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소음, AI의 변곡점, 그리고 다시 실적으로

한경비즈니스 외고한경 2026. 4. 22.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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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적으로는 지정학이 가격을 흔들겠지만 중기적으로 더 큰 질서는 AI 에이전트가 만드는 토큰 경제, 이를 뒷받침하는 인프라 혁신, 그리고 결국 확인될 실적의 복원력이다. 한국 시장은 지금 그 구조 변화의 수혜 업종을 품고 있으면서도 가격은 여전히 낮은 편에 속한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최근 시장은 두 개의 시간을 동시에 살고 있다. 화면 앞의 짧은 시간은 전쟁과 지정학의 시간이고, 자본이 실제로 가격을 다시 매기는 긴 시간은 산업의 구조 변화와 기업 실적의 시간이다. 이번 자료가 말하는 핵심도 여기에 있다. 전쟁은 여전히 시장을 흔드는 변수이지만 4월 이후에는 시장의 주도 변수가 전쟁에서 실적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지금의 변동성은 오히려 다음 국면으로 넘어가기 전의 소음에 가깝다. 

◆전쟁 위에 덮인 AI 전환

물론 전쟁을 가볍게 볼 수는 없다. 교착 국면에서는 에너지, 방산, 신재생처럼 전쟁이 만들어내는 이익 기대가 부각된 업종이 반응하고, 협상 진전이나 종전 기대가 형성되면 기술주, 반도체, IT하드웨어 등 기존 주도주가 정상화 랠리를 주도하는 구조가 나타난다. 더 중요한 것은 전쟁이 단순한 단기 뉴스 플로에 그치지 않고 중기적으로는 방산과 신재생, 재건 관련 산업에 새로운 모멘텀을 부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시장은 늘 전쟁의 공포만 가격에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후에 열리는 지출과 투자까지 함께 계산한다. 

하지만 더 큰 변화가 전쟁에 가려져 있다고 본다. 2022년 말 생성형 AI의 대중화, 2025년 추론형 AI의 부상에 이어 2026년 초는 ‘제대로 작동하는 AI 에이전트’의 등장으로 상징되는 세 번째 변곡점에 가깝다. 흥미로운 점은 기술의 초기 국면마다 시장이 늘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는 사실이다. 처음에는 혁신의 의미를 잘 몰랐고 다음에는 막연한 공포를 키웠다. 그러나 몇 개월이 지나 기능과 수익화의 윤곽이 드러나면 시장은 다시 그 변화를 가장 빠르게 산업 구조와 밸류에이션에 반영해 왔다. 

AI 에이전트 시대의 본질은 단순히 모델이 더 똑똑해졌다는 데 있지 않다. ‘AI가 AI에게 말하는’ 구조가 열리면서 입력과 출력이 반복적으로 누적되고, 그 결과 토큰 사용량의 단위 자체가 달라진다. 단순 챗봇이 수백~수천 토큰을 쓰는 세계였다면 에이전트는 한 번의 작업에 수십만, 많게는 백만 단위 토큰을 요구한다. 이것은 AI 산업의 성장 방정식이 더 이상 모델 파라미터 수나 사용자 수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제는 얼마나 많은 토큰이 생성되고, 그 토큰이 어떤 생산성으로 연결되며, 그 비용이 얼마나 빠르게 낮아지느냐가 핵심이 된다. 

토큰은 AI 시대의 새로운 생산 단위이고 AI 데이터센터는 그 토큰을 생산하는 공장이라는 해석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승부는 더 좋은 GPU 하나를 만드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전력당 더 많은 토큰을 생산하고, 토큰당 비용을 더 낮추며, 이를 실제 매출과 생산성으로 연결하는 전체 시스템의 효율이 진짜 경쟁력이 된다. 기존 산업의 생산함수가 노동과 자본 중심이었다면 AI 시대의 생산함수에는 연산량, 토큰 생산량, 토큰당 원가, 토큰당 매출화 가능성이 추가되는 셈이다. 

결국 AI 투자도 더 이상 반도체 하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토큰당 연산 비용, 연산 효율은 GPU만이 아니라 CPU, 메모리, 네트워크, 전력, 냉각, 운영 효율이 함께 결정한다. 그래서 800VDC, Kyber 랙, cabless 구조, CPO, SoCAMM 같은 기술 용어들이 단순한 공학의 문제가 아니라 투자 언어가 된다. 전압을 높여 손실을 줄이고, 네트워크 병목을 낮추고, 냉각을 안정화해 가동률을 높이는 변화는 모두 하나의 목표로 수렴한다. 더 많은 토큰을 더 싸게 생산하는 것이다. 

이 흐름은 통신장비 인프라까지 이어진다. 최근 엔비디아는 통신사업자를 AI 인프라의 다음 물결로 지목한 점에 주목한다. 중앙의 AI 팩토리에서 생성된 지능을 분산형 인프라와 AI-RAN을 통해 사용자 가까운 곳까지 배포하는 AI Grid의 개념이 등장하면서 통신사는 단순한 네트워크 사업자가 아니라 생성·분배·추론·소비를 연결하는 플랫폼 사업자로 재평가될 수 있다. 결국 AI는 중앙집중형 데이터센터의 이야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분산 컴퓨트와 오케스트레이션의 시대로 확장되며, 산업의 외연을 한 단계 더 넓히고 있다. 

◆한국 시장, 아직 싸다

이제 시선을 한국으로 돌려보면 코스피 12개월 선행 PER은 7배대로 밸류에이션 하단 수준인 8배를 밑돌고 있고, 주요국 가운데 유일하게 5년 밴드 하단에 머물러 있다. PBR 역시 글로벌 주요국 대비 낮다. 그런데 가격과 달리 이익은 오히려 좋아지고 있다. 최근 한 달 사이 코스피 12개월 선행 순이익 추정치는 100조원 상향됐고 그 대부분을 반도체가 끌어올렸다. 시장이 전쟁 뉴스에 가려 잠시 흔들릴 수는 있어도 결국 지수 방향 결정의 제1변수가 이익이라는 오래된 사실은 변함이 없다. 

수급도 생각보다 덜 나쁘다. 외국인 순매도가 이어졌지만 자료는 이를 한국 시장 전반에 대한 구조적 이탈이라기보다 가격 상승에 따른 차익실현으로 해석한다. 반면 개인 자금은 ETF를 중심으로 여전히 유입되고 있고, 투자자예탁금과 CMA 잔고는 100조원을 웃도는 수준이다. 변동성 이후 다시 위험자산으로 복귀할 대기 자금이 남아 있다는 뜻이다. 결국 한국 시장은 밸류에이션이 낮고, 이익은 상향되고, 대기 자금은 존재하는 구간에 들어와 있다. 

정리하면 지금 시장을 읽는 핵심은 전쟁을 과소평가하지 않되 모든 것을 전쟁으로 해석하지 않는 데 있다. 단기적으로는 지정학이 가격을 흔들겠지만 중기적으로 더 큰 질서는 AI 에이전트가 만드는 토큰 경제, 이를 뒷받침하는 인프라 혁신, 그리고 결국 확인될 실적의 복원력이다. 한국 시장은 지금 그 구조 변화의 수혜 업종을 품고 있으면서도 가격은 여전히 낮은 편에 속한다. 변동성의 순간일수록 시끄러운 뉴스보다 다음 12개월의 이익과 다음 3년의 산업 지형을 먼저 봐야 할 것이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닐 가능성이 높다. 

황수욱 메리츠증권 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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