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전환 시급한데...예산·전력망 ‘현실의 벽’

전 세계 기후 대응 논의가 이뤄지는 '여수 기후주간'에서 에너지 전환의 필요성이 거듭 강조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이를 뒷받침할 재원과 전력망 등 기반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전문가들은 에너지 전환이 그저 선언에 그치지 않으려면 재정 확대와 지역 중심 구조 개편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4월 20일부터 25일까지 전남 여수에서 '여수 기후주간'이 열린다. 이번 행사는 '녹색대전환(GX) 국제주간', '2026년 기후변화주간', '제3차 유엔기후변화협약 기후주간'이 연계된 대규모 기후행사다.
20일 여수세계박람회장에서 열린 '녹색대전환 국제주간' 개막식에서는 에너지 전환과 국제 협력의 중요성이 강조됐다.
기후부 장관 "재생에너지 중심 전환" 강조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이날 기조연설에서 "화석연료 의존도가 높은 에너지 구조를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전환하고, 산업과 수송의 전기화를 추진해야 미래 에너지 시대를 주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에너지 전환은 국제 사회의 공동 과제인 만큼 연대가 필수적"이며 "이번 기후주간이 에너지 전환 해법을 모색하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사이먼 스틸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사무총장도 영상 축사를 통해 에너지 안보와 재생에너지 확대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이어 한국, 일본, 유럽연합(EU) 등 각국 관계자가 에너지 전환 정책과 산업 전략을 공유하고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이날 개막식에는 각국 정부와 국제기구, 산업계·학계 관계자 등 약 800여 명이 참석했다.
여수 기후주간 동안 에너지 전환을 둘러싼 정책과 투자, 산업 탈탄소 전략 등을 주제로 다양한 포럼과 세미나가 이어질 예정이다.
"에너지 전환 외치지만...투자 안 따라줘"
기후주간의 핵심 의제로 '에너지 전환'이 떠올랐지만, 실제 이를 뒷받침할 재원과 제도 기반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기후솔루션과 클라이밋 그룹은 21일 여수 유탑마리나호텔에서 '모두를 위한 에너지 전환: 재생에너지 인프라와 투자 정책 컨퍼런스'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는 재생에너지 확대를 가로막는 구조적 한계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참석자들은 에너지 전환에 대규모 투자와 금융 지원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특히 재생에너지는 초기 투자 비용이 크고 수익의 불확실성이 높아 민간 투자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정책금융이 먼저 위험을 감수해 민간 투자의 물꼬를 터주는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후솔루션이 발간한 '탈석탄을 위한 재정 지원' 보고서에 따르면, 2026년 기후대응기금은 2조 9천억 원이다. 그러나 제1차 탄소중립 및 녹색성장 국가 기본 계획에 따라 2030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달성하려면 연간 16조 원이 필요하다. 현재 기후대응기금 예산은 이에 한참 모자란 수준이다.
이 때문에 추가 재원 확보 방안으로 녹색국채 도입이 거론된다. 녹색국채는 정부가 기후·환경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발행하는 채권이다. 재정경제부는 녹색국채 도입을 꾸준히 검토해왔으며, 지난 2월에는 박지혜 의원이 탄소중립기본법 개정안을 발의하는 등 관련 제도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보고서는 한국과 유사한 재정 여건을 가진 독일 사례를 제시했다. 독일은 재정 건전성을 유지하면서도 녹색국채와 특별기금 등을 활용해 에너지 전환 투자를 확대해왔다.
독일은 일반 재정과 별도로 녹색국채와 특별기금을 활용해 전환 재원을 조달하고 있다. 탄소가격제와 EU 배출권거래제 수입을 기후·전환 기금의 재원으로 활용하는 한편, 인프라와 탄소중립을 위한 별도 특별기금도 운용 중이다. 보고서는 이런 구조가 일반 재정과 전환 투자를 구분해 정책 지속성과 사회적 수용성을 높인다고 평가했다.
다만 녹색국채 도입은 국가의 재정 건전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이뤄져야 한다. 한국의 국가채무 비율은 2024년 기준 GDP 대비 약 52%로, 독일(64%)과 비슷한 수준이다. 일본(236%), 프랑스(112%), 영국(101%) 등 녹색국채를 적극적으로 발행하고 있는 주요 국가 대비 상대적으로 양호한 편이다.
