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딥-딥 스폿(K-백화점 부활 스토리)] 불황 뚫은 ‘백화점 전성시대’…다시 열린 성장판의 비밀
2022년 합산 매출 8조원대 안착, 성장세 지속
일등공신 ‘명품’, 신성장동력 ‘외국인 관광객’
팝업스토어·초대형 식품관, 오프라인 경쟁력
美·日 고전 속 韓 백화점 3사 해외 영토 확장

불황의 직격탄을 맞은 국내 유통업계에서 조용히 미소짓는 곳이 있다. 고물가·고환율에도 흔들림 없이 매년 우상향 실적 그래프를 그리는 백화점들이다. 상징적인 지표인 ‘연간 거래액 1조원’을 돌파한 점포도 늘었다. 달성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매년 단축되고 있다.
국내 백화점 업계의 시초가 된 일본에서는 매년 문을 닫는 점포가 늘어나고 있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한국 백화점들은 어떻게 다시 전성기를 되찾았을까.
사드 위기 이어 코로나…위기의 2020년
국내 백화점 업계가 항상 순탄했던 건 아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등장한 2020년은 업계에 전례 없는 위기감을 안겼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사태 이후 한한령으로 한 차례 타격을 입은 직후였다. 한한령이 완화될 것이란 기대감도 잠시, 큰손인 중국인을 비롯한 해외 관광객의 발이 묶였다.
위기는 1월 말 국내 첫 확진자 발생을 시작으로 본격화했다. 백화점을 비롯한 전국 오프라인 유통업계에서 ‘셧다운’ 사례가 속출했다. 확진자가 다녀간 곳은 방역을 위해 임시 휴업이 불가피했다. 롯데백화점 명동 본점은 그해 2월 초 국내 23번째 확진자의 동선에 포함된 사실이 알려지며 사흘간 영업을 중단했다. 롯데백화점 본점이 개점한 이래 41년 만에 처음이었다. 당시 백화점 업계는 임시휴업일(2월10일)을 정하고 대대적인 방역 작업에 나서기도 했다.
코로나19 확산세가 가팔라지며 백화점 명품관에 줄을 섰던 고객들은 사라졌다. 주차장도 텅 비었다. 가장 큰 문제는 백화점을 비롯한 다중시설 기피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같은 시기 매출이 치솟은 이커머스와 반대로 백화점들의 매출은 급락했다. 그해 롯데쇼핑의 백화점 부문 매출은 전년 대비 15.2% 하락한 2조6551원을 기록했다. 현대백화점은 9.5% 내린 1조7522억원, 신세계는 6.7% 하락한 1조6362억원으로 집계됐다. 3사의 합산 매출은 13% 감소한 4조4074억원으로 내려앉았다.
기회가 된 ‘보복 소비’…일등공신 된 명품
혼란은 잠시, 반전이 찾아왔다. 억눌렸던 소비 심리가 이듬해 ‘보복’의 형태로 나타나면서다. 특히 백화점의 오랜 파트너였던 명품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고소득·중장년층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명품의 소비층이 빠르게 확대되면서 백화점 성장의 견인차 역할이 본격화됐다.
백화점 3사의 명품 매출 신장률은 두 자릿수를 기록했다. 롯데백화점은 2021년 35%, 2022년 25%로 각각 나타났다. 현대백화점은 2021년 38.4%, 2022년 22.3%를 각각 기록했다. 신세계백화점도 2021년 44.2%, 2022년 22.8%의 성장을 보였다. 이 시기 백화점에서는 명품 구매 고객이 급증하면서 ‘VIP 인플레이션 현상’까지 발생했다. 3억원 안팎으로 알려진 백화점 VIP의 연간 구매기준액이 고공행진하게 된 결정적 시기이기도 하다.
매출도 뛰었다. 롯데쇼핑의 백화점 부문은 2021년 8.7% 증가한 2조888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현대백화점은 20.1% 늘어난 2조1050억원을 기록했다. 신세계백화점 매출도 23.2% 증가한 2조163억원으로 나타났다. 3사의 합산 매출은 전년 대비 무려 59% 이상 증가한 7조94억원까지 올랐다. 2022년에도 15.8% 성장하면서 합산 매출 8조원대에 안착했다.
