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자보다 하루라도 더 오래 살고 싶은가? [새로 나온 책]

느리게 마이너노트로
우에노 지즈코 지음, 은혜 옮김, 후마니타스 펴냄
“하나둘씩 나를 추월해간다.”
일본을 대표하는 페미니스트 사회학자, 우에노 지즈코가 기혼 여성들에게 물었다. 배우자보다 하루라도 더 오래 살고 싶은가? 배우자보다 하루라도 빨리 죽고 싶다는 아내는 대체로 부부 사이가 좋고, 더 살고 싶다는 아내는 부부 사이가 나빴다. 그의 어머니는 후자였다. “네 아빠가 가고, 뻥 뚫린 파란 하늘을 보고 나서 죽고 싶다.” 소원은 이뤄지지 않았다. 늙음과 돌봄에 대한 성찰을 담은 글을 꾸준히 발표했던 우에노 지즈코가 ‘후기 고령자’의 나이에 접어들며 써 내려간 수필집이다. ‘내 안에서 천천히 마이너노트로 흐르는 시간, 그것을 길어 올려 살며시 내미는 듯한 에세이를 써보고 싶었다’는 노년의 사회학자를 통해 ‘내리막길의 풍경’도 정겨울 수 있다는 위안을 얻는다.

다민족 과학
현재환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왜 인종은 유령처럼 과학자들의 언어 속을 배회하고 있을까.”
현대의 다민족 과학은 피부색과 골상을 바탕으로 인종 간 우열을 매기던 과학적 인종주의와는 분명 다르지만 그 경계가 흐릿해지는 경우가 빈번하다. 저자는 과학적 선의에서 시작된 연구가 차별의 근거를 제공하는 인종 과학으로 미끄러질 수 있는 비탈길 위에 서 있다고 말한다. 예컨대 유전학자들은 북방계와 남방계 이중 기원설을 통해 단일민족 신화를 비판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 동북공정에 맞서 ‘유전적 동질성’을 증명하라는 요구에 부응해야 했다. 이 책은 과학기술학의 관점에서 2000년대 이후 과학과 보건정책, 다문화주의가 어떻게 상호작용하며 얽혀왔는지 탐구한다. 저자는 다민족 과학이 새로운 인종 과학을 막는 방파제가 되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협력의 역설
애덤 카헤인 지음, 박덕수 옮김, 메디치미디어 펴냄
“실제 상황에서 우리는 매번 언제, 누구와 협력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협력이 인류의 최고 가치 중 하나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있을까. 저자는 ‘굳이 협력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그렇다면 서로 다른 의견을 어떻게 조율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다시 저자는 말한다. 의견을 조정하려 하지 말고, 문제를 매끄럽게 해결하려고 하지도 말라고. 중요한 것은 ‘중간’ 또는 ‘어느 정도 동의할 수 있는 어떤 지점’을 찾아내어 지속적으로 환기시키는 것이다. 협력이 성공한다는 의미는 참가자들이 서로 동의하고 좋아하게 된다는 것이 아니다. 해묵은 감정으로 대화가 끊긴 가족, 가치관이 정반대인 상사와 ‘친구’가 될 필요는 없다. 그저 함께 머무를 용기를 내는 것만으로도, 끝내 이루지 못할 것 같던 공동의 결과물을 손에 쥐게 될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어머니 내게 오시네
아룬다티 로이 지음, 민승남 옮김, 문학동네 펴냄
“나는 지금 여기 있어요.”
〈작은 것들의 신〉의 소설가 아룬다티 로이의 회고록.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일은, 어머니 메리 로이가 ‘어떤 사람인가’를 탐구하는 일이기도 했다. 그는 모성이라는 단어와 가장 멀리 있는 여자였다. 엄마라기보다 ‘나의 마피아’였다. 어쩌면 이 책은 그가 죽었기 때문에 쓸 수 있었던 이야기.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를 직격하고, 소수자 편에서 목소리 내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저자는 자신을 그런 사람으로 길러낸 제 어머니의 삶 역시 애도라는 단어로 얼버무리지 않고 ‘자유롭게’ 쓴다. 사랑의 안쪽에 자리한 폭력의 뾰족한 얼굴마저 숨김없이 드러낸다. 그것이 어머니의 유산이었으므로. 글 속에서라도 어머니를 살아 있게 하려는 작가의 애틋한 분투가 느껴진다.

뇌 속의 사회
최진영 외 지음, 사회평론아카데미 펴냄
“고립된 뇌는 더 빨리 늙는다.”
노화와 치매를 개인의 생물학적 문제가 아닌 ‘사회적 연결성’의 관점에서 조명한다. 특히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를 겪은 한국의 노인들에게서 교육이 인지기능 및 노화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을 발견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고립과 외로움이 실제로 염증반응, 스트레스 체계, 면역반응에 영향을 미치고, 결국 뇌 노화 속도를 바꾼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일까? 이 책은 개인을 넘어, 지역사회와 정책 차원의 접근을 제안한다. 치매 예방의 해법은 병원 밖, 즉 ‘사람 사이’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 노인의 삶과 관계를 기반으로 한 이 연구는 치매 연구에 관한 새로운 모델로, 해외 학계에서도 큰 관심을 얻었다.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
로버트 M. 새폴스키 지음, 양병찬 옮김, 문학동네 펴냄
“요컨대 당신은 정신에서 벗어날 수는 있을지언정 뇌에서는 벗어날 수 없다.”
지은이는 스트레스가 뇌의 해마에 있는 신경세포를 파괴한다는 사실을 세계 최초로 입증한 신경과학자다. 그는 전작 〈행동〉에서 인간이 때로 왜 최선·최악의 행동을 하는지, 무엇이 영향을 미치는지를 신경생물학적 관점에서 다루었다. 이 책에서 그는 인간의 행동과 생각을 결정하는 또 다른 논쟁 지점을 다룬다. ‘자유의지’다. 과학계·철학계에서는 오랫동안 ‘결정론’과 ‘자유의지’를 둘러싼 논쟁을 벌여왔다. 인간의 행동은 결정론을 따르지만 자유의지도 있다는 ‘양립주의’가 현재 주류를 이루는데, 지은이는 이러한 입증을 환상일 뿐이라고 말한다. 자유의지란 생물학적 착각일 뿐임을 과학적 탐구를 바탕으로 주장한다. 과학을 중심에 두고 사회·문화 지식을 넘나든다.
시사IN 편집국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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