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구앓이? 멸종위기종앓이!
속 깊은 정서가 응축된, 애틋함을 표현하는 '앓이'는 아프다는 뜻을 갖고 있지만 따뜻하다. 누구나 한 번쯤 마음 한구석이 이유 없이 저릿해지는 '사랑앓이'를 앓아본 경험이 있지만 아프다고 내치지는 않는다. 짧은 스침이든, 오래 남는 기억이든 겉으로 드러내지 않은 채 그리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큰 짐승을 뜻하는 늑대는 한국에서는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지만 사실상 완전히 자취를 감춘 멸종 동물이다. 늑대를 구출하자 라는 '늑구'인줄 알았더니 9형제 중에 막내라서 '늑구(9)'라 한다. 바로 위 형 이름은 '늑팔'이고 그 위의 형 이름은 '늑칠'이겠지.
'늑구'는 행정이 기획해서 억지로 만든 캐릭터가 아니라 동물원 탈출 사건 중에 자연스럽게 떠오른 존재라 시민들이 더 생생하게 받아들이며 몰입하는 것 같다. 멸종위기 생물이 거론되며 국민들의 관심을 끈다는 사실 자체가 고마워 필자 또한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다.
또 다른 늑대 이야기
1800년대 미국 와이오밍주 '옐로스톤 국립공원' 주변에서 목축을 시작하면서 가축을 잡아먹는 늑대를 사냥하기 시작해 1926년에는 옐로스톤 지역에 단 한 마리 늑대도 남기지 않고 무리 전체를 멸종시켰다.
이후 70여 년 동안 회색늑대가 사라진 옐로스톤 지역은 급격히 증가한 초식동물들이 풀을 싹 뜯어먹고 관목이 자라기도 전에 묘목을 먹어치우고 이마저도 부족해지자 수목의 껍질까지 벗겨먹는 바람에 생태계가 황폐화 되었다.
최상위 포식자가 사라진 생태계가 완전히 균형이 깨졌고 1995년, 캐나다에서 잡은 14마리 늑대를 옐로스톤 국립공원에 방사하며 복원에 나섰다. 늑대들은 새로운 지역에 적응했고, 지난 35년 동안 옐로스톤 최상위 포식자 역할을 수행했다.
옐로스톤에서 방사된 늑대가 생태계 회복에 도움이 됐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늑대를 복원한 생태학자들은 옐로스톤이 회복중이며, 자연이 자가 치유할 수 있다는 근거라고 주장하지만 인간에 의해 한 번 망가진 생태계는 늑대를 다시 풀어놓는다고 급격하게 돌아오지 않는다며 반대하는 학자도 있다.
늑대가 없는 숲에서 초식동물이 왕이 된 세상은?


'모든 생명을 보호해야한다'는 멸종위기종, 생물다양성 보전을 주장하면서 총을 쏠 수도 없고 덫을 놀 수가 없다. 오랫동안 조성했던 정원과 소소하게 내 먹을 것 제공하는 채소 텃밭을 지키려 울타리를 치고, 소리를 내고, 쫓아도 그때뿐이다.
2020년 경, 한국에도 토종 늑대를 복원하자는 주장이 제기됐었다. 최상위 포식자였던 표범, 늑대, 호랑이 등이 멸종해 망가진 생태계를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사례와 같이 최상위 포식자를 도입해 그 문제를 해결하자는 주장이 있었다.
윤리만으로 버틸 수 없는 현실이므로 문득 그 때의 늑대 복원 프로젝트가 떠오른다. "이 숲에 '늑구'라는 이름을 가진 귀여운 늑대 몇 마리만 있어도" 늑대는 단순히 사냥을 하는 동물이 아니라, 생태계의 균형을 조절하는 존재다. 항상 '보이지 않는 늑대의 눈'을 의식해야 하고, 그 긴장감은 개체 수뿐 아니라 행동 방식까지 바꾸어 놓아 인간의 눈에 뜨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늑대 존재만으로도 고라니와 멧돼지는 지금처럼 아무 때나, 어느 곳에나 출몰하는 마구잡이 행동은 하지 못한다. 답답하니까 한 번 해보는 생각이지만 생물다양성을 지키는 일은 역시 생물다양성으로 견제와 균형을 맞추는 방법이 가장 좋다.
늑대를 통해 멸종위기종을 보호하자는 외침이 낯설지 않아 다행이지만 그 관심의 방향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분명한 기호가 있는 것 같다. 호랑이, 고래, 독수리 같이 크고, 눈에 잘 띄는 포유류나 조류에 관심이 집중된다. 이들 모두 당연히 보호받아야 할 소중한 생명이지만 많은 '작은 멸종위기종들'이 조용히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은 조금 아쉽다.
생태계는 결코 몇몇 대표 종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영양분을 순환시키며, 먹이그물을 지탱하는 역할을 하는 수많은 종들의 기초위에 '큰 동물'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다. 이렇게 생태적 이유가 분명하지만 작은 멸종위기종들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기 쉽다. 눈에 띄지 않고 그래서 감동적인 이야기를 만들기도 어렵고, 대중의 공감을 이끌어내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멸종위기종 늑대가 동물원을 탈출하는 순간부터 다시 동물원으로 돌아올 때까지 정서적으로, 생태적으로 부각되어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동물 행동이나 상태가 구체적으로 공유될수록 사람들은 그 생물을 더 친근하게 느끼게 되는데 이름도 한 몫을 했다. "늑구"라는 이름은 사람과 늑대 사이의 '심리적 거리'를 줄이고 친근해질 수 있는 다리였던 것 같다.
같은 멸종위기종으로 보호를 받고 있지만 아주 작은 동물들, 곤충들이 전혀 관심을 받지 못하는 차이는 '이미지'와 '이야기 거리'가 있느냐? 없느냐? 에서 갈리는 것 같다.



이미지 변신으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어떻게 사는지, 잘 살고 있는지 안부를 물어주면 멸종위기종들에겐 큰 의미가 된다. 조금 더 따뜻하게, 조금 더 가까운 언어로, 독자 여러분의 지대한 관심과 사랑을 부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