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 상황에 흔들리지 않는 품격을 지닌 인생의 벗[응원합니다]

2026. 4. 22.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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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원합니다 - 70대에 인생 3막 시작한 친구 조용고·조형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70대 친구들이 자주 만나 우의를 다진다. 오른쪽부터 조용고, 조형제, 필자.

친구는 지난 3월 20일 춘분 날에 가진 ‘둘레길 걷기 운동’에 참가하지 못했다. 그날은 분기마다 만나는 재경함양중학교 동창회를 겸하는 날이었다. 친구는 고향에서 봄마다 열리는 전국초등동창회도 불참한 지 오래되었다. 처음에는 잦은 소변 때문에 모임 참석이 어렵다고 해 지나쳤으나 이젠 무심할 수가 없다.

친구와 나는 같은 고향(경남 함양군 지곡면) 같은 학교를 다녔다. 친구는 군 복무 후 잠시 서울광화문우체국 근무 중 서울시로 공직을 옮겼다. 그가 서울시청, 동작구청 등을 거쳐 사당1동사무소에서 근무할 때 얘기는 우리들을 전율케 한다. 평소 절제된 언행이 몸에 밴 조용한 친구가 퇴직한 지가 15년이 넘었지만 지금도 폭우와 폭설, 가뭄 때면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머리말로 시작해 현직 공무원으로 ‘확’ 돌아간다.

2001년 7월 22일 전후 서울 동작구 사당, 서초구 방배동 일대는 시간당 80㎜에 가까운 폭우가 쏟아졌다. 하루 강수량이 300㎜를 넘었다. 사당역 주변 도로가 물에 잠겨 차량 운행이 어렵고, 일부 지역은 성인 허리까지 물이 차올랐다. 반지하, 저지대 1700여 세대는 대피 과정에서 급류에 휩쓸리거나 고립되는 사고도 있었다. 친구가 이재민 구호업무로 밤을 지새우자 부인이 옷가지를 챙겨 동사무소를 오갔다. 이런 헌신이 알려져 친구는 그해 연말 ‘모범공무원’으로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다. 한 달에 3만 원(지금은 5만 원)씩 3년간 수당을 받는 귀한 상이다. 그즈음, 나와 친구가 퇴근 시간이 맞아 그 친구가 근무하는 동사무소를 들렀던 추억이 엊그제 같다.

2009년 공직에서 퇴직한 친구는 곧바로 아파트관리소장이 되었다. 아마도 친구를 “우리 (구)청장님, 청장님!”하는 동작구민 누군가가 친구를 낚아챘지 싶다. 공직 주변에는 가끔 이런 스카우트 사례가 있다. ‘세계 아동의 해’ 기념사업으로 1982년 서울 신월동에 SOS어린이마을 집 15채와 부속 유아원을 준공한 천주교는 그 책임자로 소년원 김모 계장을 서울SOS초대지부장으로 모셨다. 소년원에서 목회활동을 하는 천주교 수사님이 강추했다는 전언이다. 내가 모시던 중앙부처 과장은 전관변호사의 대형빌딩 관리책임자가 됐다. 이들의 공통점은 청렴결백은 기본이고 아담한 체구에 마냥 친절, 상냥하다는 것이다.

친구는 퇴직을 앞둔 공로연수 기간에 퇴직 후 준비에 올인했다. 주택관리사뿐 아니라 기술 자격증도 여럿 취득했다. 아파트관리소장의 중요한 역량은 사람 관리이다. 경비원, 환경미화원 등 직원과 돈독하며 별의별 민원, 입주민 상담 등은 모두 관리소장 몫이다. 친구에게는 낯설지 않은 일일 것이다. 친구는 ‘4가지 없는 아파트 만들기’를 펼치며 보람을 느꼈다고 한다. 고독사, 층간 소음, 외로운 어르신, 이웃 간 낯가림 없는 아파트가 그것이다. 매주 빼어난 손 글씨로 쓴 ‘건강 수칙’을 게시판에 붙였다.

친구는 자기 삶을 서울시공무원이 인생 1막, 15년 동안 주택관리사무소장으로 일한 2막, 부인과 함께하는 여생을 인생 3막으로 나눈다. 현직 끝자락에 나는 친구에게 “우리 퇴직하면 달마다 마라톤을 완주하고 시원한 맥주 한잔 하며 지내자!”고 했는데 기억할는지 모르겠다.

나는 보호관찰관으로 퇴직 후 10년 남짓 법원 민사조정위원으로 활동 후 지금은 새집을 지어 딸네와 합가(合家), 두 손자 바라기가 되었다. 우리의 조형제 친구는 철도청, 국가안전보장회의, 문화체육관광부, 국립현대미술관(과천) 등에서 두각(頭角)을 보였다. 얼마 전 친구는 수도권에서 전북 익산 막내딸네 집 인근으로 이사해 공예 공방을 운영하면서 건강을 되찾고 있다. 우리 공무원 3인방은 ‘머릿고기를 삶았다’ ‘횟감이 왔다’라는 등 갖은 구실을 붙여 자주 만난다.

조용고 친구는 아파트관리소장을 그만두고 병약한 부인을 위한 119구급대원, 5분대기조가 되었다. 그 때문에 모임도 집과 가깝지 않으면 참가가 어렵다. ‘불이물희 불이기비(不以物喜 不以己悲)’, 즉 ‘아무리 좋은 일이 있어도 들뜨지 않고, 자신의 처지로 쉽게 슬퍼하지도 않는다’는 말처럼, 이 친구는 외부 상황에 흔들리지 않는 품격 있는 마음가짐의 주인공이다. 이제 그는 또 한 번의 출발선 앞에 서 있다. 어쩌면 그의 진짜 인생은 지금부터 시작인지도 모른다. 새롭게 시작하는 친구의 인생 3막을 응원하며 기대한다.

노청한(전직 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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