명품은 여전히 백화점 성장의 중요한 축을 맡고 있다. 1년에도 여러 차례 가격을 올리는, 이른바 ‘N차 인상’은 백화점의 이익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명품 가격이 올라가면 백화점의 총 거래액도 그만큼 늘어난다”며 “계약상 정해져 있는 수수료의 볼륨도 더 늘어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글로벌 명품사들은 올해 들어서도 이미 여러 차례 가격 인상을 결정했다. 그럼에도 명품 소비는 꺾일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3사의 올해 1분기 명품 매출을 살펴보면 롯데백화점과 현대백화점은 각 30%, 신세계백화점은 29.8%를 각기 기록했다. 업계 관계자는 “중간 지대의 평균 소비가 실종되면서 경기 불황에 타격받지 않는 민감도가 낮은 사람들만 돈을 쓰는 양극화 시대가 온 것”이라며 “명품이 많은 백화점이 유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신세계백화점의 최근 5년간 성장세는 명품과 백화점의 ‘윈윈’ 전략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예시다. 신세계백화점의 백화점 부문 매출은 2020년 1조6362억원에서 2025년 2조6611억원으로 62.6% 급등했다. 신세계백화점은 글로벌 3대 명품으로 불리는 ‘에루샤(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가 동시 입점된 국내 백화점 7곳 중 가장 많은 4곳을 운영하고 있다.

이색 팝업·초대형 식품관…끝없는 변신
백화점 업계가 명품에만 의존한 건 아니다. 침체된 오프라인 소비를 되살리기 위한 노력도 있었다. 특히 2021년은 코로나19 확진자가 속출하는 가운데 주요 3사가 동시다발적으로 새로운 점포를 오픈했던 해로 기억된다. 그해 2월에 문을 연 더현대 서울은 “백화점 팝업스토어의 역사를 새로 썼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이돌과 애니메이션 등 온라인에서 폐쇄적인 방식으로 소비됐던 ‘비주류’ 팬덤 문화를 여의도 한복판으로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더현대 서울 오픈 열흘간 누적 방문객은 200만명에 달했다. 동시간대 입장 제한 등 코로나19 방역당국이 골머리를 앓기도 했다.
8월 초에는 롯데백화점 동탄점이 당시 경기도 최대 규모로 문을 열었다. 특히 전체 영업 면적의 약 27.7%를 식음료(F&B)에 할애하는 파격적인 행보로 주목받았다. 8월 말에는 쇼핑과 문화·예술, 과학을 접목한 대전신세계 아트앤사이언스점이 오픈했다. 대전 지역에서 20년 만에 새로 연 백화점이자, 총 지하 3층~지상 43층의 중부 지역 최대 규모였다. 아트앤사이언스점은 지난해 말 중부권 최초로 누적 거래액 1조원을 달성했다.
이후에도 백화점 업계는 팝업과 식품관을 중심으로 치열한 경쟁을 이어가고 있다. ‘백화점 최대 규모 식품관’ 타이틀은 더현대 서울(1만4820㎡), 롯데백화점 동탄점(1만8900㎡)을 거쳐 현재 신세계백화점 강남점(1만9800㎡)으로 넘어갔다. 팝업스토어 테마도 게임과 캐릭터로 확대되고 있다. 롯데백화점에 따르면 잠실 롯데타운에서는 연간 400회가 넘는 팝업스토어가 열린다.
한 업계 관계자는 “2021년부터 팝업스토어와 F&B에 대한 업계의 관심이 커지면서 매장 구성에 본격적으로 반영되기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코로나에 적응한 사람들이 조금씩 외부 활동을 다시 시작하면서 수요가 커지던 시기였고, 백화점으로선 재도약을 준비했던 시기”라고 말했다.
이 같은 노력으로 연간 거래액이 1조원을 돌파한 백화점은 지난해 기준 13곳까지 늘었다. 신세계 강남점과 롯데 잠실점은 각각 3조원대 연간 거래액을 기록했다. 신세계 강남점은 3년 연속, 롯데 잠실점은 2년 연속이다. 신세계 센텀시티점, 롯데 본점, 현대 판교점은 2조원대 거래액을 달성했다. 1조원대에는 ▷롯데백화점 부산본점 ▷현대백화점 무역점·본점·더현대서울 ▷신세계백화점 대구점·본점·아트앤사이언스 ▷갤러리아 명품관이 이름을 올렸다.
새 동력된 외국인 관광객…올해 1조 거래액 목표
물밀듯 쏟아지는 외국인 관광객은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떠올랐다. 지난해 ‘케이팝 데몬 헌터스’ 등 K-콘텐츠 흥행에 힘입어 한국을 찾은 관광객은 역대 최대 규모인 1894만명 이상으로 나타났다. 주요 상권에 자리 잡은 백화점 점포들이 외국인들의 필수 관광 코스로 자리매김했다.
