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대구(14) 대구 달성, 왜 그렇게 높이 쌓았을까…팔공산, 가야산, 금오산, 낙동강이 보이는 핵심 요충지

최미화 기자 2026. 4. 22.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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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가 서북진·가야공략 차 만든 치소성…더이상 파괴막고 경관 보존해 대구의 역사적 중요성 알려야
지난 20일 대구 달성 정밀발굴조사 현장공개 설명회에 언론사는 물론 수많은 시민들이 몰려들어 대구달성에 대한 높은 관심을 대변하였다. 대구 중구청 제공.
"대구 달성을 왜 이렇게 크고 높게 쌓아올렸을까?", "바닥의 암반을 깨끗하게 털어내고, 그 위에 7~8m 이상 토석 혼축으로 성을 쌓아 최고 높이는 17m 이상 된다. 대구 달성이 경주 월성에 비견된다지만 쌓아올린 부분만 7~8m로 경주 월성의 5~6m 보다 더 높다. 그만큼 통일로 향하고 있는 신라가 세력 확장의 최고 요충지를 대구로 정했다는 것이다"
대구 달성은 암반위에 쌓아올린 부분만 따지면 경주 월성을 능가할 정도이다. 통일로 향하던 5세기 신라가 그만큼 대구를 중요하게 여겼다는 반증이다. 최미화 기자
국가 사적 제62호로 63년전(1963년)에 지정된 대구 달성 정밀발굴조사 현장설명회(4월20일)에 다녀온 고대사 연구자들은 한결같이 대구 달성이 갖는 역사적 의의에 대해 "한마디로 굉장한 발굴"이라고 입을 모으면서 복원과 함께 더이상 경관 파괴를 막아서 고대 대구의 역사적 중요성을 시민들께 알려야한다고 했다.
대구 달성이 걸어온길. 신사가 들어서고, 다시 동물원이 조성되는 등 사적으로서의 존엄을 훼손당했다. 재발을 막고, 대구 달성이 보여주는 고대 대구의 역사적 중요성을 잊어서는 안된다. 최미화 기자
이문기 경북대명예교수(고대사)는 "국가(신라)가 서쪽(백제쪽) 혹은 소백산맥 넘어 한강쪽으로 가는 서북쪽(백제쪽과 경북 북부)으로 진출하기 위한 최요충지가 대구"라며 "대구의 달성을 지역세력들이 쌓은 것처럼 오해하면 안된다. 이건 국가가 행정을 펴기위한 기관을 둔 치소성으로 신라의 중앙권력이 크게 작동한 결과물"이라고 의미를 부여한다. 또 이 교수는 "아직 문헌으로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대구에 군이 설치됐을 것"이라며, "성 혹은 촌 너댓개가 딸려서 이뤄지는 행정단위가 군인데, 5세기 중엽 대구는 신라세력 확장의 핵심으로 등장했다"고 말한다. 신라의 중앙권력이 원래의 달성토성 위에 추가 축성을 결정했고, 대구의 지배세력들이 축성에 동원되는 노역들을 담당했을 것"이라며 추가 발굴을 통해 달성의 온전한 모습을 복원해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달성 토성 남측 발굴조사에서 수습된 유물. 최미화 기자
"신라가 처음에는 경산쪽을 중요시하고 지원을 많이 해서 경산쪽 고분군에서 금동관도 나오고 하는데, 신라가 북쪽이나 서쪽으로 세력을 확장하려고 보니까 경산보다 대구가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경상감영이 설치(1601년)되기 전의 대구는 별로 시원치 않은 것으로 여기는데, 그게 아니다. 삼국시대의 중심에 대구가 있고, 대구에도 달성만 있는 것이 아니라 북구 팔거산성과 화원토성, 설화리 고분군, 대명동 고분군, 불로동 고분군 등이 있는 굉장한 지역이었다. 그 중심에 대구달성이 있다"는 김세기 대구한의대 명예교수(전 박물관장)는 "경주 다음으로 달성고분군(비산동고분군, 내당동고분군 등)에서 금동관이 몇개씩 나오고 청동검, 귀걸이 등 위세품이 많이 나왔다. 결국 임당이 중요한 지역이었다가 대구가 더 중요한 지역으로 부각된 것"이라고 평가한다.
배꽃처럼 생긴 대구 달성 주변에 해자가 뚜렷하게 보인다. 달서천 복개와 서문 커뮤니티센터, 서문공영주차장 등으로 많이 훼손됐다. 서울 청계천처럼 복원해야한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1954년에 항공 촬영된 대구 달성 사진을 현장에서 재촬영했다. 최미화 기자
김 교수는 "하늘에서보면 주변경관은 많이 파괴되었지만, 달성 하나는 그대로 남아있고, 굉장히 예쁘다. 특히 대구 달서천이 달성과 붙어서 흐르면서 자연해자를 이루고 있을 정도로 군사상 방어상 행정상 굉장히 중요한 곳"이라면서 "대구 달서천도 서울 청계천처럼 복개를 덜어내서 복원하자는 얘기들이 나오고 있다"고 들려준다. 실제로 대구 달성의 경우 서쪽에는 달서천이 자연 해자를 이루고, 다른 쪽은 인공해자를 둘러서 경주 월성과 같은 해자를 갖고 있다. 하지만 달서천이 복개되고, 주변이 개발되면서 해자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대구 달성 남측 발굴현장. 대구 달성은 가야산과 팔공산, 수성구민운동장, 연암산 등이 다 보이는 센터에 위치하고 있다. 신라는 서북진과 가야공략 요청지로 대구에 달성을 축조했다. 대구 중구청 제공.
박천수 전 경북대 박물관장은 "이렇게 어마어마하게 큰 달성을 쌓았을 때는 첫째 대구가 사통팔달의 교통요충지이니까 경북 북부지역을 공략하기 위한 행정적·군사적인 거점 기지 같은 역할을 했을 것이고, 둘째는 당시 한창 세력을 키우고 있는 대가야를 공략하기 위한 목적을 가졌을 것이다. 그만큼 대구가 중요했던 곳"이라면서 "달성 인근에 분포해있는 달성고분군(비산동 고분군, 내당동 고분군 등)에서 경주를 제외하고는 가장 화려한 부장품이 나온 것만 봐도 경주 다음으로 대구가 중요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신문왕 때 대구천도설도 나왔던 것"이라고 말한다.
2022년에 항공촬영한 대구 달성. 출처 국토지리정보원.
과거 윤용진 경북대박물관장 시절, 현재의 대구달성 향토역사관을 지을 때 파괴된 성벽 부분에 대한 발굴조사에서 실측과 정리 등을 담당했던 박천수 전 관장은 "달성이 대구의 위상을 보여준다. 발굴현장을 보면 대구 달성은 암반 위에 7~8m를 더 쌓았다. 경주 월성은 아마 5~6m 정도 더 쌓았을 것"이라며 경주 월성보다 더 높다고 보고 있다.
1969년, 동물원 조성 전 대구 달성. 출처 향토역사관 개관 10주년 도록 『달성 잊혀진 유적의 재발견』ㅣ
한편 대구달성 현장설명회에서 최재현 대동문화유산연구원 자료관리부장은 "이미 달성 내부에서 8차례의 발굴이 있었지만 이번 발굴이 대구 달성의 공식적인 첫 발굴"이라면서 "5세기 중엽에 달성이 만들어진 부분이 확인됐다. 아쉬운 점은 삼국사기 기록에 나오는 첨해니사금이 261년에 달성을 축조하고, 나마극종에게 맡겼다는 부분까지는 찾지 못했다"고 밝힌다. 왜냐하면 이번 발굴 현장 아랫부분에 잉어장이 위치하고 있어서 잉어장은 발굴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래서 달성의 바닥에서 3m 정도는 발굴하지 않았다.
1960년대 초, 신사건물 해체 전 대구 달성. 출처 향토역사관 개관 10주년 도록 『달성 잊혀진 유적의 재발견』

