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로펌, 이제 '컨설팅 펌'…전관 대신 전문가 모셔간다

허란 2026. 4. 22. 16:11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소속 변호사 수 48% 늘 때
비법조 전문 인력 94% 급증
규제기관 출신 영입 경쟁 가열
계약서 검토·판례 분석·기록 정리…
AI가 반복 업무 빠르게 대체
자체 인공지능 플랫폼 잇따라 구축

국내 10대 로펌의 2025년 합산 매출(국세청 부가가치세 기준·김앤장법률사무소는 추정치)이 4조1090억원을 기록했다. 2021년 2조9695억원에서 4년 만에 38% 늘었다. 같은 기간 10대 로펌의 한국 변호사 수는 3782명에서 5006명으로 32% 증가했다. 외형과 인력이 함께 팽창하는 사이, 로펌들의 성장 방정식은 조용히 바뀌고 있다. 변호사를 늘려 매출을 키우는 ‘양적 성장’에서 비변호사 전문 인력을 앞세워 규제 대응 솔루션을 통합 제공하는 ‘컨설팅 펌화’로의 전환이 가속화되고 있다.

Getty Images Bank

 ◇ 비변호사 인력, 변호사보다 두 배 빠르게 증가

이 흐름을 가장 먼저 시도한 곳은 김앤장이다. 한국변호사 1141명을 포함해 변리사·회계사·세무사·전문위원·컨설턴트 등 2200여 명의 전문 인력을 보유한 김앤장은 복합 규제에 통합 솔루션을 제공하는 종합 컨설팅 조직의 원형을 국내에서 가장 먼저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형로펌이 규제기관 출신 고문·전문위원 영입에 열을 올리는 것은 김앤장이 독점해온 이 포지션을 벤치마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러한 흐름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관련 데이터를 공개한 율촌·화우·바른·YK 4개 로펌의 비변호사 전문 인력은 2021년 273명에서 현재 529명으로 94% 늘었다.

2021~2025년 사이 이들 4개 로펌의 한국 변호사 수 증가율 48%와 비교하면 비변호사 인력이 두 배 가까운 속도로 확충되고 있는 셈이다. 과거 로펌의 인재영입이 법원·검찰 출신 ‘전관’ 중심이었다면, 최근에는 공정거래위원회·금융감독원·고용노동부 등 정부 부처와 규제기관 출신 공무원 영입 경쟁이 훨씬 더 치열해지고 있다. 규제 당국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내부에서 직접 짚어줄 수 있어야 기업 고객에게 제대로 된 컨설팅을 제공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 1인당 변호사 매출 끌어올린 컨설팅 전략

5대 법무법인(태평양·세종·광장·율촌·화우)의 변호사 1인당 매출은 2021년 평균 6.8억원에서 2025년 7.4억원으로 높아졌다. 단순 인력 확충이 아닌 서비스 고도화가 뒷받침됐다는 의미다.

세종은 이 흐름을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4년간 변호사 수는 455명에서 603명으로 33% 늘었지만 매출은 2671억원에서 4363억원으로 63% 급증했다. 1인당 매출도 5.9억원에서 7.2억원으로 뛰었다. 최근 방산 분야에서는 김정수 전 해군참모총장과 강중희 전 방위사업청 항공기사업부장을 영입하는 등 전문가 확충에 적극 나서고 있다. 오종한 세종 대표변호사는 “이제 로펌은 변호사만의 조직이 아니라 회계사·변리사·세무사·고문·컨설턴트가 결합하는 종합 컨설팅 조직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율촌은 같은 기간 변호사 수가 381명에서 537명으로 41% 늘었고 매출은 2687억원에서 4080억원으로 52% 증가했다. 비변호사 전문 인력도 2021년 122명에서 현재 216명으로 77% 늘었다. 최근 강도태 전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 유진규 전 인천경찰청장을 고문으로 영입했으며 공정거래·금융규제·TMT 분야 전문가들이 속속 합류하고 있다.

태평양은 4년간 변호사 수가 461명에서 598명으로 30% 늘고 매출은 3624억원에서 4402억원으로 21% 성장하며 지난해 처음으로 광장을 제치고 업계 2위에 올라섰다. 최성일 전 금감원 부원장, 김명준 전 서울국세청장 등을 고문으로 영입했으며, 기술분쟁·조사대응센터와 자산관리승계센터를 잇달아 출범시켰다. 이준기 태평양 대표변호사는 “판단과 전략이 필요한 고부가가치 영역으로 로펌의 역할이 압축되는 흐름은 거스를 수 없다”고 말했다.

