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 출발지, 환대의 도시가 되다… 근대부터 흘러온 ‘하와이 이민’ [알보달보 인천지역유산·(11)]
제물포발 첫 하와이 이민과 고된 노동
‘사진신부’ 이주와 독립운동 자금 지원
한인 교회 중심 결속… 독립운동 기지화
교민 기부로 세운 인하대·이민사박물관
새로 쓰인 이민 서사… 인천 재외동포청

한국 근대사의 큰 물줄기 중 하나는 ‘이민 서사’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근대적 의미의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의 땅으로 나아가기 시작한 때는 아이러니하게도 제국주의 열강이 우리 땅으로 침탈해 들어오던 19세기 후반~20세기 초반이다. 이 시기 만주와 연해주, 일본, 미국과 중남미, 중앙아시아 등 곳곳으로 흩어진 수백만 한국인들은 갖은 시련을 딛고 역경을 헤치며 이국 땅에서 새로운 터전을 개척해 나갔다. 먹고살기 위한 이주,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과 강제징용, 정치적 이유로 인한 강제 이주 등 사연도 가지가지다.
근대 시기 해외로 이주해 뿌리내린 한인과 그 후손을 가리켜 최근에는 ‘코리안 디아스포라’(Korean Diaspora)라고도 부른다. 재외동포청이 집계한 지난해 재외동포 수는 약 700만명이다. 인천시 인구보다 2배 이상 많은 동포들이 해외에서 살고 있다. 오늘날 K-컬처가 전 세계로 뻗어 나가는 데에는 그들의 공이 무척 크다. 한국계 미국인 작가 이민진이 한인 이민 가족 4대 이야기를 쓴 베스트셀러 소설이자 TV 드라마 ‘파친코’(2017) 등 코리안 디아스포라 문학 등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역경과 고난으로 상징됐던 한인 이민 서사는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 콘텐츠로 자리매김했다.
한국의 이민 역사는 올해로 124년이다. 최초의 공식 이민은 1902년 12월22일 제물포(인천항)에서 출발한 한인 노동 이민자들이었다. 행선지는 미국 하와이였다. 인천시가 인천지역유산 목록에 ‘하와이 이민’을 무형의 유산으로 포함한 이유다. 광범위한 역사적 사실까지도 지역유산이라 할 수 있을까. 인천시는 가능하다고 봤다. 그 역사가 현재의 유산으로 연결돼 시대가 흐를수록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 시련 딛고 일어선 이민 1세대
제물포에서 떠난 최초의 하와이 이민자는 121명이었다. 이 가운데 86명(71%)이 제물포, 부평, 강화·교동 등 인천 출신이었다. 초창기 하와이 이민자들은 인천 내리교회 교인이 주축이었다. 이들은 일본을 거쳐 1903년 1월13일 하와이 호놀룰루항 7번 선착장에 도착했다. 신체검사에서 탈락한 이들과 질병에 걸린 사람을 제외하면 실제로 86명만 하와이 땅을 밟을 수 있었다.

하와이 이민 2세인 신성려 미주리대 교수가 이민 1세대의 구술을 모아 1988년 쓴 ‘하와이 이민약사’에 이들의 정착 과정이 생생하게 묘사됐다. 하와이 이민자들은 호놀룰루에 도착하자마자 시내를 구경할 새도 없이 사탕수수 농장으로 파견돼 고된 노동에 시달렸다. 다음 날 아침 새벽부터 농장으로 끌려가 칼이나 도끼를 들고 원시림을 자르고 사탕수수를 심었다. 종묘를 심기 위해선 1m 정도의 고랑을 파고 물을 대야 한다. 사탕수수는 1년에 한 번 수확하는데, 4천m²당 819t을 수확했다고 한다. 하와이 이민자들은 하루에 12~14시간씩 일했다. 하루치 임금으로 69~70센트를 받았다. 한 1세대 이민자는 신 교수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침 4시 반이면 일어나 밥을 지어 먹고 5시 정각에 일터에 나가고… 저녁 4시면 끝이고 10시간 이상 고된 노동을 하고 (중략) 그저 담배도 못 피우고, 십장이 감시하니까요. 구부리고 10시간 노동을 하고 나면 허리를 펴기가 어려울 정도. 그게 사람이 할 일이오.”

