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 쏘아 올린 BTS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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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방탄소년단)는 우리에게 무엇일까. 그들은 아이돌 그룹인가, 인간문화재인가. 걸어 다니는 기업인가. 아니면 문화 외교관인가. 언젠가부터 BTS라는 이름은 기표와 기의가 전혀 다른 듯 느껴진다. 팬데믹 이전의 BTS와 지금의 BTS가 생물학적 의미만 빼면 사실상 다른 존재인 것처럼 말이다. K-팝 그룹이라는 작은 수식어에 담기엔 거대한 존재가 돼버린 BTS가 '군백기'를 마치고 돌아왔다. 그룹 활동 잠정 중단을 선언한 '방탄회식'으로 팬들에게 충격을 준 것도 벌써 4년 전의 일. 그 사이 멤버들은 각자 솔로 활동도 하고 군대도 다녀왔다. <Love Yourself> <화양연화>

끝내주는 마케팅
3월 21일에 열린 서울 광화문광장 컴백 쇼 'BTS 컴백 라이브: ARIRANG'은 또 다른 방식의 아이러니다. 시민에게 무료로 공개하는 콘서트처럼 홍보했지만 실제로 시민이나 광장은 배경 이미지 정도 외에 별로 중요하지 않은, 전 세계에서 몰려든 아미에 대한 배려도 찾아보기 어려운, 콘서트 형식의 홍보용 쇼케이스였다. 기획 자체가 일반 시민을 위한 공연이 아니라 전 세계 넷플릭스 가입자를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광장 사용 방식을 놓고 비판하는 건 별 의미 없는 일일지 모르겠다. 넷플릭스를 통해 실시간으로, 다시보기로 하루 동안 시청한 사람이 1800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하나의 계정으로 여러 명이 보기도 하고 며칠 뒤에 본 사람도 있을 테니, 실제 수치는 2~3배쯤 됐다고 할 수 있겠다. 하이브가 노린 홍보 효과만은 목표 초과 달성인 셈이다. 지하철에서 또 버스에서, 평생 BTS 노래 한 번 찾아 듣지 않을 것 같은 할머니, 할아버지들까지 BTS 광화문 공연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보면서, 소셜미디어에서 중장년 아저씨들이 진심 뜨거운 마음으로 BTS의 국위선양을 극찬하는 것을 보며, 정말 끝내주는 마케팅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신문을 멀리하는 독자 여러분은 잘 모르시겠지만, 그날 대부분의 종합일간지가 호외를 찍었다는 놀라운 사실도 'TMI'로 덧붙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BTS의 명성에 걸맞은 참신한 기획을 기대해서인지 조금 실망스러웠던 게 사실이다. 한국이란 나라보다 더 유명한 존재일 수도 있는 BTS 아닌가. K-팝 역사상 가장 화려하고 뜨거운 컴백이었고, BTS에게 쏟아진 기대와 관심도 다시 돌아오기 어려운 기회였다. 비틀스의 옥상 콘서트처럼 허를 찌르는 기획을 바란 건 너무 지나친 기대였을까. 참신하진 않더라도 많은 이가 어우러져 즐기는 축제였다면 꽤 멋진 컴백이 됐을 것이다. 26만 명이 모일 거라는 서울시의 설레발대로 광화문광장에서 서울시청 광장까지 거리를 꽉 채운 아미와 시민이 함께 축제를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면 BTS라는 국보는 더욱 근사하게 반짝거렸을 것이다. 공연 전날만 해도 정말이지, 그런 장관이 펼쳐질 것만 같았다. 평소 관광객이라곤 얼씬도 하지 않는 서울 외곽의 우리 동네에 BTS 굿즈로 쇼핑백을 가득 채운 외국인들이 눈에 띌 정도였으니까. 정부가 도왔고 서울시가 도왔으며 화창한 날씨까지 BTS의 컴백 쇼를 도왔다. 21일 이른 오후, 임시 기자실이 마련된 코리아나호텔로 향하는 길은 평소의 토요일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광화문 가까이 이르러서야 조금씩 축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보라색 옷을 입은 아미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아이들과 나들이 나온 가족들도 보였다. BTS에 별 관심은 없지만 사람 구경이나 해볼까 하고 나온 사람들도 꽤 있었던 듯하다. 핼러윈데이에 입었을 법한 괴상한 의상과 소품으로 치장하고 나온 이들도 있었다. 하이브에게 허가를 받았는지 의심스러운 굿즈로 좌판을 깐 상인들도 어김없이 등장했다. 광화문 터줏대감인 광기의 종교인들은 장날을 맞아 아미보다 더 신난 듯했다.

