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소변주머니 ‘3일치’·흉관배액병 ‘생산중단’···국립대병원 필수품 재고 ‘빨간 불’

김찬호·이혜인 기자 2026. 4. 22.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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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여파, 주사기 수급에 행정력 집중
플라스틱·석유화학 기반 소모품 전반 ‘차질’
“코로나19 때 마스크처럼 정부가 개입해야”
정부 “불안 심리로 물량 확보, 조금 부족해진 것”
지난 7일 서울의 한 의료기기 판매점에 5cc, 10cc 등이 진열돼 있던 주사기 매대가 비고 20cc 주사기 상자 하나가 남아 있다. 연합뉴스

중동 전쟁으로 주사기, 약병 등의 수급 불안 문제가 불거지자 정부가 관리에 나섰으나, 전국 14개 국립대병원·치과병원에서 수술·중환자용 필수 의료소모품 재고가 바닥나 일부 품목이 처방 중단 위기에 몰린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가 주사기 수급에 행정력을 집중하는 사이 의료 핵심 품목들이 사각지대에 방치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향신문이 21일 김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실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를 통해 확보한 ‘국립대병원 의료소모품 현황 조사’(4월 1~2주차)를 보면, 플라스틱·석유화학 기반의 의료소모품 전반에서 납품 지연과 생산 중단 통보가 확인됐다.

물량 끊기고 단가 치솟고

특히 환자의 체액과 노폐물을 몸 밖으로 빼내는 데 쓰이는 ‘배액 용기류’에서 공급 부족 상황이 두드러졌다. 전남대병원이 지난 8일 보고한 수치를 보면, 중증 환자용 500cc 소변주머니 납품량이 발주량의 50% 밑으로 급감하면서 원내 재고는 한때 3일치에 불과했다. 병원 측은 “처방을 막아야 하는 현실”이라고 상황을 설명했다. 같은 날 부산대치과병원도 “소변주머니 납품이 이미 중단돼 장기 미수급 시 진료 차질이 예상된다”고 보고했다.

폐나 흉부 수술 후 가슴에 고인 피나 공기 등을 빼내는 데 사용하는 흉관 배액병도 공급 차질을 빚고 있다. 지난 7일 보고에 따르면, 경상국립대병원 분원은 재고가 1~2주치 남은 상황에서 제조사로부터 ‘생산을 중단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흉관 배액병은 여러 국립대병원이 특정 제조사 한 곳의 납품에 의존하고 있어, 생산 중단이 현실화하면 전국 단위로 수술과 처치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 국립대병원 관계자는 “업체가 주는 대로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한달치를 겨우 확보한 상태”라며 “다음 달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우려했다.

‘국립대병원 의료소모품 현황 조사’(4월 1~2주차). 김윤 민주당 의원실 및 의료연대본부

항암 치료와 약제 조제 등에 쓰이는 필수 소모품도 수급 불안을 겪고 있다. 암 전문 병원인 화순전남대병원은 ‘5월 이후 멸균 장갑 공급 여부가 불확실하고, 항암제 조제와 외래 약 투약에 필요한 차광지퍼백, 무지 지퍼백, 비닐봉투 등도 공급이 불확실한 상태’라고 보고했다. 강원대병원은 환자용 투약병과 자동조제기(ATDPS)용 약 포장지, 의료폐기물 보관용 비닐봉투 등 소모품 전반에서 연쇄적인 공급 차질이 발생해 대체 공급처를 찾고 있다고 했다.

전남대병원 관계자는 이날 “중증 환자용 500cc 소변주머니 공급 부족을 버티기 위해 다른 업체 제품을 구해 쓰고 있다”며 “처방 전면 중단은 막았지만 현재 재고가 총 2주분 수준이다”라고 말했다. 경상국립대병원은 “일회용 비닐장갑(폴리글러브)과 알코올 솜, 각종 주사기 등 기초 소모품 재고가 하루 치만 남았다”고 밝혔다.

병원들은 재고 부족에 더해 가격 급등으로 인한 이중고를 겪고 있다. 양산부산대병원은 공급사로부터 주사기·주사침 가격 25% 인상을 통보받았다. 서울대·전북대 등 다수 병원도 단가 인상 요청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의료폐기물 용기 가격 인상이 특히 가팔랐다. 부산대병원은 지난 3월과 이달 각각 22.5%씩 가격 인상을 통보받았다고 밝혔다. 서울대병원은 “사태가 장기화하면 중증 환자 진료에 차질이 우려된다”며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생산 차질 없다” vs “지금 개입해야”
21일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 주재로 보건의료분야 단체들과 관련 부처(산업통상부, 기후에너지환경부, 식약처 등)가 의료제품 수급상황을 점검하는 ‘중동전쟁 대응 제4차 보건의약단체 회의’를 열었다. 보건복지부 제공

정부는 보건복지부를 중심으로 관련 부처 회의를 열면서 의료제품 수급 상황을 관리하고 있으나, 부처별로 책임 소재가 흩어져 있어 사각지대가 생길 수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설명에 따르면, 일선 병원이 복지부에 수급 불안을 호소하면 이 의견을 복지부가 수렴한 후에 해당 품목이 의료기기인지 공산품인지 분류하는 과정을 거친다. 의료기기일 경우 식약처에서 조사에 착수하고, 공산품일 경우 복지부가 자체 관리를 한다. 식약처 관계자는 “의료기관에서 쓴다고 모두 의료기기가 아니다”며 “약통처럼 인체 위해도가 없는 공산품은 보건복지부 관할”이라고 설명했다.

식약처 관계자는 “현재 의료용품 생산량은 평년 수준이고, 수급 불안과 가격 왜곡은 일부 유통 단계에서 발생하는 문제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으나, 현장의 목소리는 다르다. 한 지역대학병원 관계자는 “제조사가 납품업체에 37~50% 가격 인상을 통보했고, 납품업체가 병원에 25% 인상을 요구한 상태”라며 “매입 자료를 요청해 보면, 중간 납품업체들이 실제로 역마진을 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가격에 대해 특별한 가이드라인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어디까지 인상을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박경득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장은 “생산·허가 단계에선 소관 부처가 갈릴 수 있지만, 공급 부족으로 의료 서비스에 문제가 생긴 단계에서는 병원을 관리하는 복지부가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며 “코로나19 마스크 대란 때처럼 정부가 공급망에 개입해 일선 병원이 의료용품 부족을 겪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국립대병원을 포함해 일선 병원의 의료 소모품 현황을 전부 일일 모니터링하고 있는데 아무 문제 없다”며 “현재 상황은 중동 전쟁 등으로 인한 불안 심리로 병원들이 평소보다 물량을 더 많이 확보하려고 하면서 공급이 조금 부족해졌을 뿐”이라고 말했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이혜인 기자 hye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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