초창기 하와이 이민은 1905년 일본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한 을사늑약 체결 때까지 이어졌다. 64차례에 걸쳐 총 7천215명이 하와이로 이주했다. 이 중 인천·경기 주민이 906명(27%)으로 가장 많았다. 당시 하와이 이민자 대다수는 남성이었다.
일제강점기가 시작된 1910년대부터는 하와이로 향한 여성 이민자도 많았다. 현지에서 혼기를 놓친 남성 이민자들이 적응하지 못하는 문제가 생기자 이들과 결혼하기 위해 온 여성들이었다. 신랑이 될 사람의 사진만 보고 하와이로 왔다고 해서 ‘사진 신부’라 불렸다. 인천시립박물관 분관 한국이민사박물관에서는 1911년 사진신부로 하와이로 건너간 함경도 원산 출신 김도라 가족의 사진과 각종 자료를 볼 수 있다. 김도라와 그의 남편 김승률은 조국의 독립을 염원하며 독립운동 자금을 대기도 했다.
■ 해외 독립운동 기지가 된 하와이
애초 하와이에는 중국, 일본에서 온 이주 노동자들이 많았다. 미국이 1880년대 ‘중국인 배척법’을 제정하면서 중국인을 고용할 수 없게 됐다. 일본인 노동자들은 노동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하와이 농장주들은 한국으로 눈을 돌렸다. 그들은 당시 주한 미국 공사 알렌(Horace Newton Allen·1858~1932)과 접촉해 한국인의 하와이 노동 이민에 협조를 약속받았다.
알렌은 고종을 설득해 여권 업무를 담당하는 ‘수민원(綏民院)’이 설립되도록 했다. 고종은 하와이 이민 사업 책임자로 데슬러(David W. Deshler·1867~1944)를 임명했다. 데슬러는 이민 업무를 처리할 동서개발회사와 은행을 설립했고, 알렌의 친구였던 인천 내리교회 존스(George Heber Jones·1867~1919) 목사에게 신도들을 설득해 달라고 요청했다. 인천에서 첫 하와이 이민단이 구성된 배경이다.

그래서 하와이 한인사회는 교회를 중심으로 뭉쳤다. 1907년 9월 고종의 퇴위 소식이 알려지자 하와이에 있던 여러 단체는 ‘한인합성협회’라는 하나의 단체로 통합해 민족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교육사업 등 각종 활동을 펼쳤다. 많은 교민이 하와이를 독립운동기지로 삼아 고국에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했다.
당시 하와이에서 한인 남성 노동자의 한 달 임금이 17달러 정도였고, 생활비를 빼면 3~4달러 정도 남았는데, 매달 1달러 이상을 독립운동 자금으로 보냈다고 한다. 하와이에서만 1920년대 300만 달러를 모았다. 그 시대 거의 모든 하와이 교민들을 독립유공자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 인천에서 만나는 하와이 이민사
인천에서도 이토록 절절한 하와이 이민사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우선 2008년 6월 인천 중구 월미도에서 국내 최초로 개관한 한국이민사박물관을 꼽을 수 있다. 한국이민사박물관은 하와이 농장에서 노동자들을 관리하기 위하여 쓰던 번호표, 한인 노동자들의 물통, 여권(집조), 멕시코에서 사용한 에네켄 기계까지 다양한 유물들을 수집해 전시하고 있다. 인천시는 현재 미주 이민사 중심인 한국이민사박물관을 증축해 전 세계 한인 이민사를 망라하는 박물관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기도 하다.

인하대학교는 하와이 교민들이 기부금을 보태면서 설립된 대학이다. ‘인하’는 인천과 하와이의 앞 글자를 따서 만든 명칭이다. 인하대의 전신 인하공과대학은 한국전쟁 직후인 1954년 4월 개교했다. 이민 50주년을 기념하고자 했던 하와이 한인 동포들이 일제강점기 민족운동 거점이었던 한인기독학원 부지를 매각해 마련한 기부금 15만 달러(900만환)를 기초 재원으로 정부 보조금, 민간 기부금, 유엔 등 해외 원조를 통해 인하대를 세웠다. 미국의 MIT(Massachusetts Institute of Technology)를 모델로 삼아 전쟁으로 초토화된 산업을 다시 일으키고 기술 발전을 도모하자는 게 인하대 설립 취지였다.
인하대 내에는 1973년 하와이 교민과 한진그룹 창업주 조중훈(1920~2002) 회장의 지원으로 건립된 하와이교포기념관(현 현경체육관)도 있다. 인하대의 뿌리와 역사를 상징하는 공간이다. 하와이 호놀룰루시에도 2011년 인하공원이 조성돼 한인사회가 관리하고 있다.
재외동포청은 새로 쓰인 이민 서사다. 2023년 신설된 재외동포청이 인천에 둥지를 틀 수 있었던 명분 또한 ‘한국 이민의 출발지’였다. 해외 곳곳에 있는 700만 동포와 한국을 잇고, 그들을 보호·지원하는 재외동포청이 인천에 있음으로 인해 인천이 124년 전 디아스포라를 낳은 도시에서 그들의 후손들을 환대하는 도시로 거듭날 수 있었다. 하와이 이민은 시간이 고정된 지역유산이 아니라 앞으로도 그 의미를 확장해 나갈 수 있는 콘텐츠로서 미래지향적인 유산이라 할 수 있다.

/박경호 기자 pkhh@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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