"비가 오면 빗물이 잘 빠지도록 배수에 신경썼고, 위에서 오랫동안 하중에 눌려도 아랫돌이 빠져나오지 않게돌을 안쪽으로 기울도록 신경썼고, 구획정리 공정까지 세심하게 적용했다"는 최 부장은 "당시로서 최첨단 공법이 적용된 대구 달성을 만들면서 쌓은 돌들은 전부 달서천에서 가져왔거나 달성 상단부 평탄화 작업시 나온 돌들을 가져왔다"고 보고했다.

최 부장은 "대구 달성에서는 북쪽으로는 팔공산, 북서쪽으로는 구미 금오산, 동남쪽으로는 법이산, 서쪽은 낙동강 넘어까지, 그리고 가야산까지 다 보인다. 여기가 센터로 딱 명령을 내릴 수 있고, 전체를 통제할 수 있는 입지"라면서 "대구 달성이 경주 월성과 비견된다"며 달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한 최 부장은 "서구 비산동 커뮤니티 센터 부근을 조사하면서 (인공)해자가 확인됐다"면서 서문공영주차장 부지 아래로도 해자가 있을 것이라고 들려준다. 최 부장은 이번 발굴에 이어서 북쪽, 관풍루(달성공원 들어가면 오른쪽 둘레길 초입)가 있는 곳에 대한 발굴을 더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삼국 통일을 향해 달려가던 신라가 서북진과 가야공략의 요충지로 대구에 달성을 축조한 발굴현장을 시민들이 직접 보고 있다. 최미화 기자
2년전 대구 달성, 경상감영, 대구읍성 등을 묶어서 추진하던 세계유산화의 재점화가 필요하다는 이들이 많지만, 대구읍성에 대한 사적지정이 대구시에서 부결된 상태라 다시 추진하기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김신영 대구시 문화유산과장이 달성복원 계획에 대해서 현장에서 발표하고 있다. 최미화 기자

김신영 대구시 문화유산과장은 "여기 남측 북측 그리고 예전 신사터 자리 등을 발굴하고 그 근거로 대구달성 복원사업을 2028년부터 본격적으로 진행한다"며 "지금 발굴 조사상으로는 5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대구 달성을 정비해서, 이제 대구의 위상을 시민들이 제대로 알 수 있는 역사적인 공간으로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최미화 기자 cklala@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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