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이동수단 넘어 ‘전력 자산’으로...현대차 “V2G 상용화 위한 제도 개선 시급”
V2G, 재생에너지 활용 및 전력망 안정화 기여
현대차, 제주서 전기차 활용 충전 인프라 실증

중동 전쟁에 따른 고유가로 전기차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가운데 전기차를 단순 이동수단을 넘어 전력 자산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현대차(005380)그룹은 전기차를 분산 에너지 자원으로 규정하는 등 제도 설계 작업의 속도를 높여야 한다고 제언했다.
22일 완성차 업계 등에 따르면 우리나라를 비롯해 영국, 미국, 일본, 네덜란드 등에서 전기차를 에너지 시스템의 핵심 인프라로 구축하려는 시도가 본격화하고 있다.
이는 전기차 배터리와 전력망을 연결해 양방향으로 전력을 주고받는 ‘차량·사물 간 양방향 송전(V2G)’ 기술을 기반으로 한다. 전력 수요가 낮은 심야 시간대에는 충전을, 전력 수요가 집중되는 피크 시간대에는 차량 배터리 내 전력을 전력망에 공급하는 방식이다. 전력 수요·공급 대응과 에너지 효율을 높일 수 있고, 차주는 충전요금 감면 혜택 및 수익 창출 등 인센티브를 제공받게 된다.
V2G 기술은 배터리 양방향 충·방전과 전력 제어·통신 기능을 탑재한 전기차에서 구현이 가능하다. 특히 제주 등 기후와 시간대에 따라 발전량이 크게 변하는 태양광 및 풍력 등 재생 에너지 비중이 큰 지역에서는 V2G 기술을 적용한 전기차가 재생에너지 활용성을 높이고, 전력망 안정화에 기여하는 대안으로 떠오른다.
주요 에너지 선진국은 전기차를 활용한 V2G 기술 상용화에 이미 뛰어든 상태다.
영국은 전용 서비스 출시 등 간편화된 절차를 통해 전기차 소유주들의 진입 장벽을 크게 낮추며 V2G 서비스 상용화에 가장 앞선 것으로 평가받는다. 지난해 영국 에너지 기업 ‘옥토퍼스 에너지’가 출시한 첫 상업용 V2G 패키지는 전기차 리스, V2G 충전기 설치, 요금제를 하나로 묶어 차주는 별도의 전력 판매 등 복잡한 거래 과정 없이 차량을 충전기에 연결하는 것만으로 V2G 서비스에 참여할 수 있다. 전기차를 V2G 충전기에 일정 시간 이상 연결하는 경우 차량 충전 요금을 전액 감면해주는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네덜란드는 전기차와 V2G 충전소, 지역 태양광 시스템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유럽 첫 대규모 도시 단위 V2G 실증 모델인 ‘위트레흐트 에너자이즈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위트레흐트는 네덜란드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로 35%의 건물에 태양광 패널이 설치돼 있어 낮 시간대 전력 과잉 생산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V2G 기술을 적용한 전기차들은 이같은 잉여 전력을 배터리에 저장했다가 필요시 전력망에 공급하는 방식으로 재생 에너지의 불균형을 보완한다.
재난·재해로 전력망 피해가 잦은 미국 및 일본 등 국가에서도 관련 기술을 도입하고 있다. 산불과 폭염, 노후화된 전력 인프라로 정전 위험이 상시화된 미국 캘리포니아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주 공공유틸리티위원회(CPUC)는 전기차를 지역 전력망과 연계해 정전 상황에서 얼마나 신속하게 전력을 복구할 수 있는지 검증하고 있다. 2035년 약 1400만대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는 전기차를 모두 활용하면 지역 내 모든 가정에 3일 동안 끊기지 않고 전기를 공급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일본은 2011년 160조원가량의 막대한 피해를 야기한 동일본 대지진 이후 V2G 기술 활용 필요성이 본격 대두됐다. 2024년 이시카와현 노토 지진 당시 피해 지역에 전기차를 투입해 일반 가정을 비롯해 피난소 및 병원에 비상 전력을 공급한 바 있다. 일본 정부의 구매 보조금 평가 기준에도 전기차를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지방 정부와 재난 협력 협정을 체결하는 조치가 포함돼 있다.
국내에서는 현대차그룹이 V2G 생태계 조성 및 기술 검증을 위한 실증 서비스를 진행 중이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12월부터 제주도에서 아이오닉 9과 EV9 등 전기차 55대를 활용해 충전 인프라와 전력망 연계 안정성 등을 확인하고 있다. 제주도는 전기차 배터리를 활용한 잉여 전력의 저장 및 공급 등 V2G 기술 적용을 위한 최적의 환경을 갖춘 곳으로 평가받는다.
정부를 중심으로 상용화를 위한 제도 정비도 진행 중이다. 기후에너지환경부 주도로 출범한 ‘V2G 민·관 협의체’는 요금제와 정산·보상 방식, 법령 개선, 기술 표준 등을 포괄하는 중장기 로드맵을 논의하고 있다.
현행 제도상 전기차는 전력시장 참여 주체나 ‘분산 에너지 자원’으로 명확히 규정돼 있지 않다. 전력을 전력망에 공급하더라도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할 법적 근거가 부족한 상황이다. 누가 전력 거래에 참여할 수 있는지, 전력 공급 대가는 어떻게 산정할 것인지에 대한 기준 마련도 과제로 남아있다. 김성환 기후부 장관은 지난달 제주 대통령 타운홀 미팅에서 7대 혁신 프로젝트 중 하나로 ‘V2G 확대’를 꼽으며 전기차 배터리 등을 포함한 ESS를 재생 에너지를 보완할 핵심 에너지원으로 규정하고 과감하고 신속한 변화를 약속한 바 있다. 현대차는 “시범 서비스와 병행해 제도 설계 구체화 작업의 속도를 높여야 국내에서 V2G 상용화가 탄력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며 “V2G가 상용화되면 전기차 전환 가속화는 물론, 국가 차원의 에너지 전략 자산 확충의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유민환 기자 yoogiza@sedaily.com
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단독] “저출생 바닥 찍었나”...출생아수 30만명 회복 눈앞
- BTS ‘더 시티’, 숭례문 찾은 외국인 비중 73%…서울 관광 급증
- “이러다 삼성 흔들린다”...외신들도 경고한 삼성 역대급 위기
- “내 세금 어디다 썼어?” 공교육비 2.5배 늘렸는데 학업성취도는 ‘역주행’
- ‘1900억 부당이득’ 방시혁 구속 기로…“자본시장 교란”
- 한 달 새 ‘500억→9000억’ 폭발…미국 주식 던진 개미들 ‘우르르’ 몰린 계좌는
- 靑 “李 대통령 집요함+韓 기업 역량”…‘한국-인도 달라진다’
- 저무는 연탄 시대…연탄값, 이르면 다음 달부터 ‘100원’ 인상
- ‘호박’ 팔아 무려 45억원 벌고서는 “세금은 못 내겠다”…법원 판단은
- AI 때문에 다 잘리는 줄 알았는데…“실제 사라지는 일자리는 10%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