그룹 활동 잠정 중단을 선언한 '방탄회식'으로 팬들에게 충격을 준 것도 벌써 4년 전의 일.
그 사이 멤버들은 각자 솔로 활동도 하고 군대도 다녀왔다.

예상과 다른 온도 차
영어·중국어·일본어·프랑스어·스페인어 등 온갖 외국어를 들으며 코즈모폴리턴이 된 듯 착각을 즐긴 것도 잠시뿐, 광화문광장에 가까워지면서 분위기는 바뀌었다. 도심 한복판에서 G7 정상회의라도 열리는 것처럼 기다란 경찰 버스 차벽이 세워졌고 곳곳에 바리케이드가 보행자의 이동을 막았다. 경찰 및 안전요원이 얼마나 많은지 일반 시민과 일대일 대응도 가능해 보였다. 광화문 네거리로 향하는 길은 막혀 우회로로 돌아가야 했는데, 알고 보니 31개 출입 게이트 중 하나로 이어진 길이었다. 10분이면 도착할 목적지를 30분, 1시간씩 돌고 돌아야 했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기자들 사이에선 VIP가 BTS 공연을 보러 오려 했으나 대전 화재사고 때문에 취소했다는 소문도 돌았다. 물론 사실인지는 확인되지 않았으니 일단은 가짜 뉴스라고 해두자. 어쨌든 분명한 건 축제라기보다 난리에 가깝다는 점이었다. 공연을 1시간여 앞두고 광화문광장으로 향하는 길은 예상보다 붐비지 않았다. 26만 명이라기엔 턱없는 수준의 인파란 것만은 확실했다. 공식 관객 2만2000명을 더하더라도 4만~5만 명쯤 되지 않을까 싶었다. 벚꽃축제가 열리는 여의도 윤중로나 석촌호수보다도 확실히 밀집도가 낮았다. 그도 그럴 것이 공연을 볼 수 있는 공간이 너무 제한적이었다. 공연이 열리는 곳이지만 어쩐 일인지 관람 안내는 없고, 얼른 이동하라는 재촉만 들리고 또 들려왔다. 가벼운 마음으로 BTS 축제를 즐기러 나온 시민은 물론이고, 부푼 기대를 안고 멀리서 서울을 찾은 아미들도 광화문 일대를 몇 번씩 돌아야 하는 극기훈련을 버텨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아무리 친절한 검문이라도 두 번 이상 받으면 기분이 나빠지지 않을 도리가 없다. 예상한 것과 너무 다른 현실에 조금 당혹스럽기까지 했다. 26만 명이 빼곡히 모여 공연을 볼 것처럼 호들갑을 떨더니 정작 공연을 볼 수 있는 곳은 지정 객석과 일부 객석 옆 도로, 대형 스크린 앞 정도밖에 없었다. 안전을 위해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는 하지만 지나치게 폐쇄적인 통제였다. 애초부터 일반 시민을 위한 공연이 아니었다면 사전에 충분히 알려야 했다. 티켓 없이는 공연을 보지 못할 확률이 높으니 괜히 나와서 생고생하지 마시라고. K-팝 콘서트를 취재하러 가는 것인지, 광화문 홍보 행사를 취재하러 가는 것인지 헷갈리는 와중에 돌고 돌아 도착한 객석은 관공서 행사장을 연상시켰다. 안전을 고려해 객석 구역 사이 간격을 멀리 떨어트려놓은 탓에 휑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단연코 지금껏 가본 BTS 공연 가운데선 가장 차분했다(고 썼지만 '썰렁하다'로 읽어도 좋다). 위치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기자석 구역이 유난히 조용하다는 점을 감안해도, 영상 속의 열기만큼 뜨겁지는 않았다. 열성 팬과 일반 관객이 뒤섞여 있으니 객석 분위기가 상대적으로 미지근한 건 당연했다. 운 좋게 티켓을 구해 공연을 본 지인의 첫 반응도 "예상보다 반응이 크지 않아 놀랐다"는 말이었다. 광화문 공연 연출은 미국 슈퍼볼 하프타임 쇼 등 대형 이벤트 연출자로 유명한 해미시 해밀턴이 맡았다. 넷플릭스 측은 공연에 깜짝 놀랄 만한 요소를 몇 가지 숨겨놨다고 예고했지만, 현장의 수만 관객도 스트리밍을 지켜본 시청자 그 누구도 끝내 찾아내지 못했다. 개선문처럼 생긴 무대 위 구조물을 통해 광화문을 액자 속 그림처럼 볼 수 있게 한 의도는 좋았다. 그렇다고 제대로 구현했다고 할 순 없다. 관객을 위해서라기보다 스트리밍 중계를 위한 디자인이어서 특정 위치의 관객 외엔 의도한 그림을 볼 수 없었고, 그마저도 어둠 속에 광화문이 묻혀 한국 전통 건축 미학이 잘 드러나지 않았다. 해밀턴은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매기 강 감독에게 특훈이라도 받고 왔어야 했다.

