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한 음악 기록자 ‘스페이스 공감’의 부활 스토리
경기도 고양시에 자리한 EBS 건물 1층에는 스페이스홀이 있다. 200석 규모의 공연장 입구 부근, 둥근 파이프 형태의 조형물에는 2004년부터 무료 라이브 공연 〈스페이스 공감〉에 출연한 주요 뮤지션 이름이 적혀 있다. 2023년에는 브로콜리너마저, 마이앤트메리, 태양, 이무진, 손열음 등이 다녀갔다. 2024년부터는 공백으로 남아 있다. 이제 2026년부터 출연진 이름을 다시 적을 수 있게 되었다. 4월3일, 무료 라이브 공연 〈스페이스 공감〉이 3년 만에 부활했다.

2011년에 1년 동안 그리고 2021년부터 이 프로그램의 연출을 맡아온 황정원 PD는 〈스페이스 공감〉을 두고 ‘한국 대중음악의 아카이브’ ‘대중음악의 성실한 기록자’라고 말한다. 과한 표현이 아니다. 2004년 4월1일부터 21년 동안 라이브 공연을 해왔다. 주 5회 공연하던 시절도 있었다. 2023년 8월까지 라이브 공연 횟수가 3122회. 총 2800여 팀이 무대에 섰다. 록·포크·힙합·재즈·클래식·국악 등 여러 장르를 아울렀다. 또한 〈스페이스 공감〉의 한 코너였던 신인 발굴 프로젝트 ‘헬로루키’는 실력 있는 아티스트 173개 팀을 알렸다. 국카스텐·장기하와 얼굴들·데이브레이크·몽니·권나무·실리카겔·한로로 등이 헬로루키 ‘동문’이다. 〈스페이스 공감〉이 한국대중음악상 특별상, 한국방송대상 작품상, 한국PD대상 특별상 등 여러 상을 받은 데는 분명 이유가 있었다.
음악계와 방송가의 호평을 받았지만 2023년 8월3일 넬의 공연을 마지막으로 라이브를 중단해야 했다. 공연 중심의 음악방송이라 제작비가 많이 들고, 심야 시간대에 방송돼 시청률 경쟁에서 고전했다. 대중이 음악을 소비하는 형태가 변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황정원 PD는 “음악 콘텐츠를 짧고 빠르게 소비하는 시대인데, 〈스페이스 공감〉은 후반 작업에 공을 들여 오랫동안 제작하는 웰메이드 중심이다 보니 아무래도 속도전에서 밀리는 느낌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스페이스 공감〉도 동시대 음악방송 프로그램이 처한 현실을 비껴가기 어려웠다.

라이브 공연을 중단했지만 황정원 PD는 제작진 여덟 명과 함께 ‘독립군처럼’ 명맥을 이어갔다. 2024년 스페이스홀 개관 20주년을 맞아 대중음악 전문가 11인과 함께 ‘2000년대 한국 대중음악 명반 100’을 선정해 발표했다. ‘명반 다큐멘터리 시리즈’ 20부작을 제작해 2년에 걸쳐 방송했다. 2025년에는 한국 인디음악 30주년을 기념해 인디 신의 역사를 되짚은 다큐멘터리 〈파이오니어〉 시리즈 10부작을 제작했다. 지난해 9월에는 서울 노들섬에서 한국 인디음악 30주년 특별공연을 열었다. 〈스페이스 공감〉이 요청할 때마다 흔쾌히 응한 김창완밴드 등이 무대에 섰다.
지난해 말부터 〈스페이스 공감〉 라이브 공연 재개를 준비할 수 있었다. 구글이 국내 음원 생태계와 상생을 위해 300억원 규모의 기금을 마련해 EBS에 출연하기로 했고, 공정거래위원회가 ‘동의의결’해 〈스페이스 공감〉 라이브 공연과 헬로루키가 부활하게 되었다(동의의결 제도는 사업자가 스스로 시정 방안을 제시하고, 공정거래위원회가 그 타당성을 인정하면 해당 사건을 신속하게 종결하는 제도다). 구글이 4년 동안 300억원을 지원하면서 제작비 부족 문제가 해결되었다. EBS는 이를 활용해 올해 50회가량 무료 라이브 공연을 한다. 내년부터는 연간 80회 공연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스페이스 공감〉·헬로루키가 부활하면서 손예은·김남호 PD가 제작진에 합류했다.
세상의 모든 멋진 음악에 ‘공감’하다
황정원 PD는 “〈스페이스 공감〉은 ‘나 음악 좀 많이 안다’고 생각하는 제작진이 들어와 ‘나 음악 진짜 모르는구나, 세상에 이렇게 멋진 음악이 많구나’ 느끼게 만드는 프로그램이다”라고 말한다. 새 음반을 챙겨 듣는 게 요즘 제작진의 일상이다. 제작진이 자문위원회(김윤하·김학선·박정용·정병욱)와 협의해 출연 뮤지션 후보를 선정한다. 신인류·소울 딜리버리·김완선·잔나비·전진희·다브다·극동아시아타이거즈·나윤선 등의 공연이 예정돼 있다. 공연 실황은 공연 전 인터뷰 영상을 포함해 한 달 뒤에 방송된다. 믹싱 등 후가공과 편집에 심혈을 기울인다.

돌아온 〈스페이스 공감〉의 첫 공연명은 ‘홈커밍데이’. 손예은·김남호 PD는 ‘동창회’ 콘셉트라고 말했다. 〈스페이스 공감〉·헬로루키 재개를 어떤 뮤지션이 가장 반가워할까. 헬로루키 출신 가운데 세상에 알려진 뮤지션들을 출연진으로 떠올렸다. 장기하(2008년 헬로루키), 실리카겔(2016년), 한로로(2022년)가 제작진의 출연 요청에 흔쾌히 응했다. 통상 스페이스홀에서 공연을 하는데, 첫 공연인 만큼 더 큰 공연장(LG아트센터 U+스테이지홀)을 택했다.
〈스페이스 공감〉의 부활에 대중음악 팬들이 호응했다. 첫 공연에는 9만5000여 명이 방청을 신청했다. 237대 1 경쟁률이다. 악뮤가 출연한 두 번째 무대에 몰린 신청자는 5만7000여 명이다. ‘노쇼(예약 부도)’를 방지하는 차원에서 진정성 있는 신청 사연을 올린 응모자를 우선 선정했다.

4월3일 〈스페이스 공감〉 ‘홈커밍데이’ 무대에서 뮤지션들은 프로그램과의 인연을 담은 소감을 말했다. “〈스페이스 공감〉은 저에게 긴장감 가득한 곳으로 느껴진다. 헬로루키 경연으로 한로로라는 이름을 처음 알렸다. 그때 아무도 저를 모르셨는데, 오늘 응원 슬로건을 보니 기쁘면서도 얼떨떨하다(한로로).” “2008년 그 방송이 TV 데뷔였다. 그게 가장 유명한 라이브 영상이 될 줄은 몰랐다. 지금 이 자리에 서니 만감이 교차한다(장기하).” 실리카겔의 멤버 김춘추는 이렇게 말했다. “음악을 시작할 때부터 공부가 많이 됐던 최고의 프로그램이었다. 다시는 그만한다는 소리를 안 하셨으면 좋겠다.” 이날의 공연 실황은 5월6일 밤 10시50분에 EBS에서 볼 수 있다.
차형석 기자 ch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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