행사에 참석한 요른 바이버트 주한 독일대사관 부대사는 "한국과 독일은 에너지 구조와 산업 기반에서 유사한 점이 많다"며 "독일의 경험이 한국의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참고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에너지 전환의 가장 큰 과제는 재원 조달"이라며 "정부 투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민간 자본이 유입될 수 있도록 재생에너지 투자가 수익을 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돈도, 전력망도 부족...'지역 중심 전환' 필요"
이날 행사에서는 국내외 에너지 전문가 토론도 이어졌다. 에너지 전환이 재원과 전력망 등 갖가지 한계에 가로막혀 있는 가운데, 이를 풀기 위해서는 지역 단위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1부 토론은 '에너지 전환을 위한 정책금융의 역할'을 주제로 진행됐다. 케이 파탈라노 런던정경대(LSE) TPI 글로벌 기후전환센터 전략기획 매니저, 강준희 한국산업은행 ESG기획부 차장, 참파 파텔 클라이밋그룹 정부정책 담당 상임이사 등이 참석했다.


2부 토론 주제는 '지역 재생에너지 전환을 위한 전력망 현대화'였다. 한가희 기후솔루션 전력시장계통팀장, 문혜경 보령시 에너지과 팀장, 최정훈 전남 녹색에너지연구소 센터장, 아미샤 파텔 글로벌해상풍력연합 사무국장 등이 참석했다. 토론에서는 재생에너지 설비를 늘리는 것만으로는 전환이 이뤄지기 어렵다는 점이 강조됐다.
"중앙정부 정책만으로는 한계...지역 단위 재원과 전략 필요"
재생에너지 확대 과정에서 계통 접속 지연과 출력제어가 반복되고 있으며, 중앙집중형 화력발전 중심의 전력 구조가 한계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화력발전의 최소운전이 우선 보장되는 구조로 인해, 재생에너지가 만들어져도 계통에 연결되지 못하거나, 출력 제한을 받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충남과 전남 사례를 통해 지역의 문제가 조명됐다. 충남 보령의 경우 탈석탄 이후 대체 산업과 송전 인프라 재편이 함께 이뤄지지 않으면 지역 전환이 지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이 과정에서 지역은 송전 부담을 떠안으면서도 실질적인 혜택은 제한적이라는 문제도 언급됐다.
전남 역시 재생에너지 잠재량은 크지만 계통 인프라 부족이 걸림돌로 꼽혔다. 전남에서는 솔라시도 등 데이터센터 유치가 진행되고 있는데, 이처럼 대규모 전력 수요를 지역으로 분산·유치해 재생에너지 확대와 계통 문제를 동시에 완화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결국 에너지 전환이 중앙정부의 정책만으로는 추진되기 어렵고, 실제 사업이 이뤄지는 지역 단위에서 재원과 권한, 인허가 체계, 수요 관리, 산업 전략 등이 함께 갖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참파 파텔 클라이밋그룹 정부정책 담당 상임이사는 "지방 행위자들이 에너지 전환을 기후 책임의 문제인 동시에 경제 안보의 문제로 재정립하며 앞장서고 있다"며 "이 거버넌스 수준이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목표 때문이 아니라 실제 이행과의 근접성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방 정부에 대한 재정 지원은 가장 필요한 곳에서 회복력을 구축하고, 에너지 전환이 지속가능성과 더불어 안보까지 실천하도록 보장하는 데 있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에너지 전환은 실제 실행이 이뤄지는 지역 수준에서 결정되기 때문에 지방정부에 대한 재정 지원이 전환의 핵심 요소라는 의미다.
에너지 전환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는 형성됐지만, 이를 뒷받침할 재원과 전력망, 지역 기반은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목표 제시를 넘어 투자와 인프라, 지역 단위 실행 체계가 함께 갖춰지지 않으면 에너지 전환이 선언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결국 전환의 열쇠는 정책을 실제 구현할 수 있는 '조건'을 얼마나 빠르게 마련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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