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 벗은 달성(達城), 1500년 원형 보존 이유 있었다”

김성영 영남본부 기자 2026. 4. 22.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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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석혼축과 석축 혼용해 축조, 오랜 세월 원형 보존 가능해
신라 성곽 발달 과정 연구에 중요한 발굴로 평가
고대 대구지역 선진 토목기술을 보여준 사례

(시사저널=김성영 영남본부 기자)

1500여 년 간 베일에 가려져 있던 대구 달성(達城)의 축조 방식이 마침내 밝혀졌다. 토성(土城)으로만 알려져 있던 달성은 흙과 돌을 잘 맞춰 섞은 토석혼축(土石混築)과 석축(石築) 기법을 혼용해 조성한 것으로 발굴조사 결과 나타났다. 이 같은 축조 방식은 달성이 고대 신라 때 조성돼 오랜 세월 그 원형이 잘 보존돼 온 이유이기도 하다. 이는 고대 대구지역의 뛰어난 토목기술을 보여주는 결과이자  토석혼축성에서 석축성(石築城)으로 신라 성곽이 발달해 간 과정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서의 가치를 평가받고 있다.

대구 달성 발굴을 주관하는 (재)대동문화유산연구원 관계자가 20일 달성 남측 성벽 발굴조사 결과에 대한 현장 공개 설명회를 진행하고 있다. ⓒ시사저널 김성영

대구시는 지난 20일  중구 달성 남측 성벽에 대한 정밀 발굴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발굴을 주관한 (재)대동문화유산연구원이 이날 현장 공개 설명회를 통해 밝힌 남측 성벽의 규모는 하부 너비가 35m, 외벽 높이 17m, 내벽 높이 9m 안팎이다. 대규모 방어 성벽인 치소성(治所城·한 지역을 다스리는 치소지를 보호하는 성곽)의 형태를 보여준다. 축성 시기는 성벽 기저부에서 나온 토기 조각들과 성곽 축성 기법 등으로 볼 때 5세기 중엽 전후로 추정했다. 삼국사기에서는 달성이 첨해이사금 15년(261년) 축조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축조 당시 원형을 그대로 유지한 희소성 높은 고대 성곽으로 신라 권역의 경주 월성과 비견되는 대구 세력의 위상을 보여주는 유적이다.

성벽 기저부에서 발견된 토기 조각들. 이 토기 조각 등을 통해 달성의 축성 시기를 추정하고 있다. ⓒ시사저널 김성영

달성은 그동안 토성으로만 알려져 왔지만 이번 조사로 토석혼축(흙과 돌을 용도와 위치에 맞춰 따로 혹은 섞어서 견고성을 높인 기법)과 석축 기법을 적절하게 혼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축성 과정에서 대규모 인력이 동원돼 그룹별로 작업을 분담하는 구획축조(區劃築造) 방식으로 공사가 진행된 것으로 확인됐다. 성을 쌓은 데 사용된  재료는 근처 달서천 저지대의 점토와 달성 내부 평탄 작업이나 성 바깥 해자(垓字·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 주위를 둘러서 판 구덩이) 조성 과정에서 나온 돌과 흙을 사용한 것으로 추정했다. 또 공사 임무를 나눈 구획마다 작업자별로 재료를 각각 조달해 사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달성 남측 성벽 상부에서 성 안쪽을 내려다본 모습 ⓒ시사저널 김성영

축성 과정에서 고대 대구지역의 선진화된 토목기술의 흔적도 나왔다. 먼저 암반층을 정지하고 일정 높이까지 흙과 돌을 번갈아 평평하게 다져 쌓았다. 성벽 바깥 면에는 납작하게 깬 돌을 비스듬하게 층층이 겹쳐 쌓은 다음 그 표면에 약 40cm 두께로 점토를 두텁게 다져서 마감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때 축조기술은 L자 모양으로 절토한 면에서 층층이 경사지게 석축해 밀림을 방지하고 하중을 분산하는 효과를 내는 방식을 적용했다.

발굴조사 관계자가 달성 남측 성벽 바깥쪽에서 성벽 축조 방식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시사저널 김성영

특히 점토를 담아 이동했던 토낭(풀로 만든 흙주머니)을 축성 과정에 사용해 돌과 흙이 견고하게 결합되도록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축조 기술은 삼국시대 대규모 토목공사에 해당하는 저수지나 하천의 제방, 대형 고분군 등에서 많이 볼 수 있다. 또 인근 달성 성산토성과 대구 팔거산성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달성과 성산토성은 토석혼축성이고 팔거산성은 석축성이란 점을 보면 이번 발굴은 5세기 무렵 토석혼축성에서 석축성으로 변화하는 신라 성곽의 발달 추이와 축성에 적용된 고대 토목기술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발굴팀은 기대하고 있다.

이번 발굴조사에서는 달성이 고려에서 조선시대에 걸쳐 개보수된 흔적들도 발견됐다. '경상도속찬지리지'에는 고려 공양왕 2년(1390)에 돌로 쌓았다 하고, '여지도서'에는 선조 29년(1596) 달성에 감영(監營)을 설치하고 석축을 더 쌓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기록들은 삼국시대부터 대구의 치소성으로 이용해 오던 달성이 부분적으로 무너져 제 기능을 하지 못하자 돌을 쌓아 개보수해 방어기능을 되살려 이용했다는 내용이다. 이와 관련된 석축 흔적은 성벽 상부에 일부 남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돌을 수직에 가깝게 여러 단 쌓아 올리며 뒤쪽에는 돌과 흙을 혼합해 다진 흔적들이 발견됐다.

달성 남측 성벽 상부 모습 ⓒ시사저널 김성영

대구시는 이번 발굴조사가 달성을 대상으로 한 최초의 정식 조사란 점에서 의미가 큰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조사는 국가유산청의 국비 지원을 받아 (재)대동문화유산연구원 주관으로 지난해 5월부터 실시해 왔다. 총 사업비는 9억원(국비 6억3000만원·시비 2억7000만원)으로 이달 말까지 발굴조사가 진행된다. 시는 이번 달성 남측 성벽과 함께 북측 성벽에 대한 발굴도 진행해 오는 11월경 학술발표회를 열 계획이다. 또 내년 4월부터는 신사터에 대한 발굴조사를 진행하고, 같은 해 12월 대구대공원이 조성되면 2028년부터 달성 내 동물사 철거 등 본격적인 달성 복원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대구시 관계자는 "이번 발굴조사로 달성의 축성 시기와 구조를 고고학적으로 규명한 성과를 얻었다"며 "지속적인 조사와 연구를 통해 대구의 역사적 정체성을 보여주는 문화유산으로 보존·활용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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