광장은 4년간 변호사 수가 534명에서 604명으로 13% 늘었지만 매출은 3685억원에서 4309억원으로 17% 성장했다. 안경덕 전 고용노동부 장관, 강은호 전 방위사업청장, 이광재 전 국회사무총장 등 거물급 고문 영입을 비롯해 노동·공정거래·금융규제 분야 출신을 전략적으로 확충하고 있다. 김상곤 광장 대표변호사는 “규제 당국 출신을 확충해 전방위 기업 규제 리스크에 통합 대응하는 체계를 갖추는 것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화우는 4년간 변호사 수가 319명에서 368명으로 15% 늘어 대형 로펌 중 가장 낮은 증가율을 기록했지만 매출은 2003억원에서 2812억원으로 40% 성장했다. 비변호사 전문 인력도 101명에서 163명으로 61% 늘었으며 금감원 자금세탁방지실장 출신 박상현 고문 등 규제기관 출신이 포진해 있다. 이명수 화우 대표변호사는 “부서 간 칸막이를 없애고 프랙티스그룹(PG) 조직을 약 20개로 확대해 통합 솔루션을 제공하겠다”고 했다.

 ◇ 중대형 로펌, 각자의 승부수

와이케이(YK)는 4년 새 가장 가파른 성장을 기록했다. 변호사 수는 129명에서 357명으로 177% 급증했고 매출도 461억원에서 1694억원으로 267% 폭증했다. 비변호사 전문 인력도 31명에서 113명으로 264% 늘었으며 경찰 출신만 60명으로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올해는 자체 앱을 출시해 의뢰인 관리를 시스템화하고 집단소송에서 고객 소통 수단으로 활용한다는 구상이다.

지평은 4년간 변호사 수가 224명에서 283명으로 26% 늘었고 매출은 1051억원에서 1327억원으로 26% 성장했다. 국내 최초로 프로파일러를 양성한 윤외출 고문, 유충현 전 삼성EHS전략연구소 소장 등을 영입하며 안전경영컨설팅센터를 출범시켰다. 이행규 대표변호사는 매년 40명씩 인력을 영입하며 올해 20% 성장 목표를 제시했다.

바른은 비변호사 전문 인력이 2021년 19명에서 현재 37명으로 95% 늘었다. 이동훈 바른 대표변호사는 ‘송무 명가’의 초격차를 지키면서 국제중재와 지식재산(IP) 분야로 외연을 넓히는 전략을 택했다.

대륙아주는 대규모 영입 없이 조직 개편과 마케팅 강화만으로 지난해 처음 1000억 원을 넘겼다. 올해는 공정거래·조세·IP·인사노무 분야를 중심으로 20~30명 규모의 인재 영입에 나서는 한편, 정경두 전 국방부 장관 등 비변호사 전문 인력도 현재 72명 규모로 확충했다.

 ◇ 다음 경쟁은 AI

로펌 업계의 성장 방정식이 다시 한번 바뀔 전조가 감지되고 있다. AI가 변수다. 계약서 검토·판례 분석·기록 정리 등 반복적인 업무가 AI로 빠르게 대체되면서 비변호사 전문 인력 중심의 컨설팅 펌화에 이어 AI 활용 역량이 로펌의 새로운 경쟁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광장은 자체 AI 시스템 ‘eLK’를 구축했고, 율촌은 지난해 12월 폐쇄형 AI 플랫폼 ‘아이율’을 론칭했다. 세종은 법률 AI 하비의 사용 계정을 3배 이상 늘렸고, 태평양은 하반기 중 고객 정보 보안에 특화된 자체 시스템을 선보일 예정이다.

정계성 김앤장 대표변호사는 “빠르다고 좋은 게 아니고, 가장 중요한 것은 고객 정보가 외부로 유출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며 무분별한 AI 투자 경쟁에 신중한 시각을 드러냈다.

강석훈 율촌 대표변호사는 “앞으로 대형 로펌 간 경쟁의 차별화 포인트는 어느 로펌이 AI 활용에서 고객의 신뢰를 받을 수 있느냐”라고 말했다.

허란 기자 why@hankyung.com

Copyright © 한국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