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명에 필요한 모든 것 위조…‘사기의 씨앗’ 그렇게 싹트고 있었다 [사기공화국의 민낯]

정주원 2026. 4. 22. 11:14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사기범죄 악용되는 ‘문서위조’ 실태
대학 졸업증명부터 신분증·운전면허 등
“원본 100% 동일” SNS엔 홍보글 넘쳐나
노쇼사기·허위입학·취업 등 범죄 악용
외국인 유학생 등 대학가에 파고들어
허위서류 적발…제적·강제출국 잇따라
‘점조직 네트워크’ 이용자만 처벌 한계
위조 졸업증명서가 거래되는 모습. [챗 GPT를 이용해 제작]

“재학증명서는 15만원입니다. 정보만 주시면 2시간 안에 드려요.”

지난 16일 헤럴드경제 취재진이 텔레그램 메신저를 통해 접촉한 익명의 위조 대행업자는 상담을 시작하고 10분도 되지 않아 가격표를 내밀었다. 이름과 생년월일·학교·학년만 보내면 된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단순 문의로 시작된 대화는 빠르게 거래 직전까지 이어졌다. “국내냐 해외냐에 따라 가격이 다르다”는 말과 함께 구체적인 금액이 제시됐고 결제는 상품권이나 가상화폐를 권했다. 상대는 “계좌 거래를 하면 고객도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고 경계했다.

거래를 망설이자 반응은 더 빨라졌다. “이쪽도 사기행위 많으니 조심하라”는 말이 돌아왔고, 다른 업체를 알아보겠다며 대화를 마치자 여러 차례 연락이 이어졌다. 불법 거래를 제안하면서도 경쟁 업체의 사기를 경고하고 손님을 붙잡기 위해 재차 접촉하는 모습이었다.

SNS와 폐쇄형 메신저 기반의 공문서위조 시장은 이렇게 ‘상담→거래→압박’ 흐름으로 작동했다. 제작·유통·결제까지 분업화된 ‘위조 네트워크’가 형성된 모습이다.

경찰청 형사사법포털 범죄통계시스템에 따르면 공문서위조 피의자는 2021년 453명, 2022년 463명에서 2023년 817명으로 급증한 뒤 2024년에도 672명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외국인 피의자도 2023년 50명, 2024년 34명으로 집계됐다.

경찰은 위조의 세계는 집계된 숫자보다 훨씬 크다고 보고 있다. 경찰청 관계자는 “노쇼 사기나 기관 사칭 등 대부분의 사기 범죄에서 위조 신분증과 문서가 기본적으로 사용된다”며 “사기 범죄가 늘어나는 구조기 때문에 위조도 함께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원본과 동일” 2시간 만에 찍어내는 위조 시장

취재팀이 SNS를 활용해 접촉한 업체들은 하나같이 ‘원본과 100% 동일 제작’을 내세웠다. 위조 대상은 공문서, 사문서를 막론한다.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자격증 ▷외국인등록증 ▷졸업증명서 ▷성적증명서 ▷국민연금 가입증명서는 기본이고 심지어 가족관계·범죄경력 증명서, 은행 대출 서류까지 가능하다고 홍보했다. 사실상 모든 ‘증명할 수 있는 것’이 불법 거래의 대상인 것이다.

취재진과 증명서 위조 업체가 텔레그램을 통해 나눈 대화 내용의 일부. [텔레그램 캡처]

거래 방식은 비교적 단순했다. 원본 파일이나 사진을 보내면 동일한 형식으로 재구성해 PDF 파일로 전달하거나 실물 형태로 제작해 직접 업체 직원이 전달하는 방식이다. 일부 업체는 “불법이라 택배나 퀵 서비스는 못 쓴다”며 대면 전달 방식만을 고집했다.

의뢰에 따른 비용은 국내 대학 졸업증명서는 30만원, 해외 대학은 50만원부터 시작했다. 입금내역을 바꾸는 식의 금융 관련 서류나 자료를 만지는 일은 작업비용이 그보다 더 높게 형성됐다.

흥정 과정도 노골적이었다. 가격을 낮춰달라고 하자 “최저 단가가 그 정도”라며 선을 긋다가도 거래가 지연되면 “더 싸게 해주는 곳은 사기일 수 있다”, “싸다고 다 좋은 게 아니다”라며 다시 설득에 나섰다. 실제로 “요즘 이런 의뢰가 많다”거나 “사장이랑 직접 통화하라”며 거래를 어떻게든 성사하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국민연금 가입증명서를 제작해 준다는 한 업체는 “회사 제출용이면 사업자명만 알면 된다”며 가격을 40만원에서 30만원까지 에누리했다. 해당 업체는 “이 시장에도 사기가 많다”며 선입금 후 잠적 사례를 경고하기도 했다.

