜적 인물형”이 당시 청년세대의 무기력을 반영한다고 분석한 바도 있다.

그로부터 20년 뒤 <21세기 대군부인>은 ‘왕자와 결혼하는 평민 여성의 신분상승 로맨스’라는 기본적 설정을 <궁>과 공유하면서도, 강하고 주체적인 여성상을 선호하는 요즘 여성들의 욕망을 주인공 성희주(아이유)에게 투영했다. 성공한 글로벌 사업가인 성희주는 목표를 위해 왕자에게 먼저 계약결혼을 제안할 정도로 대담한 여성이다. 신채경과 성희주, 두 캐릭터 사이에는, 명백하게 2015년 ‘페미니즘 리부트’와 더불어 급부상한 여성 서사의 새로운 흐름이 놓여있다.

물론 이 같은 변화에도, 성희주를 선뜻 ‘진화’한 캐릭터로 보기 힘든 지점도 존재한다. ‘강한 여성’ 캐릭터의 힘이 주로 재력에서 비롯된다는 점이 특히 그렇다. 부의 권력을 마음껏 과시하는 성희주 캐릭터는 소위 ‘리치언니’로 대표되는 명품 선망의 아이콘처럼 단순하고 납작해보인다. 더 씁쓸한 것은 20년의 시차에도 변하지 않는 남자주인공의 지위다. 아무리 강한 여성이라도 신분상승을 위해 왕자를 필요로 하는 세계라니, 혁명적인 반전이 있지 않고서야 ‘21세기’라는 수사가 와닿지 않는다.

김선영 대중문화평론가

김선영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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