롯데백화점은 지난해 순매출 3조3394억원 가운데 외국인 거래액이 7348억원에 달했다. 명동 본점은 외국인 매출 비중이 25%까지 올랐다. 현대백화점은 지난해 백화점 사업부문 매출 2조4377억원 가운데 외국인 매출이 7000억원대를 기록했다. 신세계백화점은 백화점 사업 매출 2조6747억원 가운데 외국인 매출이 6500억원을 차지했다.
올해 주요사들은 외국인 거래액만 1조원에 달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롯데백화점의 올해 1분기 외국인 매출 신장률은 전년 동기 대비 100% 늘었고, 현대백화점은 같은 기간 121% 증가했다. 신세계백화점은 89%를 기록했다.
외국인 관광객들의 반복 구매를 유도하기 위한 ‘락 인(Lock-in)’ 전략도 강화하고 있다. 롯데백화점은 지난해 12월 본점을 찾는 외국인 전용 멤버십 카드를 론칭했다. 현대백화점은 투어형 프로모션을 연달아 전개하고 있다. 지난 1~2월 인천공항공사와 한국방문의해위원회, 팔도와 4자 협력으로 실시한 ‘K-컬처 환승투어’가 대표적이다.
신세계백화점은 외국인 관광객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중국인을 겨냥해 중국 3대 메이저 간편결제 서비스인 유니온페이·위챗페이·알리페이, 중국 농업은행·상하이 푸동발전은행·초상은행과 협업을 강화했다.
美·日 백화점 폐점 속…해외 향하는 K-백화점
도쿄 시부야에서 58년간 영업해 온 세이부백화점은 지난해 9월 문을 닫았다. 작년 2월에는 나고야의 메이테쓰백화점 본점이 71년 만에 폐점했다. 2023년에는 도쿄백화점 시부야 본점이 영업을 종료했다.
일본백화점협회에 따르면 2008년 7조3813억엔이었던 전국 매출은 2025년 5조6754억엔으로 감소했다. 전국에서 가장 매출이 높은 도쿄마저 같은 기간 1조8335억엔에서 1조6806억원으로 줄었다. 전국 매장수는 280개에서 176개까지 감소했다.
미국에서는 올해 1월 고급 백화점 체인인 삭스피프스애비뉴와 니만마커스의 모회사 삭스 글로벌이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온라인 쇼핑 확산 등으로 고전하던 두 백화점 업체는 시너지 효과를 위해 손을 잡았지만, 인수·합병 이후 고전을 거듭하다 1억달러 규모의 부채 이자를 상환하지 못할 정도로 자금 사정이 나빠졌다. 35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캐나다 백화점 업체 허드슨베이도 지난해 파산 절차에 들어갔다.
해외 백화점 업계가 고전을 면치 못하는 가운데 국내 백화점 업체들은 바다 건너 진출을 시도하고 있다. 롯데백화점은 2013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롯데몰을 낸 데 이어 베트남에 롯데백화점 하노이점(2014년)과 호치민점(2015년)을 연달아 선보였다. 이후 2023년에는 ‘베트남판 잠실 롯데타운’으로 불리는 롯데몰 웨스트레이크 하노이점을 열었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롯데몰 하노이점은 올해 말까지 누적 매출 1조원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백화점과 신세계백화점은 팝업스토어를 가교로 해외 소비자들과 접점을 늘리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일본 도쿄 파르코 시부야점 4층에서 지난해 9월부터 ‘더현대 글로벌’의 정규 매장을 운영 중이다. 대만 신광미츠코시 백화점 신이 플레이스 A11점에서도 국내 백화점 업계 최초로 팝업스토어를 선보였다. 올해는 도쿄의 대표적인 쇼핑거리 오모테산도에서 약 200평 규모의 플래그십 스토어를 오픈할 계획이다.
신세계백화점도 해외 진출 플랫폼인 ‘하이퍼그라운드’를 통해 일본 도큐그룹과 손을 잡았다. 지난해 시부야 중심가의 랜드마크 쇼핑몰 시부야109에서 팝업스토어를 진행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백화점의 원조인 일본 현지에서까지 집객 효과를 위해 한국 백화점과 손을 잡고 있다”며 “국내 백화점이 내수 산업의 틀을 깨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는 노력 중 하나”라고 말했다.
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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