문제는 이 과정이 하나의 ‘산업’처럼 돌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광고·상담·제작·전달이 역할별로 나뉘어있고, 결제는 추적이 어려운 상품권이나 가상자산으로 이뤄진다.

관련 수사 경험이 있는 한 경찰 관계자는 “이런 사건은 초기에 피해 진술만 확보하고 지방청으로 넘기는 구조라 현장에서는 전체 범행 방식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며 “네트워크 형태라 중앙 단위에서 묶어 보지 않으면 실체를 파악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일선에서는 단편적인 피해만 처리하는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 구조 자체를 끊기가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선배가 먼저 연락” 유학생 사회 파고든 위조 유혹

이 같은 위조 네트워크는 대학가, 특히 외국인 유학생 사회로도 빠르게 스며들고 있다. 최근 유학생 커뮤니티에는 한국어능력시험(TOPIK) 성적표 위조나 대리시험 관련 경고 글이 잇따르고 있다.

일부 게시물에는 “위조 성적 제출 시 퇴학뿐 아니라 형사처벌까지 가능하다”, “공식 사이트 조회로 대부분 적발된다”는 안내가 포함돼 있다. 실제로 한국 대학에서 위조된 TOPIK 성적표를 제출했다가 적발돼 제적되고 출국 조치까지 내려진 사례도 공유되고 있다.

서울의 한 대학에 다니는 중국인 유학생 A씨는 “이런 불법 행위 광고에 굉장히 쉽게 노출된다”고 말했다.

그는 “SNS 알고리즘이 유학생, 특히 입학을 준비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광고를 보여준다”며 “업자들이 선배라고 접근해 친분을 쌓은 뒤 ‘나도 이렇게 해결했다’는 식으로 설득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위챗 단체방 같은 곳에 몰래 들어와 홍보를 하기도 한다”며 “시험이나 입학 때문에 불안한 학생일수록 이런 제안에 흔들릴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유학생 비중이 높은 대학일수록 각종 자료를 검증해야 하는 부담이 커진다. 최근 중국인 유학생들이 허위 졸업장으로 입학한 사실이 드러난 호남대학교 측은 “현재 관련 사안이 조사 중이라 구체적인 입장을 밝히기 어렵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이면서도 “사안을 인지하고 조사에 협조하고 있다”며 결과에 따라 대응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분위기다.

처벌은 개인, 구조는 그대로…반복되는 위조 범죄

전문가들은 위조문서 이용이 단순 편법이 아니라 ‘연쇄적 범죄’로 이어진다고 지적한다. 고윤기 로펌고우 변호사는 “외국 대학 졸업장 등은 공문서가 아닌 경우 사문서위조로 평가될 수 있지만 이를 입학이나 비자 심사에 사용하면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나 업무방해가 추가로 성립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고 변호사는 이어 “특히 외국인의 경우 형사처벌에 그치지 않고 강제퇴거와 입국 금지로 이어질 수 있다”며 “한 번의 위조가 학업과 체류 자격을 모두 잃게 만드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황석진 동국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보다 구조적인 문제를 짚었다. 그는 “문제는 개인이 아니라 이를 둘러싼 브로커 네트워크”라며 “광고·알선·제작·전달까지 역할이 분리된 구조에서는 이용자만 처벌해선 재발을 막기 어렵다”고 했다. 또한 “대리시험이나 허위 서류 제출은 개인뿐 아니라 이를 알선한 사람과 실행한 사람 모두 처벌 대상이 된다”며 “대학도 입학 단계에서 검증을 강화하지 않으면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황교수는 이어 “현재는 대학·시험기관·출입국 당국이 각각 대응하고 있어 정보가 단절돼 있다”며 “위조서류 검증 정보와 수사 데이터를 연계해야 네트워크 자체를 차단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유학생들도 ‘한 번만 걸리지 않으면 된다’는 인식이 있는데, 적발 시에는 합격 취소·입학 취소·체류 문제까지 연쇄적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일선 수사기관 역시 구조적 한계를 토로한다. 유지훈 경찰청 금융범죄수사계장은 “노쇼 사기나 기관 사칭 등 대부분의 사기 범죄에서 위조된 신분증과 문서가 기본적으로 사용된다”며 “위조는 별도의 범죄라기보다 범행 과정에 함께 따라붙는 기본 단계에 가깝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범죄는 해외 조직이 개입된 경우가 많아 개별적으로 어떤 문서를 어떻게 위조했는지까지 특정하기가 쉽지 않다”며 “결국 사기 사건 중심으로 묶어 수사할 수밖에 없어 위조만 따로 드러나지 않는 경우도 많다”고 덧붙였다.

정주원·김도윤 기자

Copyright © 헤럴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