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풍경] 고려 최후 공양왕의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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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기 왕권은 약화하고 권력 투쟁은 치열했다.
공민왕을 지나 우왕, 창왕에 이어 혼란스러운 시대의 마지막 왕은 34대 공양왕(1345∼1394)이었다.
공양왕릉은 각각의 이야기를 지닌 고려 마지막 왕의 무덤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선 고양 공양왕릉에 관해 설명한 뒤 "한 사람의 무덤이 두 곳에 존재하는 것은 공양왕의 죽음이 일반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며, 고려왕조의 마지막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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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김정선 선임기자 = 고려 말기 왕권은 약화하고 권력 투쟁은 치열했다. 공민왕을 지나 우왕, 창왕에 이어 혼란스러운 시대의 마지막 왕은 34대 공양왕(1345∼1394)이었다. 고려 20대 신종의 7대손인 공양왕은 이성계 세력의 옹립으로 1389년 왕위에 올랐다. 하지만, 1392년 조선이 건국되면서 474년간 존속된 고려 왕조도 막을 내리게 된다.
![고양에 있는 국가 사적 공양왕릉 [촬영 김정선]](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4/22/yonhap/20260422104020719wyak.jpg)
조선왕조실록에는 당시 왕대비의 교지로 공양왕의 폐위 결정이 이뤄졌다는 내용이 나온다. 한국고전종합DB의 신역(新譯) 태조실록 1392년 7월 17일 기사를 보면, 공양왕이 이를 듣고 "내가 본래 임금이 되고 싶지 않았는데 여러 신하가 억지로 나를 왕으로 세웠다"라고 말한다. 그는 원주로 떠나야 했고, 이후에는 공양군으로 강등돼 고성군 간성으로 옮겨갔다. 1394년 삼척으로 옮겨간 뒤에는 아들 2명과 함께 죽임을 당했다. 공양왕을 처벌하라는 신하들의 요청을 "할 수 없이 억지로 따른 것"이라는 교지가 전해진 후였다. 시간이 지나 조선 3대 태종 시기에 이르러 공양군에서 공양왕으로 추봉됐다.
![삼척에 있는 공양왕릉 (삼척=연합뉴스) 강원 삼척시 근덕면 궁촌리 공양왕릉(강원특별자치도 기념물)에서 고려의 마지막 왕 공양왕의 넋을 기리는 '공양왕 봉제'가 거행되고 있다. 2025.5.14 [삼척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yoo21@yna.co.kr](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4/22/yonhap/20260422104020981qciu.jpg)
공양왕은 새로운 건국을 앞둔 시대의 운명 속에서 이전 왕조의 마지막 길을 걸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망 뒤 조성된 무덤의 역사도 단순하지 않다. 현재 공양왕릉은 2개의 지역에서 국가 사적과 강원특별자치도 기념물로 각각 지정돼 있다.
1970년 사적으로 지정된 공양왕릉은 경기 고양시에 있다. 현종실록 등에 공양왕의 능묘가 고양에 있다는 내용이 나온다.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이라는 점이 눈에 띈다. 고양 공양왕릉은 공양왕과 순비 노씨의 능으로, 쌍릉 형식이다. 무덤 앞에는 돌로 만든 석인상 등이 서 있다. 소박하고 간소해 보인다. 삼척 공양왕릉의 도 기념물 지정 시기는 1995년이다. 삼척의 능은 민간에서 전해 내려오는 것이지만, 삼척부사 허목의 '척주지'와 김구혁의 '척주선생안' 등에 기록이 있다고 한다. 이곳에는 모두 4기의 무덤이 있다. 삼척시 자료에 따르면 가장 큰 것이 공양왕의 무덤이고 2기는 왕자들의 묘이며, 나머지 하나는 시녀 또는 왕이 탔던 말의 무덤으로 전해진다.
공양왕릉은 각각의 이야기를 지닌 고려 마지막 왕의 무덤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관련된 지명이나 전설, 제사를 지내는 풍습 등도 흥미롭다. 지명은 쉽게 알 수 있다. 일례로, 시내버스를 타고 고양 공양왕릉에 갈 경우 왕릉골에서 하차하게 된다. 삼척 공양왕릉이 있는 곳은 근덕면 궁촌리다. 옛날에 유배된 임금이 와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알려졌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선 고양 공양왕릉에 관해 설명한 뒤 "한 사람의 무덤이 두 곳에 존재하는 것은 공양왕의 죽음이 일반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며, 고려왕조의 마지막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적고 있다.
때로는 전설에서 폐위된 왕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안쓰러움이 읽히기도 한다. 지역을 옮겨 다닌 공양왕의 삶, 고려 말과 조선 건국 초기의 상황 등이 후대에도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공양왕의 재위 기간은 짧았지만, 그와 관련된 이야기들과 문화유산은 여전히 현대에 이어지고 있다. 무덤에 대한 궁금증은 남지만, 기록과 민간 전승의 의미가 있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js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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