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왜 美 못 믿나… '기만' 의심 속 강경 군부 목소리 커져

이정혁 2026. 4. 22.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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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은 미국의 일방적 휴전 선언을 두고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일관되지 못한 미국의 입장 탓에 협상에 임할 수 없다는 것이 이란의 공식적인 입장이지만, 이란 내부에서도 협상파와 강경파의 의견이 크게 갈려 통일된 메시지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관측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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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휴전 위반 주장하며 의심의 눈초리
강경파 혁명수비대가 정국 주도권 쥐며
"협상 전 美가 봉쇄 해제" 강력 주장한 듯
21일 이란 테헤란 엥겔랍 광장에 게양된 이란 국기 뒤편으로 이란군이 운용하는 코람샤흐르-4 미사일이 전시돼 있다. 테헤란=UPI 연합뉴스

이란이 미국과의 2차 종전 협상에 참여하지 않은 배경을 놓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를 신뢰하지 못하는 이란의 깊은 불신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다. 이란 내부에서 협상파와 강경파의 의견이 크게 통일된 메시지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연장 요구 안 했다"… 기만전술 주장

이란 반관영 타스님통신은 22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2차 종전 협상이 결렬된 직후 휴전 연장을 선언한 것을 놓고 "이란은 (휴전) 연장을 요구한 적이 없다"며 "휴전 연장을 포함한 트럼프의 모든 행위가 '기만'일 가능성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첫 임기인 2018년 당시 포괄적공동행동계획(이란 핵 합의·JCPOA)을 단순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일방적으로 뒤집었고, 양측이 협상을 벌이던 도중 기습 공격을 가해 이번 전쟁을 시작하는 등 여러 차례 이란의 뒤통수를 쳐 왔다. 앞서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은 20일 이샤크 다르 파키스탄 외무장관과의 통화에서 "미국의 도발적 행동과 지속적인 휴전 위반행위, 그리고 이란에 대한 모순된 입장이 외교 과정을 가로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에 일방적인 휴전 선언을 한 것도 이란을 공격하려는 기만전술의 일환이라는 주장이다.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이란 의회 의장의 고문 마흐디 모하마디는 이날 엑스(X)에 "트럼프의 휴전 연장은 분명 기습 타격을 위한 시간 벌기용 책략"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따라 이란은 향후 미국의 공격이 재개될 경우 즉각적인 보복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란군과 이슬람혁명수비대를 통합 지휘하는 하탐 알안비야 중앙군사본부의 에브라힘 졸파가리 대변인은 타스님에 "이란을 상대로 한 공격이나 어떤 행동이 벌어진다면 미국과 이스라엘에 다시 따끔한 맛을 보여주겠다"고 경고했다. 혁명수비대도 성명을 통해 "지역 내 적의 잔여 자산에 대한 압도적이고 상상할 수 없는 타격을 가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미국을 향한 이란의 불신 탓에 이란은 종전 협상에서 포괄적인 합의보다는 점진적인 대화와 이행을 선호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서로의 요구 사안을 조금씩 실천으로 이행하며 합의를 좁혀 나가길 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우라늄 농축을 포함한 ‘그랜드바겐(grand bargain·포괄적 합의)’을 이란에 요구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7일 대통령전용기 에어포스원 기내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이란 고위층, 강경파·협상파 사이 내분

이란 내부의 강경파와 협상파 간 내분 탓에 통일된 메시지를 내지 못한 점도 이란 협상팀이 2차 협상에 참석하지 않은 배경으로 꼽힌다. 미국 싱크탱크 전쟁연구소(ISW)는 21일 공개한 미국·이란 전쟁 전황 보고서를 통해 "회담 참석을 원하는 갈리바프 의장과 협상 전 미국의 봉쇄 해제를 주장하는 혁명수비대 사령관 아흐마드 바하디 소장 사이에 권력 다툼이 있었다"고 짚었다. 바하디 사령관은 잠행 중인 모즈타바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와 직접 소통하는 유일한 고위 관료로 언급되던 인물이다.

이란의 실권이 미국과의 협상을 반대하는 강경파 혁명수비대에 넘어간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도 나온다. ISW는 "이란 정권이 (미국의 봉쇄 해제 전 협상에 나설 수 없다는) 혁명수비대 측 입장을 수용했다는 점은 바하디 소장과 혁명수비대가 이란의 의사결정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이란 언론들은 혁명수비대가 중시하는 미국의 대이란 해상봉쇄 해제 여부가 향후 이란의 협상 참여를 결정지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한 남성이 15일 이란 테헤란의 한 길가에 내걸린 모즈타파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와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이란 전 최고지도자 사진 앞을 걸어가고 있다. 테헤란=AFP 연합뉴스

이란은 2차 종전 협상 결렬 직후 더욱 강공 드라이브를 걸었다. 영국 해사무역기구(UKMTO)에 따르면 이란군은 22일 오만 인근 해상에서 화물선 세 척을 공격했다. 혁명수비대 해군은 이날 성명을 통해 "호르무즈해협에서 규정을 위반한 선박 2척을 나포했다"고 발표했다. 선박들이 이란군의 허가를 받지 않고 호르무즈해협을 몰래 빠져나가려 해 서류 및 관련 조사를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전략적 수로인 호르무즈해협의 통과와 관련해 이란이 선포한 법 집행을 방해하거나 안전 통항에 반하는 모든 행위를 지속적으로 감시해 위반 시 단호하고 법적인 조치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호르무즈해협 봉쇄를 이어나가기 위한 제도적 장치도 마련하고 나섰다. 이란 국영 프레스TV에 따르면 이란 의회는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의 종류와 항로를 규제하는 법안을 본회의에 상정하기로 했다. 해협 통과 선박에 환경·보안 서비스료 명목의 통행료를 부과하고, 적대국가 선박의 통행을 막는 것이 골자다.

이정혁 기자 dinne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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