그들의 청사진
1시간짜리 짧은 공연이었지만 BTS가 새 앨범 수록곡처럼 '2.0' 버전으로 바뀌려 한다는 점만은 또렷하게 보여줬다. 일곱 멤버는 더 이상 격렬한 '칼군무'에 에너지를 쏟지 않았다. "존재 자체만으로 무대를 장악하는 오라를 지녔기에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아티스트"(방시혁)가 됐다는 판단에서다. 방 의장은 칼군무가 BTS의 무게감과 위상에 어울리지 않는다면서 '보이 밴드'라는 틀에서 벗어나 진정한 아티스트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무대를 선보이겠다고 했다. 신곡이 발표된 지 하루밖에 지나지 않은 탓에 <아리랑> 수록곡에 대한 호응은 뜨겁지 않았다. 보이 밴드 딱지를 떼고 싶다지만, 결국 가장 호응이 좋은 곡은 보이 밴드로 정점에 이른 순간 발표한 '다이너마이트'와 '버터'였다. 대중은 BTS가 어떻게 불리든 상관하지 않는다. 노래가 듣기 좋으면 그걸로 전부다. 아미들은 팬송 '소우주(Mikrokosmos)'를 다시 들으며 감회에 젖었을 것이다. BTS는 <아리랑> 앨범과 광화문광장 컴백 쇼 그리고 월드 투어의 첫 무대인 고양종합운동장에서 'BTS 2.0'을 하나씩 구체화하고 있다. 아이돌 그룹이 아닌 얼터너티브 힙합 밴드로의 변신이랄까. K-팝 장르를 재정의하는 혁신적인 아티스트가 되겠다는 야심도 엿보인다. 한 가지 아쉬운 건 넷플릭스 다큐에서 드러나듯 BTS가 여러 목소리 사이에서 다소 머뭇거리는 듯한 모습이다. 방 의장이 꿈꾸는 길과 멤버들이 가고 싶어 하는 길, 아미가 바라는 길, 일반 대중이 원하는 길은 모두 다를 터. 어쩌면 멤버 각자가 꿈꾸는 'BTS 2.0'의 청사진도 서로 크게 다를지 모른다. <아리랑>은 의욕만 넘친 상태에서 너무 성급하게 완성한 듯한 앨범처럼 들린다. 군인에서 아티스트로 돌아오기까지 적잖은 시간이 필요했을 텐데 제대 후 쫓기듯 앨범 작업에 뛰어든 건 아닐까. 그 혼란이 넷플릭스 다큐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방 의장에 따르면 <아리랑>은 멤버들이 진정으로 추구하고 싶었던 방향을 고스란히 담아낸 앨범이고, 멤버들끼리도 '명반'으로 부른다고 한다. 전체적 완성도는 준수한 편이라 생각하지만, 불균질한 과잉의 요소가 걸리는 것도 사실이다. '두쫀쿠'처럼 금세 확신할 수 있는 맛이 아닌, 평양냉면같이 오랜 시간이 지나야 진짜 맛을 알게 될지도 모르는 'Swim'을 타이틀곡으로 결정한 건 이들이 아직 1.0과 2.0 사이 과도기에 있다는 방증이 아닌지 모르겠다. BTS는 공공재라는 말도 나오지만 결국 이 팀은 일곱 멤버만의 것이다. 'BTS 2.0'의 첫걸음은 방시혁 의장이 뗐지만, 앞으로 갈 길은 결국 멤버들 스스로 찾아야 한다. 전인미답의 길을 걸어온 그들만의 특권이다. <아리랑>이 그런 앨범이 될지는 알 수 없다. 그들에게도 쉽지 않은 실험이었을 테고 그 결과에 대해선 여전히 알쏭달쏭할 것이다. 광화문 공연에서 시작한 월드 투어의 긴 여정에서 조금씩 답을 찾길 바랄 뿐이다. 지구를 한 바퀴 돌아 세계 곳곳의 아미들과 만난 뒤 BTS는 어떤 결론을 내리게 될까. 진짜 'BTS 2.0'은 어쩌면 <아리랑>이 아닌 다음 앨범에서 시작하게 될지 모른다.
아이돌 그룹이 아닌 얼터너티브 힙합 밴드로의 변신이랄까.
K-팝 장르를 재정의하는 혁신적인 아티스트가 되겠다는 야심도 엿보인다.

Editor김종훈
Words 고경석(<한국일보> 음악 담당 기자)
Images 빅히트 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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