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의 말년의 독서] 올리브와 루시



한 성격 하며 좌충우돌하는 올리브만 사귀고 말려고 했는데 《이야기를 들려줘요》에는 그동안 작가가 여러 책에서 소개한 많은 인물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와서 자꾸 그 인물들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냈다. 결국 나는 팬데믹을 피하여 올리브가 사는 소도시로 이주한 루시를 그린 《바닷가의 루시》를 읽었고, 루시 바턴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어져서 《내이름은 루시 바턴》도 읽었다. 이 시리즈를 계속 더 봐야 할지 고민하다가 일단 멈춘 상태다. 소설가로 나오는 루시는 올리브만큼 독특한 개성을 지닌 인물로 그려지기보다는 모든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해주는 캐릭터로 등장했다. 공감은 화자의 감정이 결국 무엇이었는지를 스스로 깨닫게 해주었다. 소설가가 직업인 루시가 쓰는 여러 편의 단편소설을 읽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야기를 들려줘요》의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올리브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그 이야기는 당신 안에 있어요. 내가 당신에게 줬어요."라고 하여 매번 해 오던 역할을 올리브에게 넘겼다. 자기는 곧 죽을 텐데 이 이야기는 세상에 나가야 한다고 올리브가 말했지만, 루시는 그걸 절대 쓰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남은 생 동안 루시의 이야기를 품은 채 살아가는 올리브의 후일담이 궁금해졌다. 타자기로 이런저런 기억을 기록하고 있는 올리브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가디언지와의 인터뷰에서 루시가 소설가였으므로 사람들이 작가 자신의 이야기라고 착각할 위험성이 있지만 자신은 루시와는 전혀 다른 가족 배경을 지녔다고 했다. 어려운 가정에서 힘들게 자랐던 루시와는 달리 아버지는 교수였고 어머니는 영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었다. 집에는 텔레비전도, 신문도 없었지만 책이 풍부했고, 아이들이 읽는 책이 없어서 존 업다이크의 소설을 읽고 헤밍웨이나 러시아 작가들의 책을 읽었다. 루시와 같은 트라우마는 없었으며, 집이 사람들이 사는 곳과는 떨어진 곳에 있었다는 공통점이 있었을 뿐이었다. 그래도 루시가 여덟 살쯤 엄마한테 'Row, row, row your boat'라는 노래(동요 '리리릿자로 끝나는 말은'의 원곡)가 왜 '인생은 그저 꿈'(Life is but a dream)이라고 끝나는지를 묻는 《이야기를 들려줘요》의 한 장면은 작가의 실제 경험이었을 거라 생각된다. 엄마는 "그건 삶은 진짜가 아니라는 뜻이야."라고 답했다.


《유르스나르의 구두》라는 멋진 에세이집을 낸 일본의 작가 스가 아쓰코에 의하면 전쟁이야기가 유럽을 사로잡았던 1937년 마르그리트는 미국에서 온 그레이스 프릭을 만났고 1939년 그레이스의 권고로 미국으로 향했다. 처음 미국으로 갈 때는 고작 반년 정도면 전쟁이 끝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1940년 파리가 함락되었고, 이후 미국에 정착하게 되었다. 하드리아누스 황제에 대한 글을 1924년부터 여러 차례 구상하고 버리고 하다가 1937년 예일대학의 도서관에서 찾은 자료에서 글의 실마리를 잡았다. 그리고 전쟁이 끝나고 한 친구가 마운트데저트 섬으로 부쳐준 트렁크에서 그녀가 수집해두었던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자료와 "친애하는 마르쿠"라고 쓴 첫 구절을 찾아내어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을 제대로 쓸 수 있게 되었다. (실제로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은 "친애하는 마르쿠스여."라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를 부르며 시작하고 있다.)
스가 아쓰코는 지금은 박물관으로 변한 마운트데저트 섬의 작고 하얀 집을 방문했던 얘기를 책 말미에 썼다. 이단 심문소의 표적이 된 마르그리트의 윗대 조상을 그린 렘브란트 풍의 초상화를 시작으로 거실에 있는 흔들의자, 담쟁이덩굴이 무성한 베란다 등을 둘러보았다. 특별히 침실과 책장도 볼 수 있었고 마을의 오래된 묘지에서 30분을 넘게 헤매다 마르그리트와 그레이스의 묘도 찾았다. 그러면서 프랑스어를 쓰지 않는 먼 곳에 머물면서 세상의 흐름을 거스르며 살았던 마르그리트의 삶을 생각했다.
벤 섀턱이 쓴 《소로와 함께한 산책》은 헨리 데이빗 소로가 19세기 말에 한 산책을 재현하면서 쓴 책이다. 작가는 밤마다 소로의 《메인 숲》을 읽었고, 메인주의 가장 높은 산인 커타딘산을 올랐다. 소로가 1846년 9월에 올랐던 산이었다. 소로는 "산의 정상은 미완의 세계에 속한다. 그곳에 올라가 신들의 비밀을 엿보고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시험하는 것은 신들에 대한 가벼운 모욕이다."라고 했다. 벤 섀턱은 이런저런 관광객들의 무리와 마주치면서 "매해 그 길을 오르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풍경의 가장 먼 곳까지 파괴하는 파도를 만들어버릴 것을 소로는 꿈에도 몰랐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아주 천천히 파괴되어 나는 결국 그것을 파괴가 아니라 하나의 변화로 받아들이게 될 것인가?" 묻는다. 그렇다면 요즈음 벌어지고 있는 이 모든 일들은 우리들의 삶을 파괴시킬 것인가, 변화시키는 것일까 묻고 싶어진다.
인용 및 참고는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이야기를 들려줘요》 (정연희 옮김, ㈜문학동네 2026), 스가 아쓰코 《유르스나르의 구두》 (송태욱 옮김, 한뼘책방 2020), 벤 섀턱 《소로와 함께한 산책》 (임현경 옮김, ㈜알에이치코리아 2023)
김영란 전 대법관