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오스 속의 신성, 북인도를 걷다] 2.바라나시, 신에게 가는 길

기호일보 2026. 4. 22.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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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태로운 거리 너머로 위대한 믿음이 ‘넘실’

바라나시의 해 질녘, 우리는 갠지스강으로 향했다. 호텔에서 조금 이른 저녁을 먹고 나와 기다리고 있는 자전거 릭샤들 앞에 섰다. 릭샤를 끄는 이들의 몸은 하나같이 말라 있었다. 두 사람이 한 릭샤에 올라타면 그 무게를 온전히 다리 힘으로 밀어야 한다는 사실이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복잡한 인도의 거리를 달리는 릭샤.
우리가 탄 릭샤의 기사는 다행히 젊은 청년이었다. 힘은 있어 보였지만 익숙한 솜씨는 아니었다. 뒤엉킨 길 위에서 그는 두 번이나 다른 차와 부딪혔다. 순간 목소리가 높아지고 짧은 언쟁이 오갔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뿐이었다. 누구도 오래 붙잡지 않았고, 각자는 자신의 길을 갔다.

릭샤는 다시 덜컹거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해가 기울고 거리의 소음은 한층 커졌다. 사람, 소, 오토바이, 자동차가 뒤엉킨 길 위에서 우리는 느리지만 분명하게 갠지스강 쪽으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도로의 대기에 먼지와 향 외에도 알 수 없는 생의 기운이 섞여 들었다.

릭샤는 강까지 들어갈 수 없었다. 고도울리아 초크(Godowlia Chowk)에서 내려야 했다. 걸어가면서 마주한 것은 시장의 소음이었다. 상점과 노점이 양쪽으로 늘어서 있었고 사람들은 그 사이를 물처럼 흘러갔다. 그런데 흐름은 유연하지 않았다. 어깨와 팔꿈치가 서로를 건드리고, 시선과 목소리가 충돌하고, 멈추고 밀려나면서 골목은 거친 숨결처럼 들썩였다.

갠지스 강에서 만난 사두(수행자).
그 혼잡 속에서 유독 눈에 들어온 것은 물통들이었다. 순례를 온 사람들은 물통에 갠지스의 물을 담아 돌아가려 했다. 성스러운 강을, 손에 쥘 수 있는 크기로 집 안에 들여놓으려는 마음이다. 그들의 간절함은 경건했다.

사람들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니 골목이었다. 어느새 우리는 미로 같은 골목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그곳은 바라나시의 구시가지였다.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고는 했지만 막상 들어와 보니 말로는 다 설명이 안 될 만큼 복잡하고 생생한 공간이었다.

미로 골목 사이로 작은 힌두 사원들이 불쑥불쑥 나타났다. 문은 낮았고 안은 어둡고 깊었다. 그들은 신상 앞에 머리를 대고 있었고, 종을 울리며 기도를 올렸다. 향냄새와 기름 등의 그을음이 공기 속에 오래 머물러 있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오래된 저택들이었다. 빛바랜 벽과 세월에 닳은 창살, 사람의 손길이 수없이 닿아 반들거리는 문턱들이 골목마다 서 있었다. 어떤 집은 게스트하우스로 여행객의 잠자리가 되어 있었고 어떤 집은 기념품 가게로 변해 있었으며, 또 어떤 곳은 아직도 누군가의 삶을 조용히 품고 있는 듯했다. 과거가 완전히 사라지지도 않았고 현재가 완전히 자리를 잡지도 못한 채, 두 세상이 한 벽 안에서 겹쳐 숨 쉬고 있었다.

바라나시 구시가지에 있는 미로 골목.
신기한 것은, 골목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도 결국 모든 길의 끝은 갠지스강과 닿아 있다는 점이었다. 어떤 골목으로 들어가도 마지막에는 결국 강으로 이어졌다.

