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원 썼는데 빚은 5000만원?… ‘마통’의 배신[유진아의 금쏭달쏭]

#성남에 거주하는 직장인 A씨는 최근 내 집 마련을 위해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을 알아보다 예상치 못한 이야기를 들었다. 마이너스통장 때문에 원하는 만큼 대출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회 초년생 시절 "일단 뚫어두는 게 좋다"는 선배들의 말을 듣고 개설만 해둔 계좌였지만,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통장이 내 집 마련의 발목을 잡은 셈이다.
A씨는 "쓰지도 않은 통장인데 그것 때문에 주담대가 안 나온다는 게 도무지 이해가 안 됐다"며 "괜히 놔뒀다가 제때 주택 자금을 마련하지 못할까 봐 겁이 나 그 자리에서 바로 해지했다"고 토로했다.
마이너스통장은 급할 때 언제든 돈을 꺼내 쓸 수 있는 대표적인 신용대출 상품이다. 당장 급전이 필요할 때 유용하게 쓰이다 보니 A씨처럼 당장 쓰지 않더라도 비상용으로 미리 만들어두는 경우가 많다.
최근 '빚투'(빚내서 투자) 확산도 마이너스통장 개설 수요를 강하게 자극하고 있다. 실제로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마이너스통장 잔액은 지난 2월 말 39조1185억원에서 지난 16일 40조955억원으로 한 달 반 새 약 9770억원이나 증가했다.
그렇다면 단 한 푼도 빼 쓰지 않은 마이너스통장이 대체 왜 문제가 되는 걸까. 이유는 은행권이 마이너스통장을 '한도약정계좌'로 분류하기 때문이다. 실제 사용 여부나 금액과 무관하게 언제든 빼서 쓸 수 있도록 약정된 한도 전체가 고스란히 부채로 잡힌다. 5000만원 한도를 열어두고 0원을 썼든 2000만원을 썼든 대출 심사 시에는 똑같이 5000만원 전체가 빚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이 구조는 대출 한도를 계산하는 지표인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에 그대로 반영된다. DSR은 개인이 받은 모든 대출의 연간 원리금 상환액을 연소득으로 나눈 비율이다. 원리금 상환액이 커지거나 소득이 적어질수록 DSR은 높아지고 그만큼 대출 한도는 줄어든다. 현재 은행권은 DSR 40%, 저축은행 등 2금융권에선 50%를 넘지 않는 선에서만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여기에 스트레스 DSR 규제까지 더해지면서 한도 감소 폭은 더 커졌다. 실제 금리에 일정 수준의 가산금리를 더한 '심사상 금리'를 기준으로 상환 능력을 평가하기 때문에 같은 조건에서도 대출 가능 금액이 줄어드는 구조다. 특히 수도권을 중심으로 시행된 '스트레스 DSR 3단계'는 실제 금리에 1.5%포인트를 더한 금리를 적용해 대출 한도를 산정한다. 실제로 더 많은 이자를 내는 것은 아니지만, 심사 기준이 강화되면서 체감 한도는 더욱 줄어들 수밖에 없다.
사용하지 않은 마이너스통장이 실제 주담대 한도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까. 대출금리 연 4.5%, 만기 30년, 원리금균등상환 조건을 기준으로 연봉 6000만원인 차주를 가정하면 마이너스통장이 없을 경우 최대 약 3억4300만원까지 대출이 가능하다. 하지만 5000만원 규모의 마이너스통장을 보유하면 한도는 약 1억5600만원으로 줄어들어 기존보다 약 1억8700만원 감소한다. 마이너스통장 한도가 1억원으로 늘어나면 연간 원리금 상환 부담이 DSR 한도(소득의 40%)를 대부분 차지하게 돼 추가 주담대 실행이 어려워질 수 있다.
고소득자라고 해서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는다. 연소득 1억원인 경우 마이너스통장이 없으면 약 5억7200만원까지 대출이 가능하지만, 5000만원 한도의 마이너스통장을 보유하면 한도는 약 3억8500만원으로 줄어든다. 마이너스통장 규모가 1억원일 경우 대출 가능 금액은 약 1억9800만원 수준까지 감소한다.
최근에는 카드론도 주의 대상에 포함됐다. 과거에는 일반대출로 분류돼 DSR 적용을 받지 않았지만, 정부의 '6·27 대책' 이후 신용대출로 간주되면서 규제 대상에 포함됐다. 다만 300만원 이하 소액신용대출이나 전세자금대출 등 일부 상품은 DSR 산정에서 제외된다. 전세권을 설정해 담보로 받는 전세보증금 담보대출은 DSR에 포함되는 만큼 구분이 필요하다.
이에 전문가들은 급전 마련을 위해 무심코 개설한 신용대출이 향후 자산 계획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마이너스통장은 편의성이 높지만 주담대 등 큰 규모의 대출을 계획하고 있다면 사전에 DSR이 미치는 영향을 반드시 점검해야 한다"며 "본격적인 대출 상담에 앞서 사용하지 않는 한도는 미리 정리하는 것이 대출 전략 측면에서 훨씬 유리하다"고 조언했다.
유진아 기자 gnyu4@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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