가트에서 내려섰을 때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너무 많은 것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었다. 강물에 몸을 담그는 사람들,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사람들, 제단 앞에 엎드린 사람들과 세상 모든 방향으로 내민 손들이다. 그 손들은 꽃을 팔기도 하고, 축복을 빌기도 하고, 돈을 요구하기도 했다.

혼잡 속에는 동물들까지 함께 들어와 있었다. 개와 소와 염소와 원숭이까지, 인간의 세계와 별반 구분되지 않는 얼굴로 그 자리를 오가고 있었다. 그 광경은 생경했지만 동시에 이상할 만큼 자연스러웠다. 이곳에서는 인간의 질서만이 세상의 질서가 아니었다. 신앙과 생존, 정결과 오염, 경건과 거래가 서로를 밀어내지 않은 채 겹쳐 있었다.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하자 소리가 먼저 차올랐다. 북소리, 종소리, 경전을 읊는 음성이 스피커를 타고 퍼졌다. evening Puja(푸자)라고 부르는 힌두교 저녁 의식이다. 곧 불을 들어 올리는 강가 아르티(Ganga Aarti)가 시작됐다. 일곱 명의 브라만이 동시에 불을 들었다. 그들의 손에서 커다란 등불이 원을 그리며 흔들렸다. 불은 공중에서 춤을 췄고 연기는 위로 말려 올라갔다. 그 순간은 현재가 아니었다. 힌두교의 일곱 성자 삽타리시의 그림자가 불빛 위에 겹쳐졌다.

불이 강을 향해 기울어질 때마다 사람들은 손을 모았다. 불빛들이 강물 위로 쏟아졌다. 갠지스, 그들이 부르는 이름, 강가(Ganga). 힌두교도에게 이 강은 어머니였다. 만트라가 낮게 울렸다. 신의 이름이 반복됐다.

한 소녀가 소원을 담아 강에 띄우는 꽃 등을 팔고 있다.
동시에 터져 나온 소리가 나를 끌어당겼다. 불이 나를 묶어두었다. 나는 어딘가에 잠긴 것 같았다. 최면처럼. 그 위로 바잔이 흘렀다. 노래는 기도가 되었고 기도는 다시 소리로 풀렸다. 시바의 이름이, 그의 또 다른 이름인 비슈와나트가, 이번엔 비슈누의 이름이 들렸다. 이곳에서는 하나의 신이 다른 신을 밀어내지 않았고 모든 의식은 강을 향하고 있었다.

기관총을 멘 군인들이 군중 사이를 순찰하며 경계근무를 서고 있었다. 테러 방지를 위해서라고 한다. 의식은 멈추지 않았고 불은 계속 흔들렸다. 사람들은 손을 모았다. 구걸하는 손과 축복을 파는 손과 기도하는 목소리와 총을 든 군인이 한 장면 안에 있었다.

해질 무렵의 갠지스강.
바라나시는 연간 100만 명의 힌두교도들이 찾아오고 푸자 의식에 참여하는 순례자도 많아 늘 붐빈다고 한다. 푸자 의식 중에서 가장 장엄한 것이 불을 신에게 바치는 강가 아르티(Ganga Aarti)다. 불을 이 강의 신인 시바 신에게 바치는 의식이다. 찬가 같은 노래, 기도문이 반복되는 리듬, 스피커를 타고 퍼지는 안내의 음성까지. 소리는 강 위를 가로질러 퍼졌고 계단을 타고 내려와 사람들의 어깨와 이마 위에 내려앉았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며 이상한 감각에 사로잡혔다. 나는 잠시 들른 여행자가 아니라 이미 오래된 세계의 가장자리에 서 있는 목격자처럼 느껴졌다. 갠지스는 물이었지만 동시에 시간이었다. 믿음과 기도가 어두운 빛 속에서 한꺼번에 드러나고 있었다.

단순히 구경했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종교가 눈앞에서 살아 움직이는 광경이었고 동시에 인간의 감정과 믿음이 얼마나 강하게 공간을 바꿔 놓는지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나는 그 속에 잠깐이지만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글·사진=신미송 굴포문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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